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산업 위협할지도”...가상자산 규제 첫발 뗀 금융당국
FTX 사태 겪으며 전통시장으로의 리스크 전이 수면위로
이복현 “가상자산 발행ㆍ보유 공시 의무추진, 모니터링 툴 개발”
[이데일리 전선형 기자]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암호화폐) 규제ㆍ감독 스탠스에 묘한 기류변화가 생겼다. 그간 ‘관련 법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최소한의 감독 개입만 해왔는데, 최근 루나·테라, FTX 사태 등을 겪으며 전통적인 금융시장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예의주시에 나선 것이다.
실제 금감원은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ㆍ감독에 대해선 관련법이 정비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리를 둬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리스크가 상장사·금융사 등 개별회사부터 금융시장, 실물경제에 이르기까지 전이될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규제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대해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관심을 둬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내의 가상자산 리스크는 현재 낮은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국내 금융사가 보유한 가상자산은 776억8000만원 어치로 이는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 18조9000억원 대비 0.4%에 불과하다. 국내 금융사가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를 직접 제공한 사례도 없는 만큼 가상자산 시장과 전통 금융시장 간 연계성은 아직 제한적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국내에도 가상자산 리스크가 확대되는건 시간문제로 본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금융혁신연구실장은 이날 토론회 주제발표에서 “스테이블 코인이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은행예금을 대체할 경우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상승과 자금중개 기능 약화, 자원배분의 효율성 저하 등으로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법정화폐와 1대 1로 가치가 고정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이 은행 예금을 대체할 정도로 성장할 경우 은행은 소매 예금을 빼앗겨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게 되고, 이는 실물경제의 신용공급 규모 축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금융기관의 자금 재분배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스테이블 코인이 사이버 공격에 노출되거나 상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상실될 경우 ‘코인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규모 상환을 위해 준비자산을 강제 청산하면 시장 유동성과 자산 가격이 내려가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가장자산 급락이 가져올 리스크를 지적했다. 그는 “일부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가상자산 투자를 목적으로 (예금을) 예치한 고객이 상당히 많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투자된 현금 규모가 약 5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만에 하나 코인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의 뱅크런까지 나오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위기가 고조되는 만큼, 최소한의 규제를 통해 관리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가상자산을 발행ㆍ보유하는 기업들에게 회계상 주석공시를 의무화할 수 있도록 하고, 데이터 집적 등을 통해 잠재리스크를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링 툴 개발도 시작한다. 현재 감독당국이 가상자산 위험 등을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 원장은 “가상자산 시장의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며 “가상자산 관련 모니터링 툴 개발을 통해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잠재리스크를 측정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고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대를 모았던 국회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또다시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되지 못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지난해 5월 ‘테라ㆍ루나 폭락사태’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커지면서 마련된 바있다. 당초 여야는 지난해 해당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미뤄졌고, 올해 또다시 법안송위 안건에 올랐지만 미뤄지게 됐다.
전선형 (sunnyj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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