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는 돈 누가 받겠나”…정부 강제징용 해법 우려 목소리

조성민 2023. 1. 16.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설득 위해 명분·출구 마련해야
‘배상’ 용어 문제 있어…가해자의 언어
尹정부가 책임감 보이는 것은 고무적
다만, 소송할 수 없는 피해자도 살펴야
日 ‘조용히 환영’…한일관계 긍정 여파
“명분 없는 돈을 누가 받을 수 있겠나.”
정혜경(사진)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16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최근 정부가 내놓은 ‘강제징용 해법’을 두고 이처럼 되물었다. 정 연구위원은 “어떻게 보면 정부가 좋은 의도를 갖고 ‘피해자들이 소송에 이겼는데 돈도 못 받고 사과도 못 받고 하니 일단 돈이라도 먼저 좀 받으셨으면’ 하면서 ‘희망 고문’에서 벗어나게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피해자 입장은 ‘우리가 돈 때문에 이걸 한 게 아니고 돈은 하나의 명분’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사과라고 하는 부분과 사과를 받기 위한 노력이 강조돼야 한다”고 짚었다.

정 연구위원은 “정부 발표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게 ‘일본 기업이나 일본 정부의 사과를 기대할 수 없다’ 또는 ‘그런 배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신 주겠다’라고 했다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합의하고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에게 정부는 ‘우리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일본에 대고 일본 정부와 기업이 사과를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해야 맞다”며 “그런식으로 피해자를 설득하고 명분과 출구를 만들어줘야 받을 사람은 받겠다고 나설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앞서 박홍균 고려대 교수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정부 설득 노력에도 일본 호응이 없었다”며 “이제 일본 사죄와 기금 참여 같은 것에 대해서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시 방청석에서는 “매국노다”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다만 박 교수는 “정부가 일본 설득에 노력을 기울였듯 피해자 설득에도 시간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일제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 연구위원은 ‘정부 배상안’이라는 용어도 잘못됐다고 했다. 왜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강제징용 배상을 우리 정부가 하냐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때 법(태평양전쟁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지원법)을 만들며 지원금이나 위로금이라는 용어를 썼다”며 “이 법안을 보면 65년에 우리가 청구권 자금을 받아서 그걸 가지고 보상을 했는데 보상금이 굉장히 적었기에 보완차 우리가 위로금과 지원금을 드린다고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로금, 지원금이라 쓴 이유가 보상이나 배상이라는 용어는 가해자가 써야 하는 말이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너무 결과를 내려고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정 연구위원은 “피해자와 정부가 지금 신뢰가 구축이 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 이유는 상호 경험을 통해 신뢰를 쌓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경험치도 없고 신뢰관계도 약한 상태에서 결과를 도출하려고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며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한일관계를 위해서 무조건 결과를 내야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책임감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정부가 책임감을 가져야 할 대상에는 소송을 할 수 없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는 반발…일본은 환영

이처럼 정부가 일본 전범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주는 ‘대위변제’를 공식화하자 반발이 거세다. 정부안에 일본 전범 기업은 물론 일본 정부나 기업들의 참여를 담보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배상과 사과에 대해 일본 측 자발적인 호응에 기대야 할 뿐 아니라, 사안의 핵심인 일본의 반성과 사과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사실상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는 지난 12일 공개토론회에서 대위변제 등은 “본질을 호도하는 왜곡된 프레임”이라며 “일측의 사과는 사실인정, 유감 표시가 아니라 일측 (기존) 담화를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변호사는 “정부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더 거쳐야 한다”며 “피해자측이 반대하는 안을 굳이 신속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한국이 먼저 (기금에)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일본 책임을 면책해 주는 것이 아닌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공식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수용 의사가 드러나는 분위기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소통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도쿄 AP연합뉴스
특히 일본은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 측과 민관협의회·공개토론회 등을 수 차례 개최한 데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 등은 “한일관계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은 인지한다”는 게 외교가 모습이라며 한국 정부 강제징용 배상안을 두고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며 조용히 반기는 분위기라고 일본측이 보는 상황을 전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