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한 건 통계 만든 사람
이념편향 따른 통계 조작은
정책 실패·신뢰 추락 부를 뿐
1950년 뉴욕선지(紙)는 예일대 졸업생들을 추적해 "1924년 예일대 졸업생들의 연평균 소득은 2만5111달러"라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의 연평균 소득 1900달러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액수였다. 기사를 액면 그대로 읽은 독자들은 '예일대를 졸업하면 큰돈을 버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사에는 허점이 있었다. 졸업생 전원을 추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락이 가능한 사람들의 응답을 토대로 했는데, 연락이 가능한 사람들은 주로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거나 '저명인사 인명록'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들이었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조사이니 평균 연봉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럴 허프의 '새빨간 거짓말, 통계' 첫머리에 등장하는 표본집단에 문제가 있는 통계의 사례다. 모집단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표본을 추출하는 방법이 적절해야 하는데, 표본에 왜곡이 있다면 통계는 본래 의미를 상실한 숫자의 나열에 불과할 뿐이다. 책에 등장한 사례는 현실적 제약에 따른 통계 왜곡이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의도적 표본 왜곡과 임의 숫자 입력을 통한 통계 조작 논란이 한창이다. 조작의 주체가 정부이고, 왜곡된 통계는 정부 정책의 기본이 되는 국가 통계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과 소득, 고용 통계가 광범위하게 조작된 정황을 포착해 감사를 진행 중인데, 통계 조작에 청와대가 개입했는지 여부까지 감사가 확대되고 있다. 경찰도 지난달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강신욱 전 통계청장을 직권남용과 강요, 통계법 위반과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 중이다. 집값이 급등하고 주택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자 집값이 덜 오른 지역에 치우치게 표본을 추출하거나, 조사원이 조사한 숫자가 아닌 다른 숫자를 적어 집값 상승률이 낮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홍보를 위해 가계·고용동향 지표에 손을 댄 정황도 발견됐다고 한다. 지난 정부는 불리한 통계가 잇따르자 통계청장을 돌연 경질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 관계자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는 등 반발하고 있지만, 조작에 관여한 직원에게 인사 특혜가 제공됐다는 진술까지 확보됐다니 통계 조작은 사실로 드러날 공산이 크다.
잘못된 정책으로 빚어진 부작용을 통계 왜곡으로 가리려 한 것은 국민 기만 행위일 뿐 아니라, 또 다른 정책 왜곡을 부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통계가 있어야 올바른 정책 수립이 가능한데, 통계가 조작됐다면 정책 실패가 반복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통계 작성 기관에서 작성 중인 통계 또는 작성된 통계를 공표 전에 변경하거나 공표 예정 일시를 조정할 목적으로 통계 종사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통계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2000년 그리스 정부는 유로존 가입을 앞두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실제보다 절반 이하로 줄여 발표했지만, 2009년 통계 조작이 드러나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고,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리는 몸살을 앓았다. 중국의 성장률이나 코로나19 통계에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지는 것도 통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 총리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했을 정도로 통계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다. 조작 유혹에 노출되기 쉽고, 잘못 사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의도를 가지고 통계를 만드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통계를 조작하고 왜곡한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고, 정치와 통계는 분리해야 한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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