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고물가에···취약계층 끼니 챙기느라 고심하는 무료급식소·푸드뱅크
16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밥퍼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급식소 입구부터 양념에 재운 고기 냄새가 났다. 된장국을 담은 냄비에서 김이 올라왔다. 반찬은 김치를 포함해 3찬이다. 매일 급식을 먹기 위해 500~6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혼자 살며 밥퍼를 수년간 이용해 온 천청자씨(83)는 “집에 있으면 밥 차려먹기 힘들다. 반찬도 다 사야 한다”며 “(밥퍼 밥은)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고 했다.
천씨에게 한결같이 따뜻한 끼니를 제공하는 밥퍼는 사실 고물가로 시름하고 있다. 식재료부터 전기, 가스비 등 공공요금이 모두 오른 탓이다. 김미경 밥퍼 나눔운동본부 부본부장은 “전기료는 재작년 12월 50만원 정도에서 작년 12월 거의 100만원에 육박했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식소 운영에 큰 도움이 되던 후원 기부도 줄었다. 김씨는 “업체에 기부 제안서를 내는데 ‘올해는 어렵습니다’ 하는 기업들이 꽤 있었다”면서 “기업들이 비정기적으로 기부하던 목돈이나 마스크 단체기부가 있었는데, 그런 기부가 줄었다”고 했다.
취약계층의 끼니를 책임져 온 다른 무료급식소들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역 인근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점심 배식을 마친 박경옥 총무도 “예전에는 명절에 떡국 떡 걱정을 안했는데 지금은 하고 있다. 연말에 들어온 떡으로 성탄절, 새해, 명절을 지내곤 했는데, 이제는 전처럼 풍성하게 못 끓여준다”고 했다. 후원이 전년보다 약 30% 줄어든 탓이다.
식재료를 기부받아 취약계층에 제공하는 푸드뱅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경제가 어려워져 기부는 줄었는데 부족한 식재료를 구매하기에는 물가가 너무 올랐다.
푸드뱅크는 주로 노년층이 이용한다. 이날 오후 기자가 찾은 서울 구로구의 한 푸드뱅크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네다섯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월 1회 방문에 4개 품목만 고를 수 있기 때문에 간장, 김 등 식료품을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었다.
김포푸드뱅크에는 개인사업장의 기부가 많이 줄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가게 운영이 어려워 빵집, 떡집 같은 업장들이 문을 닫은 탓이다. 김문영 김포푸드뱅크 팀장은 “개인사업하는 떡집이나 빵집의 기부가 40% 줄었다”며 “후원을 그만 둔 업체가 3분의 1 정도 되고 기부량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후원금은 그대로지만 40%까지 오른 물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다. 서울에서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A씨는 “100개 사던 식용유를 70~80개로 줄였다. 고추장, 된장, 쌈장류도 많이 올랐다”면서 “기업들이 후원금을 유지만 하지 늘리려고는 하지 않아서 아쉽다”고 했다.
푸드뱅크와 무료급식소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양질의 밥과 식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 내 학교와 기관 급식소에서 남은 반찬을 기부받아 인근 독거노인 등에게 배달하는 우주온 희망푸드뱅크 사무간사는 “기부받는 반찬 통이 8개였으면 지금은 5개, 6개로 줄었다”면서도 “부족하면 대신 옆에 가서 김이나 국으로 먹을 수 있는 레트로 식품이라도 꼭 사서 가져다 드린다”고 했다. 밥퍼의 김미경 부본부장도 “메뉴를 바꿀까 고심했다”며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심정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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