[<BOOK IN BOOK> 지역 균형 발전 기여 ‘스타트업 성지’ 가 보니] 지역 자원 활용 1500만 관광객 잡고, AI·로봇으로 승부

부산·제주·대전·강원= 장우정·이은영 조선비즈 기자 2023. 1. 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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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관광 스타트업 부바커는 배 수리 공업사들이 몰려 있는영도 깡깡이마을 자전거 투어를 진행 중이다. 사진 부바커

# 1│부산역을 나와 부산항을 거쳐 차로 4㎞가량을 달리면 오래된 배들이 정박해 있는 영도구 깡깡이마을이 나온다. 배 표면에 붙은 녹, 조개류를 떼어내느라 ‘깡깡’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던 이곳은 수리 조선업을 하는 공업사들이 몰려 있다.

한때 부산에서도 경기가 좋은 곳으로 유명했지만, 조선업이 어려워지면서 소형 러시아 배 수리를 위주로 하는 군소 공업사들만 남아있다. 이마저도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로 일감이 쪼그라들면서 마을은 급격히 노후화된 모습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로는 자전거, 오토바이가 오가고 간간이 부품 운송 트럭이 들어갔다.

깡깡이마을로 향하는 영도 입구에는 ‘부산에서 자전거 타기’라는 뜻의 ‘부바커’라는 관광 스타트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바커는 깡깡이마을 자전거 투어 상품을 운용 중이다. 한수진 부바커 대표는 “깡깡이마을은 관광객 차량이 진입하기 어렵고 주차할 공간도 없다”면서 “자전거를 타고 부산의 살아있는 산업 현장과 역사적 의미를 스토리로 풀어내는 것이 투어의 취지”라고 말했다.


# 2│강원 태백시 철암역 앞(철암역두)에 서니 국가등록문화재 장성광업소 선탄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지면적 5만1703㎡(약 1만5640평)의 거대한 시설물은 원탄을 저장, 운반, 가공 처리하는 곳이다. 시설은 수시로 굉음을 내며 선별된 석탄 가루를 떨어뜨렸다.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탄광 네 곳 중 한 곳인 장성광업소는 2024년 폐광을 준비하고 있다. 태백시에 따르면 장성광업소 폐광 시 지역경제 피해 규모는 2359억원으로 추산된다. 2022년 8월을 기점으로 인구 4만 명 선이 붕괴된 태백은 지역경제를 이끌던 이곳이 사라질 경우 ‘인구 3만 명’도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 중이다.

고향 태백으로 돌아와 문화 기획자로 활동 중인 김신애 무브노드(공유 오피스) 대표는 광산이 모두 사라진 태백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광광스토리지’라는 청년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빛 광(光), 광산 광(鑛)을 조합한 이 프로젝트는 빈 광산의 빛을 밝힌다는 뜻이 있다. 김 대표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운탄로를 강아지 산책 코스로 만든다든가 광산 트레킹 코스 등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태백 하면 석탄(광산)인 만큼 광산 문화를 우리가 이어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로컬(지역)에서도 스타트업 창업이 잇따르고 있다. 관광이 주요 먹거리 중 하나인 ‘제2 도시’ 부산에서 누구도 조명하지 않은 문화 콘텐츠를 개발, 틈새를 파고들고 있는 부바커나 지역 유산을 스타트업의 방식으로 지켜내는 광광스토리지 프로젝트가 이를 잘 보여준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역별 창업 기업 수 동향(2022년 10월 기준)을 보면, 전국(9만1234개) 가운데 여전히 서울(1만6144개), 인천·경기(3만3516개) 등 수도권 창업 기업 수가 가장 많았으나 부산·울산·경남(1만2181개), 광주·전라(8010개) 등 주요 지역에서도 1만 개 안팎의 창업 기업이 활동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2711개), 대전(2371개), 제주(1379개) 등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 밀리지 않는 첨단기술 스타트업이 등장하는가 하면, 그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자원·콘텐츠를 100% 활용한 곳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이 인구 소멸 위험 지역에 진입한 상태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로컬을 등지는 이유가 ‘일자리 부족’인 만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분석한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2년 6월 말 기준 국내 벤처·스타트업 3만4362곳에서 고용한 인원은 총 76만1082명이다. 2021년 6월(69만3477명)보다 6만7605명 증가했다. 벤처·스타트업의 고용 증가율은 9.7%로, 우리나라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율(3.3%)보다 약 3배 높았다. 같은 기간 벤처·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만 15~29세 청년은 총 20만4437명으로, 전년(18만9301명) 대비 8% 증가했다. 국내 고용보험 청년 가입자 증가율(1.2%)보다 약 7배 높다.

 

 

카이스트發 테크 스타트업도 로컬서 큰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는 궁동과 어은동, 충남대와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창업가 거리가 동서로 가르고 있다. 이곳 일대에는 중기부 팁스(TIPS) 타운과 카이스트 창업원, 대전 스타트업파크 등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시설들이 모여 있다. 유성천을 등지고 창업가 거리에 들어서자 파란색 대문이 활짝 열린 ‘시작점’이 눈에 들어왔다.

시작점은 대전 기반 액셀러레이터(AC·창업기획자)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커뮤니티 공간이다. 총 4층 규모로 모두 초기 창업가들을 위해 꾸며졌다. 

차병곤 시작점 대표는 “특정 주제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데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장소가 생각보다 없었다”며 “블루포인트는 시작점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고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섞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륙양용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아트와'의 강동우 대표는 “아이템 선정, 투자 유치, 네트워킹 등 창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작은 의사 결정조차 어려웠던 시기에 창업 커뮤니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당시 이룬 것의 80% 정도는 창업 선배들의 도움 덕이었다”고 말했다. 와인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거래 플랫폼 ‘뱅크 오브 와인’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블링커스의 박상욱 대표는 “시작점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과 업무 제휴를 맺어 함께 사업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여러 네트워킹이 계속해서 쌓인 결과”라고 했다. 두 사람은 카이스트 출신이면서 주로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테크 관련 아이템으로 창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타트업의 불모지로 꼽히는 해양·항만 분야에 뛰어든 카이스트 졸업생도 있다. 배 자율운항을 해보겠다며 2015년 ‘씨드로닉스’란 회사를 재학 시절 만든 박별터 대표다. 현재 씨드로닉스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선박 운항을 보조하는 ‘AI 어라운드뷰 시스템(NAVISS)’, 대형 선박 접안(배를 육지에 대는 것)을 보조하는 ‘AI 접안 모니터링 시스템’ 두 가지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어라운드뷰 시스템은 배 주인인 해운사에, 접안 모니터링 시스템은 항만 운영사에 각각 팔기 때문에 대전 본사를 울산으로 옮겼다.

박 대표는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협업할 수 있는 현대중공업, 울산항만공사 등 기업·기관이 울산에 많이 있었고, 지원기관인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도 긴밀히 협업하면서 사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대우조선해양기술연구소에서 자동화 시스템을 연구했던 신성일 대표가 2017년 설립한 ‘무스마’라는 사물인터넷(IoT) 시스템 스타트업도 있다. 데이터 기반으로 산업 재해를 예방하고, 디지털화, 생산성 증대를 추구하는 솔루션을 주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기반의 조선소 등에 납품한다. 현재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등 부울경에서 올리는 매출이 3분의 2 정도다. 전체 직원의 80% 이상이 부산 사람이다. 서정우 무스마 이사는 “사업의 주 대상인 조선업종이 부울경에 몰려 있고, 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직원들도 이곳에 훨씬 많기 때문에 부산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차박 캠핑 명소 ‘산너미목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사진 권숙연 PD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제주맥주 양조장 포장시설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감수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관광객 겨냥 콘텐츠로 승부수

로컬의 색깔을 살린 스타트업도 속속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 ‘모노리스’가 제주에서 운영 중인 무동력 레이싱파크 ‘9.81 파크’는 한라산을 등진 채 협재 앞바다와 비양도가 보이는 자연 오름에 테마파크를 조성해 제주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김종석 모노리스 대표는 “자연과 어울리면서 동시에 레이싱의 스릴도 느끼는, 제주에서의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9.81파크의 기획 의도”라며 “매년 1500만 명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사업 기획할 때부터 철저하게 제주를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 기반 수제맥주 브랜드 ‘제주맥주’도 비슷하다. 제주에서 직접 배양한 효모와 제주산 감귤껍질 등 현지 재료가 쓴 제주맥주는 제품 이름에도 ‘거멍(검다)’ ‘펠롱(반짝)’ 같은 제주 말을 담았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이 지역만의 고유한 매력에 이끌려 온다”며 “이 점이 지역 기반의 혁신성을 가지고 고객과 소통하는 수제맥주의 철학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봤다”고 말했다.

국내 최장수 액셀러레이터 크립톤의 양경준 대표는 “젊은 창업가들의 특징은 살기 좋고 놀기 좋은 곳에서 창업도 한다는 것”이라며 “이주민의 창업이 활발해지면서 제주의 창업 생태계도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제주의 자원을 활용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스타트업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관광객을 주 타깃으로 한다. 청초호 호숫가 뻘밭을 메워 원산조선소라는 이름으로 1952년 문을 연 속초의 명소 ‘칠성조선소’. 2대째인 2017년 8월까지 소형 어선을 주로 만들고 수리하다가 3대째인 최윤성 대표 때 그 기능을 멈추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조선소 사택은 카페로, 조선소 자리는 문화공간으로 각각 개조해,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와 인증샷을 찍는 속초 명소로 자리 잡았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 최 대표는 “2013년부터 레저 선박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조선업이 어려워지고 어민이 줄면서 공간을 변화시키게 됐다”면서 “속초 인구가 약 8만 명, 인근 고성·양양까지 합쳐도 20만 명이 채 안 되지만 (강원도는) 17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인 만큼 성수기 효과가 있는 점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때 흑염소 농장으로 운영되다가 아들인 임성남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게 된 평창의 ‘산너미목장’은 신규 서비스로 내놓은 차박(차에서 숙박)으로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코로나19로 본격화됐던 캠핑 열풍, 소셜미디어(SNS) 인증 덕분에 사업이 빠르게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재·자금 부족은 과제 

그러나 로컬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한계도 명확하다.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사업의 필수 조건 세 가지로 기회·인재·자금을 꼽지만, 인재와 자금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동남권협의회 회장은 “부산에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이들이 서울·수도권으로 유출되고, 부산 스타트업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서울에 지사를 내서 부산 사람을 구하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창업지원사업은 많으나 3년 이상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스타트업이 자금난을 겪는 시기)를 거치는 기업에 대한 투자 환경이 열악하다”는 지적도 많다. 투자자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 본사를 옮기거나 지사를 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로컬 스타트업을 도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컬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활동가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로컬 자체로는 시장이 작아 공공시장을 시장의 범주로 봐야 생존할 수 있다”면서 “지자체는 이들이 지역에서 버텨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원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조금뿐만 아니라 각종 정부 사업으로 현지 스타트업에 일거리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plus point

네카오 출신 로컬 전문가
조력자에서 투자자로 변신

전정환(왼쪽) 크립톤 이사, 한종호 소풍벤처스 파트너. 사진 신소현·권숙연 PD

로컬 스타트업 생태계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전국 19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대기업을 일대일 매칭시켜 지역 업체들을 지원하게 했다. ‘대구는 삼성’ ‘광주는 현대차’ 같은 식이다. 지역 대표성이 있는 대기업이 마땅치 않아 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 자체가 무산될 뻔했던 제주는 지역에 본사를 둔 카카오(당시 다음카카오)가, 춘천(강원)은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는 네이버가 각각 매칭됐다. 뒤늦게 발을 뗀 두 곳은 카카오 출신 전정환, 네이버 출신 한종호가 초대 창조경제혁신센터장으로 각각 부임해 로컬 생태계에 투신하면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3연임했고, 최근 투자자로 변신했다.

전정환 전 센터장은 11월 2일 자로 국내 1호 액셀러레이터인 크립톤 파트너(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크립톤은 제주를 비롯해 부산, 강원, 대전, 경남 등 다양한 지역의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 육성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 파트너와 크립톤의 인연은 센터장 재직 당시 공동으로 지역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를 만들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전 파트너는 “2017년 제주도민 자본으로 크립톤이 펀드를 만드는 것을 센터가 도왔고, 크립톤은 센터 보육기업이던 재주상회, 컨텍, 캐치잇플레이를 투자, 액셀러레이션할 수 있었다”며 “2021년에는 제주 민간 출자자들을 모아서 센터와 크립톤이 ‘스타트업 아일랜드 제주 투자조합 1호’를 공동 결성하기도 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모든 자원이 집중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로컬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통해 해결해나가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보다 앞서 한종호 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도 마찬가지로 두 번 연임을 끝으로 2022년 6월부터 강원도 춘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임팩트 투자사 ‘소풍벤처스’ 파트너로 자리를 옮겼다. 임팩트 투자는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환경적 성과도 달성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한 파트너 역시 센터 근무 당시 소풍벤처스와 펀드를 만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임팩트 투자 가운데서도 로컬 벤처 투자 부문을 맡고 있다.

한 파트너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기업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느낀 가장 큰 갈증은 기업에 보조금만 주는 게 아니라 투자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면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외에 기업으로서의 성장성·혁신성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는 게 투자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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