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여주가 달라졌다, 더 강하고 다채롭게
성별 격차 여전 “현실과 괴리” 지적도
미국 CNN방송이 최근 한국에서 여성 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하는 드라마가 증가하고 있다며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크게 변화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15일(현지시간)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영어권 TV시리즈 6위를 기록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언급하며 K-드라마가 여성을 묘사하는데 있어 상당히 진전했다고 평가했다. KBS가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2021년 드라마 주인공 중 53% 이상이 여성이었다.
한국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방영한 ENA 채널의 김재클린 마케팅 매니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텔레비전에 여자 주인공의 수가 상당히 많아졌다”며 “(여성들이) 점점 더 권력있는 위치로 묘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CNN은 지난해 방영된 국내 드라마의 여성 주인공 역할이 현명한 왕비(<슈룹>)나 끈기있는 저널리스트(<작은 아씨들>) 등 다양했다고 분석했다. 또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강인한 해녀 캐릭터가 등장하고, 임신한 고등학생이 남편과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고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불과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스토리”라고 보도했다.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박성은 총괄 프로듀서에 따르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 텔레비전에서 노골적인 성차별과 심지어 가정폭력 장면까지 볼 수 있었다. 그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국내 최장수 TV드라마 <전원일기>를 언급하면서 여성 캐릭터가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밝혔다. 또 200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을동화>에서 남성 캐릭터(원빈)가 여성 캐릭터(송혜교)를 벽에 밀어붙이며 사랑을 표현하는 유명한 장면을 지적하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인기를 끌면서 가난한 여성과 부유한 남성의 로맨스를 그리는 일명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를 이루었다고 CNN은 보도했다. 그 예로는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커피프린스 1호점>(2007), <꽃보다 남자>(2009) 등을 언급했다. 특히 <커피프린스 1호점>의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며 여주인공 은찬이 가업을 물려받은 남자친구 한결을 위해 ‘여자처럼 옷을 입기 시작’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대의 변화 혹은 시청률 때문?…여성 캐릭터 변화의 원인
한국 드라마 여성 캐릭터의 변화 원인으로는 여성 임원의 증가, OTT 및 TV 채널 증가, 여성의 노동 참여율 증가, 가족 역학의 변화, 외국 미디어의 영향 등 다양한 이유를 꼽았다.
CNN은 한국의 방송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설명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여성의 결혼과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짚었다. 1999년 MBC에 입사했다는 드라마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기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드라마 속에서는 결혼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속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을 맺기 위해서 더 이상 결혼이 꼭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됐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토론토 대학교의 조교수 미셸 조는 K-드라마의 로맨스 서사가 점점 개인의 발전과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다소 고정된 캐릭터 유형이 있었다”면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예로 들며 “이 드라마는 로맨스를 중심으로 하지만 여주인공은 사랑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하는 성공한 기업 CEO”라고 설명했다.
업계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여성 서사를 개선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과거에는 남자들이 형사에서 조폭, 판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연기했다”며 “남자들의 이야기를 여자들의 이야기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 업계가 진보적인 성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여성 캐릭터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더 많아진 여성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여성 문제를 사회적 논의 테이블로 가져오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한 ‘성별 격차’ 불구…한국 사회 내 페미니즘 매우 ‘논쟁적’
CNN은 그러나 한국 여성들이 실생활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장벽에 직면해 있다면서,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22 글로벌 성별 격차 지수’에서 한국이 146개국 중 99위를 기록한 사실을 언급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평균적으로 31.1% 더 적게 벌고 있다며,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고 전했다.
아울러 CNN은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서 극도로 분열을 일으키는 주제라고 설명했다. 북미에서는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가 긍정적으로 간주되는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여성혐오를 암시하기 위해 경멸적으로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국내 유명 스튜디오 업계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작품이 ‘페미니스트’ 작품이라고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로 해석되는 이미지를 사용하면 매우 논란이 될 수 있다”며 “또 그것을 사용한 것에 대해 사과하면 반대측에서 분노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제작사들은 페미니즘과 연관되는 것을 피한다고 미셸 조 교수는 밝혔다.
황진미 평론가는 한국 드라마는 오랫 동안 주로 여성들이 집필하고 시청해왔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 이후 여성들은 서로 연대감을 느끼며 젠더 이슈에 우려를 표명할 수 있는 권한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의 성공은 여성의 구매력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김효민 시나리오 작가는 “오늘날의 여성들은 단순히 호의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성을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게는 드라마에서 묘사된 이러한 여성의 삶과 오늘날 한국 현실의 괴리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NN은 김태미 작가의 팟캐스트 방송을 인용하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같은 프로그램이 성 불평등이 만연한 직업 현장에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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