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배상 해법, 한-일 외교당국 협의…일본 쪽 사죄·배상 여전히 쟁점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으로 ‘제3자 채무인수’ 방식을 제시한 지 나흘 만에 일본 쪽과 공식 협의에 나서는 등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죄와 배상 참여 등 일본 쪽의 ‘성의있는 호응’ 수위가 여전히 쟁점인 가운데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피고 기업이 사과도 하지 않고, 보상에도 참여하지 않는 방안을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16일 일본 외무성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아시아대양주국장과 국장급 협의를 했다. 서 국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으로 제시한 ‘제3자에 의한 중첩적·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에 대한 비판 여론 등 국내 상황을 소상히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쪽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협의에서 서 국장은 토론회 당시 피해자 쪽이 정부안에 크게 반발했고 국내 여론도 부정적이란 점 등을 설명하고, 접점을 찾기 위해선 일본 쪽도 상응하는 조처를 내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공개 토론회 뒤 가급적이면 빨리 일본 쪽을 만나 국내 분위기가 얼마나 엄중한지 생생하게 전하면서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일정이 빨리 잡혔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일본 쪽의 ‘성의 있는 호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속도감을 가지고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지만 ‘성의 있는 호응’ 조치에 대해 양국간 인식차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피고 기업의 사죄·배상 참여를 외교부가 요구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어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배상 책임을 진 일본 가해 전범기업의 ‘채무’를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인수한 뒤,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기업한테 기부금을 걷어 피해자들에게 대신 배상하는 것을 뼈대로 한 정부안을 공식화했다. 특히 일본 쪽의 사죄 및 배상 참여 문제를 두고 “현실성이 없다”고 밝혀, 피해자 쪽 반발을 산 바 있다.
외교부는 이날 협의에선 ‘일본 쪽의 성의 있는 호응조처’가 있어야 정부가 최종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안 발표 뒤 반발여론이 확산되고 있음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내 여론도 있고, 피해자 쪽 설득을 위해서도 호응 조치가 있어야 (한국 정부의 해법을) 발표할 수 있다고 일본 쪽에 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성의 있는 조처’와 관련해 양국 간 입장 차이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배상 책임을 진 가해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 여부 및 방식에 대한 논의는 진척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되레 일본 쪽에선 제3자 채무 인수 뒤 배상이 이뤄지면 향후 한국 쪽이 일본 피고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사죄 방식으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 등 과거 일본 정부의 담화 내용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식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사과 내용도, 발표 시기도 예단하기 어렵다”며 “우리 국민이 이 정도면 노력했고, 원고 쪽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은 설명절이 지난 뒤 서울에서 후속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한편, 일본 학자·변호사·언론인·시민사회 활동가 등 94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 부재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징용공’(강제동원) 문제, 일본 정부·일본 기업에 호소한다’라는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회견에서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진정한 사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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