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칼럼] 누구나 모르는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살아간다
지난 초겨울 고향에서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일요일 아침 6시 버스로 상경했다. 읍내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뒤 여러 지역을 경유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는 버스다. 요즘 시골에서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는 거의 우등이다. 고객이 많지 않아 고급화해서 수지를 맞추려 고 한듯하다. 그래서 요금이 비싼 편이다.
동네 근처 면 소재지 버스 정류소에서 우리 부부가 탔을 때 우리 외에는 승객이 없었다. 세 군데 면 소재지를 더 지났지만 타는 사람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버스 운전기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서울까지 두 분만 모시겠습니다." 아내가 물었다. "기사님, 저희가 안 탔으면 서울 안 가나요?" "아뇨. 서울발 승객을 모시고 내려와야 해서 무조건 출발합니다."
이 넓은 버스 안에 두 사람만 타니 약간 무섭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가 버스를 전세 낸 것 같았다. 사람 온기가 없기 때문인지 히터를 틀었는데도 추웠다. '얼마 가지 않아 이 노선도 끊기겠구나. 그럼 고향 오가기가 훨씬 불편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지방소멸 시대라는데….
인구가 어느 정도 있어야 교통이나 편의시설도 운영되는 것이다. 우리는 개별 인간이지만 이래저래 다른 사람과 얽혀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산다. 그들이 있어야 나도 그럭저럭 삶을 누릴 수 있다. 사회가 무너지면 나 혼자 살아남기 힘들다.
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누군가 사주기 때문이고, 내가 전·월세를 놓을 수 있는 것은 그 공간을 누군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전·월세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집주인이 집을 빌려주고 있어서다. 최근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기업형 전세사기족은 제외하고 얘기하자.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란 그런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모르는 이웃이 있기에 내 삶이 존재한다.
축구선수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씨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기억난다. "울타리를 세우더라도 말뚝 3개가 필요하다"는 중국 속담이다. 그는 "세상일 중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아들에게 매사에 겸손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사회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공존해야 유기체처럼 잘 돌아간다. 다시 말해 사회구성체인 상대방이 없이는 나는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초연결사회가 되어서 그런지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 실감한다.
하지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화가 잔뜩 나 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잘 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뭔가 모르게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뭔가 내 맘대로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분노는 정치와 부동산에서 자주, 그리고 두드러지게 폭발한다.
부동산에 대해선 어떤 입장에 있든 다 열불이 난다. 물리적인 부동산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렌즈는 지극히 굴절되어 있다. 공익과 사익, 개인과 집단, 지역(수도권과 지방) 간 이해관계가 수시로 충돌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만능의 정책이 있을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이기적인 답만 원한다.
선택적 선호를 하면 사고나 행동이 한쪽에 치우치기 쉽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함몰된 시각에서 바라보면 어떤 것이든 마음에 차지 않고 쉽게 분노로 이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분노를 팔아 돈을 버는 '분노 비즈니스'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특정 이념보다 유용성 입장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실용주의와 포용적 중도주의는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 덕에 이 정도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열린 생각을 가지면 다른 사람은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고마움의 대상이 된다. 윽박지르거나 우격다짐하기보다 상호 인정과 대화, 설득을 통한 공존의 가치를 익혀야 대립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부동산 갈등도 이런 마음가짐에서 풀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타자를 이해하고 스스로 겸손을 익힐 때 부동산 문제도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검찰 "피해자에게 그들은 악마였다"...`계곡살인` 이은해, 재판서 울먹
- 강남 육횟집 여사장 알몸 시위…"건물주가 보증금·월세 턱없이 올렸다" 주장
- "재밌다" 외치다 갑자기 비명…네팔여객기 사고 마지막 영상
- 군복입은 김건희 여사 "고공강하 제일 멋있어"…장병들 "여사님 사랑합니다"
- 전여옥, 나경원에 폭탄발언 “한 번 깡그리 말아먹은 ‘180석 전과’ 있음에도…”
- 미국서 자리 굳힌 SK바이오팜, `뇌전증약` 아시아 공략 채비 마쳤다
- 한화, 군함 앞세워 세계 최대 `美 방산시장` 확장
-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노골화하는데 싸움만 일삼는 정치권
- “실적·비전에 갈린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표심 향방 ‘촉각’
- "내년 韓 경제 성장률 2.0% 전망… 수출 증가세 둔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