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닫은 中 큰손, 힘빠진 싱가포르 아트페어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1. 16. 16: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남아 최대 미술품 장터 '아트 SG' 가보니
5년 준비 끝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서 11일 개막했으나 판매실적이 저조했던 싱가포르 아트SG 현장. 【사진 제공=아트SG】

"최근 몇 년 사이 이렇게 한가한 페어(미술품 장터)는 없었다.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이 거의 없어서 계속 앉아만 있었다."

지난 14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 앤드 컨벤션센터에서 만난 한국 갤러리 디렉터는 한숨만 내쉬었다. 심사숙고하다가 주로 마지막 날 작품을 구입한다는 중국 컬렉터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주말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계 갤러리 관계자들도 "판매가 더디다(Sales were so slow)"고 입을 모았다.

지난 11일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페어로 화려하게 개막했지만 제1회 '아트 SG'는 15일 폐장일까지 웃지 못했다. 35개국 164개 갤러리가 참여해 관람객 4만2700여 명이 방문했으나 판매실적이 저조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출국 금지를 해제하면서 대거 몰려올 것으로 기대했던 중국 컬렉터들이 많지 않았으며 지갑도 열지 않았다. 중화권 최대 명절인 춘제를 앞두고 돈을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아트페어로 높아진 안목에 맞는 작품도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9월 프리즈 서울이 상대적으로 작품 수준은 물론 각종 부대행사도 앞섰다는 데 평가가 모아졌다. 싱가포르는 최근 홍콩에서 이탈한 금융기관과 펀드 종사자들은 물론 중국 본토에서 대거 이주해온 슈퍼리치들로 주목받아왔다. 2018년 아트SG 출범을 발표했을 때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한 이유다. 하지만 2019년 판매 부진으로 결국 막을 내린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의 악몽이 재연됐다. '싱가포르는 미술품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적도 인근 열대기후 나라로 습도가 높아 작품 보관이 쉽지 않다. 게다가 현지에서 작품을 구매해 집에 걸려면 부가가치세(GST) 8%를 추가로 내야 한다. 외국 컬렉터는 자유항을 통하면 세금을 면제해주지만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전시장에 서양인이 많이 보였지만 대부분 해외 주재원으로 '뜨내기' 손님이 많아 아트페어의 지속 가능성이 불확실하다.

주연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페어 첫날부터 갤러리스트들 실망이 커서 내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곳들도 있었다"고 했다.

아트SG를 지원한 싱가포르 문화청소년부 산하 내셔널아츠카운슬(NAC)은 가장 날씨가 좋다는 이때 맞춰 싱가포르 아트위크를 재개하고 싱가포르비엔날레와 탄종파가르 갤러리투어, 내셔널갤러리 전시 등으로 컬렉터는 물론 해외 관광객도 끌어모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싱가포르 문화예술의 특징과 매력을 보여주는 작가군이 부족했으며, 미술관과 갤러리 등 기반이 약했다.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 건물에 있는 명품 쇼핑가만으로 미술 컬렉터를 끌어들이기는 힘들다.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의 조지아나 아담 편집장은 "비엔날레와 갤러리 현장을 함께 둘러봤는데 눈길을 끄는 작품이 없었다"며 "홍콩 미술시장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고 했다.

화이트큐브와 데이비드즈워너 등 메가 갤러리는 첫날 매출 30억원을 올렸다고 발표했으나, 프리즈서울에 비하면 저조한 실적이었다. 화이트큐브가 인도네시아 컬렉터에 판매한 120만유로(약 16억원) 안젤름 키퍼 작품과 데이비드즈워너가 판매한 2만5000달러(약 3억원) 캐서린 번하트 작품이 눈에 띄는 수준이었다. 2억원 이상 고가 작품 판매는 부진했고, 2만~3만달러 작품 위주로만 팔렸다.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주말에는 컬렉터보다는 학생 등 일반 관람객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아트SG 공동 창립자인 매그너스 렌푸르 아트어셈블리 대표는 "동남아시아 인구가 6억5000만명으로 유럽에 맞먹고 경제성장률이 높아 잠재력이 높은 시장이라 최소 3년 이상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주말에 전용기로 젊은 컬렉터 마이클 스푸 황이 베이징에서 오고 상하이 UBS VIP고객들도 왔다. 중국 부자들이 이곳으로 영구 이주하거나 자식들을 유학시키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8년 아트 홍콩을 창설한 후 2013년 아트바젤을 운영하는 MCH그룹에 매각해 아트페어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하지만 렌푸르 대표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첫 회 실적에 실망한 주요 갤러리들이 내년에도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싱가포르 아트위크'를 총괄한 로우 엥 텅 NAC 부책임자는 "세금 측면에서 불리한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싱가포르 정부가 시각예술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5개년 계획 'SG Arts Plan'(2023~2027)을 세워 추진 중"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이한나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