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가는 K웹툰, 또 다른 韓流 붐 이끌다] 편리함과 블루오션 전략, 영상화 무장 K웹툰, ‘넥스트 마블’ 꿈꾼다
“일본 망가(만화를 일컫는 일본어)가 한국의 웹툰 때문에 빛을 잃고 있다(Japanese manga are being eclipsed by Korean webtoons).” 지난 1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일본의 만화 산업을 비교하며 이런 표현을 썼다. ‘만화의 왕국’이라 일컬어졌던 일본에서 2021년 만화 종이 출판 시장 규모는 2650억엔(약 2조5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3% 줄었다. 반면, 시장 조사 기관 스페리컬 인사이트 앤드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사실상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웹툰 시장 규모는 2021년 이미 47억달러(약 6조2500억원)를 넘어섰고, 2030년까지 601억달러(약 80조원)로 연평균 40.8%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불과 5~6년 전만 해도 해외 시장에서 생소했던 ‘웹툰’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세계 무대에서 굳건히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추세다.
K웹툰의 약진은 특히 2~3년 사이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1조538억원으로, 전년 대비 64.6% 성장했다. 세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양궁 금메달이 한국 선수들끼리의 메달 싸움인 것처럼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웹툰 시장 최강자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1년 북미 최초 웹툰 플랫폼 타파스, 래디시(웹소설) 등을 인수해 몸집을 키웠고, 2022년엔 타파스와 래디시를 ‘타파스엔터테인먼트’로 합병했다. 이 두 회사가 현지에 구축한 창작자 규모만 10만 명가량이다. 일본에서 운영 중인 카카오의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만화의 왕국 일본 시장에서 2020년 7월부터 단일 플랫폼 거래액 기준으로 현재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영어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북미 시장에 진출한 네이버웹툰은 현재 10만 명에 이르는 현지 작가와 함께 1000만 명 이상 독자를 확보한 상태다. 2021년엔 모회사 네이버가 북미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하고, 2022년 10월엔 왓패드 프리미엄 웹소설 플랫폼 욘더(Yonder)를 출시하는 등 북미 시장 확장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웹툰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 결과 2019년 600만 명이던 미국 내 네이버웹툰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2022년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앱마켓 만화 수익 기준에서도 미국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이다.
K웹툰이 주력 수출 상품으로 부상하는 K콘텐츠의 한 축을 차지하면서 해외 큰손들도 주목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이끄는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PIF)와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각각 6000억원을 투자 받는 계약을 1월11일 체결했다. 기업가치는 10조5000억원으로 평가됐다. 글로벌 헤지펀드 GVA도 2022년 초 국내 비상장 웹툰 제작사 케나즈에 1500만달러(약 188억원)를 투자해 최대주주에 오른데 이어 추가 투자대상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K웹툰이 이처럼 단기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첫째,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편리함과 흥미성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22년 7월 “(위에서 아래로 훑어내리는) 세로 스크롤 읽기 방식이 K웹툰이 모바일 읽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새로운 독자로 끌어당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정보기술(IT) 개발자들은 화면 속에 고정된 캐릭터에 5초 정도의 짧은 움직임을 넣거나 음향 효과나 대사를 넣어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주기도 한다. 독자 반응을 댓글로 통해 확인하고 반영해 창작자와 독자 간 쌍방향 소통이 이뤄진다는 점 역시 전통 만화책이 갖지 못한 장점이다. 반면 종이책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 ‘주간소년’ ‘점프’ 등 전통적인 만화 출판 강자들도 뒤늦게 온라인 앱을 출시했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은 뒤 아랫줄로 이동하는 전통적인 읽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에서 만화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와모토 케이타는 이코노미스트에 “(이러한) 만화를 읽을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전 세계 괴짜들뿐이다”라고 했다.
둘째, 기존에 없던 시장을 새롭게 개척한 블루오션 전략 역시 K웹툰의 성공 비결이다. 온라인 게임처럼 온라인으로 만화를 읽는 것은 발달한 IT 기술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로 인해 만들어진 한국의 독특한 문화다. 하지만 웹툰의 상품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한국 기업들은 해외 소비자를 적극 공략해 ‘웹(Web)과 ‘만화(cartoon)’가 합쳐진 ‘웹툰’이라는 단어를 ‘망가’ 같은 문화 상품으로 만들었다. 프랑스 현지 웹툰 플랫폼 웹툰 팩토리 에디터 스테판 페랑(Stéphane Ferrand)도 2022년 7월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웹툰이 넷플릭스, 유튜브, 아마존 등 새로운 소비 문화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출판 문화를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흥행한 미국 마블코믹스도 종이만화 출판에 주력하고 있을 때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인 블루오션을 찾아낸 것이다. ‘블루오션 전략’이란 말을 만들어낸 프랑스 경영전문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모본(Renée Mauborgne) 교수 팀은 지난 12월 네이버웹툰 성공 사례를 분석해 ‘웹툰 엔터테인먼트는 어떻게 만화 시장을 변화시켰나’라는 제목의 연구 사례집을 발간했다. 이 케이스 스터디는 인시아드 전략 경영 과목 등에서 교재로 채택될 예정이다. 김 교수 팀은 “만화를 보지 않던 이용자까지 독자로 유입시키며 시장을 개척했고, 이용자와 창작자가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디지털 미디어로서는 전례 없는 고객 가치를 창출한 사례”라면서 “넥스트 마블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셋째,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화 제작이 활발히 이뤄진 점 역시 웹툰 소비층을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2년 방송된 한국 드라마 가운데 웹툰이나 웹소설 IP(지식재산권)가 원작인 드라마는 모두 19편으로, 해당 연도 제작 드라마의 20%를 차지한다. ‘오징어 게임’ 등이 전 세계적으로 대박을 치면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드라마의 원작인 웹툰 인기까지 동반 상승했다. ‘이태원 클라쓰’는 일본에서 드라마 ‘롯폰기 클라쓰’로 리메이크됐고, 웹툰 ‘바른연애 길잡이’는 올해 1월부터 일본 지상파 채널 드라마로 소개됐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올해 글로벌 웹툰 GMV(총거래액)는 2022년 대비 25% 이상 성장한 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봉준호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탄생한 웹툰은 미래 또 다른 황금알을 낳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될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조선’이 K웹툰을 집중 조명한 이유다.
plus point
K웹툰 성장시킨
창의적 과금 모델
2022년 ‘리디’는 국내 콘텐츠 플랫폼 스타트업 가운데 처음으로 유니콘(기업 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으로 등극했다. 투자자들이 특히 주목한 리디의 성장 가능성은 글로벌 웹툰 구독 서비스 ‘만타(Manta)’였다. 기존 웹툰 플랫폼이 대부분 부분 유료화를 선택한 것과 달리, 만타는 정액제 형태의 구독 서비스로 차별화를 두고 있다.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월 3.99달러(약 5000원)만 내면 리디의 다양한 웹툰을 무제한으로 구독할 수 있는 구조다. 2020년 11월 글로벌 최초로 선보인 구독형 웹툰 서비스 등에 힘입어 리디는 현재 네이버웹툰,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더불어 K웹툰 3강(强) 구도를 형성 중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14년 도입한 ‘기다무(기다리면 무료)’도 웹툰 성공 주요 비결 가운데 하나다. 기다무 도입 전까지는 독자들이 무료로 일부 회차를 보다가 유료 회차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용권을 충전해 유료로 웹툰을 열람해야 했다. 그런데 기다무 도입 이후엔 유료 회차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용자들에게 보유 이용권이 없을 경우, ‘기다무 타이머’가 시작되고, 그 시간이 끝나면 1회 이용권이 자동 충전된다. 기다리는 시간은 독자들이 작품을 보는 빈도와 시간에 따라 12시간, 9시간, 3시간 등 다양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14년 기다무 도입 이후 한 달 만에 일 거래액이 두 배 이상 급증했다”고 밝혔다.
2012년 업계 최초로 '미리보기' 시스템을 도입한 네이버웹툰은 2021년부터 ‘쿠키 자동 충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쿠키는 웹툰을 열람할 때 결제하는 온라인 화폐인데, 웹툰 독자들이 기준 쿠키 개수 혹은 기준일 가운데 한 가지 방식을 선택하면, 그에 따라 쿠키가 자동으로 결제되는 서비스다. 쿠키 자동 충전 서비스는 무료 열람에서 유료 회차로 넘어갈 때 독자들이 매번 쿠키를 충전해야 하는 불편함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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