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지연 등 졸속행정에···"농한기 들어온 인력, 농번기엔 이탈"

고창=강동헌 기자 2023. 1. 16. 17: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3 신년기획] 외국인 쿼터제 총제적 부실
< 4 > 계절근로자 관리 구멍
지자체, 인력만 보내주고 '나 몰라라'
外人 등록·마약 검사도 농장주 몫
지자체, 인력만 보내주고 '나 몰라라'
外人 등록·마약 검사도 농장주 몫
지자체, 인력만 보내주고 '나 몰라라'
外人 등록·마약 검사도 농장주 몫
임금 더 많이주는 공장으로 탈주 등
브로커 돈 갚으려 근로자 이탈 많아
"加처럼 농장주가 뽑는 시스템 구축
브로커 개입할 여지 원천 차단해야"
전남 보성군에 위치한 외국인 근로자 숙소 전경. 폐교를 활용해 숙소로 쓰고 있다. 보성=이건율 기자
전남 보성군에서 계절근로자로 일하는 외국인들이 숙소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성=이건율 기자
[서울경제]

“재작년에 베트남에서 온 계절근로자 17명 중 2명만 끝까지 남아서 일했고 지난해에는 네팔에서 35명이 왔는데 5명만 남았어요. 올해는 키르기스스탄에서 42명이 왔는데 몇 명이 남을지···.”

16일 전라북도 고창군의 한 고구마 농장에서 만난 농장주 A 씨는 “3월 농번기를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는 2021년과 지난해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E-8 비자를 받고 입국했다가 농번기를 맞아 가장 일손이 필요한 때 대거 탈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일손이 제일 남아돌 때 들어와 정작 바빠질 때쯤 모두 도망가고 없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농번기에 농촌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실한 관리·감독 속에 사실상 불법 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 농장주들은 사실상 지자체에서 던져주듯 인력을 보내고 ‘나 몰라라’ 하는 식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A 씨는 지난해 9월 수확기를 대비해 E-8 근로자를 지자체에 신청했다. 고구마 농사는 파종 시기인 3~4월과 수확기인 9~10월이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하지만 그가 근로자들을 맞이한 것은 12월 중순이 다 돼서였다. A 씨는 “근로자들이 묵을 숙소로 모텔 방도 대거 예약해뒀지만 3개월가량을 헛돈만 날렸다”고 하소연했다.

근로자 파견이 지연된 것은 앞뒤가 뒤바뀐 행정 절차 때문이다. 지자체 간 업무협약이 맺어지면 외국인 근로자들은 농장주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후 비자 허가를 받는다. 이때 외국인 근로자는 한국에서 보낸 근로계약서와 함께 건강검진과 범죄 경력 증명서 등을 현지 한국 대사관에 제출해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같은 행정 절차는 우리나라처럼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 번역 공증도 해야 하고 검증 절차와 서류 심사에서 오류가 발생할 경우 절차를 되밟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들을 데리고 온 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외국인 등록과 마약 검사를 하는 것도 농장주의 몫이다. A 씨는 “전주 출입국사무소까지 근로자들을 태우고 1시간 40분을 가고 외국인 등록하고 검사를 받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창덕 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 해외협력본부장은 “서류 절차를 밟아 미리 비자를 발급해 놓은 뒤 등록된 외국인 인재 풀 중에서 근로자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네팔에서 온 로켄 울산이주민협회 부회장은 “캐나다는 근로자가 온라인 웹사이트에 언어 능력과 경력 등을 올리면 농장주가 선택하는 방식이라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어렵사리 데리고 왔지만 근로자들은 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가기 일쑤다. 주어진 일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거나 고되다는 이유로 이탈하고 송출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건넨 돈을 갚기 위해 임금을 더 많이 주는 공장으로 옮기려 탈주한다. A 씨는 “1시간 일하고 드러눕거나 아프다며 병원 치료 받겠다고 떼쓰는 일이 다반사”라며 “일을 가르쳐주려고 하면 해코지를 하는 줄 알고 갑자기 사진을 찍으며 ‘신고하겠다’고 하니 도통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슬람교 신자가 1시간 간격으로 절을 할 때마다 컨베이어벨트 전체가 멈춰야 한다”면서 “이런 중요한 정보는 사전에 미리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인력을 해마다 지속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고용주와 외국인 근로자 모두에게 이득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브로커들은 파견된 근로자들이 불법 체류자가 되고 더 많은 새로운 외국인 근로자를 한국에 보낼수록 돈을 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외국인 불법 체류자 수는 41만 2659명으로 전체 국내 체류 외국인의 18.8%에 달했다. 계절근로자 이탈률은 2017년 1.7%, 2018년 3.5%였으나 2021년과 지난해에는 17.1%와 7.9%로 훌쩍 뛰었다.

농촌과 어촌에서 이탈한 계절근로자들은 3~5개월짜리 비자가 만료되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3~4년간 단속을 피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당초 일하기로 했던 농장에 다시 취업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전남 보성군의 B 농장 관계자는 “E-8 비자를 받고 처음 입국한 계절근로자보다 불법 체류자들이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 문화를 잘 알아 암암리에 E-8 신청을 하지 않고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사정은 비전문취업(E-9) 근로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 오면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어떤 지역에서 생활하는지도 모른 채 넘어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로켄 부회장은 “한국에 오기 전 가졌던 막연한 동경이 산산조각 난 상태에서 다른 지역 외국인 근로자들의 말을 들으면 혹하게 된다”면서 “불법 체류자 양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근로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부터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창=강동헌 기자 kaaangs10@sedaily.com보성=이건율 기자 yul@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