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각자도생 증시,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
지난해 증시 침체로 실적 부진에 빠진 증권업계가 어수선하다. 사업구조가 취약한 중소형 증권사는 물론 대형사들도 인력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인 미국 월가도 예외가 아니다. 본격적인 글로벌 경기 둔화가 예상되면서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로 대표되는 투자은행(IB)에도 감원 한파가 불어닥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넘쳐난 유동성 덕분에 기록적인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실적을 올리며 역대급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게 불과 1년여 전인데 이제는 자리 보전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새해 상황도 녹록지 않다. IPO 시장만 해도 대어들의 잇단 상장 철회 결정에 수수료 수입이 작년보다 더 줄어들 것을 우려한 증권사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와중에 자본시장 안팎에선 상식 밖의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은 조단위 M&A 거래를 손바닥 뒤집듯 파기 선언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같은 행태가 시장 전반의 신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키워 거래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 거래 계약서 두께는 점점 더 두꺼워질 테고, 결국 로펌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여기에 증시 불안을 틈타 한탕을 노리는 무리까지 가세하면서 시장은 더 혼탁해지는 분위기다. 최근엔 무자본 M&A 세력이 사채업자와 결탁해 상장사 주식과 경영권을 인수한 뒤,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유용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주의보를 내렸다.
바야흐로 시장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당분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을 실감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그럼에도 기대되는 건 역사를 되돌아볼 때 영웅은 난세에 나왔고, 시장의 성공 신화도 위기의 파고를 뚫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제이미 다이먼이 이끌던 'JP모건체이스'도 그랬다. 경쟁사들이 매일같이 줄도산하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과감한 M&A를 통해 자신과 회사의 가치를 남다른 반열로 끌어올린 사례는 여전히 회자된다. 올 한 해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장 상황이 예상되지만 이번엔 어떤 성공 스토리가 등장할지 벌써 설렌다.
[강두순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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