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는 시위에 교통·업무 마비… 60년 묵은 집시법 대수술 시급
작년에만 7만건 넘는 집회
집회시간 입법 10년째 표류
외국인 관광객도 불편 호소
학교 주변 집회금지 규정에
유치원·어린이집은 쏙 빠져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24일, 세종대로에서는 한 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오후 6시께 집회 측에서 확성기를 통해 틀어둔 쩌렁쩌렁한 노래가 광화문 일대에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광화문광장 빛초롱 축제,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은 시민들은 귀를 막고 일대를 지나갔다. 이날 광화문광장을 찾은 A씨(28)는 "코로나19 거리 두기도 풀리고 모처럼 시내에서 성탄 전야를 즐기려고 나왔다"면서 "집회 소음이 너무 심해 옆 사람과의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집회·시위가 늘어나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이 취합한 2022년 집회·시위 개최 건수는 7만6031건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이었던 2019년 9만5226건에서 2020년 7만건대로 주춤한 이후 2021년부터 다시 늘어나는 모양새다. 이처럼 집회 건수가 늘면서 집회 소음 규제, 시간과 장소에 대한 해묵은 규정들의 문제점도 재조명되고 있다. 현행 법제도상으로는 집회의 자유는 보장할 수 있지만 시민들 불편은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시민들이 집회·시위로 인해 가장 직접적으로 불편을 겪는 분야는 소음 문제다. 지난달 29일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령상 집회 소음 규제 조항들의 문제점과 입법적 개선 방안'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5%가 "집회 소음이 일상생활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답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월 기준 한 해 집회·시위 소음으로 인한 112 민원만 2만2854건이 접수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의 법 적용 문제점을 짚는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소음 측정 대상 집회·시위 4만9557건 중 기준 이상 소음이 발생한 경우는 1569건에 달했다. 이 중 경찰이 확성기를 압수하는 '분리조치'가 취해진 경우는 단 3건에 불과했다. 2021년 경찰은 집회 시위 관련 소음 규정 위반 70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논문을 작성한 이희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집회 소음 관련 중지 명령이나 분리조치가 2번 이상 발생한 이후부터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집회 소음을 측정하는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도 지적된다. 2020년 개정된 집시법 시행령에 따르면 소음 측정 장소는 피해 위치 건물 외벽 기준에서 소음원 방향으로 1~3.5m 떨어진 지점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매주 도심에서 벌어지는 '맞불집회'의 경우 양측이 내는 소음이 섞여 소음의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어려워진다. 또 행진 등으로 집회·시위 인원이 이동하는 경우에는 측정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집회와 시위의 시간과 장소 규제도 여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집시법 10조는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명확한 시간을 명시하지 않아 기준도 모호한 이 조항은 1962년 집시법이 제정될 때 이후로 바뀌지 않았다. 그마저도 2009년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을 헌법 불합치로 판결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잦은 시위로 도로가 점거되고 교통이 막힐 때마다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 여행수지 한 푼이 급한 상황인데 이 같은 시위 문화가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은 사실상 24시간 집회가 가능해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적용이 불가능해진 10조를 대신할 법안이 10년 넘는 시간 동안 통과되지 않아서다. 지금도 국회에는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개정안은 시위 금지 시간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명시했다.
집시법상 집회 불가 장소의 범위가 한정적인 것도 우려를 낳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린이집과 유치원 앞 집회다.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일대에는 고(故) 정우형 대책위원회와 삼성전자서비스 해복투를 비롯해 1인 시위 등이 매일 진행된다.
하지만 삼성 사옥 근방 100m 내에도 어린이집 4곳이 위치하고 있어 등원하는 영유아가 겪는 소음 및 안전 피해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유치원이 '초·중등교육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시법은 8조에서 '초·중등교육법 2조에 따른 학교 주변 지역'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데,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다 보니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집회·시위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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