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디스전, 랩 게임과 인신공격 사이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2023. 1. 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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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플리키 뱅/ 사진=딩고 프리스타일

연초부터 싸움판이 벌어졌다. 래퍼 플리키뱅과 노엘이 서로를 향한 디스곡을 공개하며 날을 세운 것이다. 두 곡이 공개되며 힙합 팬들은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디스전은 디스와 전의 합성어다. 디스(diss)는 '존중하다'(respect)의 반대말인 disrespect의 줄임말이다. 여기에 전쟁을 뜻하는 전(戰)이 붙었다. 음악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는 래퍼의 모습을 전쟁에 비유한 것이다. 

플리키 뱅과 노엘의 디스전의 발단은 최근 종영한 '쇼미더머니11'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플리키 뱅과 한 팀이었던 블라세는 크루 디스전 상대 신세인에게 "신세인이 본명은 용준이, 이름부터 위험해 운전은 하지 말길"이라는 가사를 썼다. 신세인의 이름(신용준)과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노엘(장용준)의 이름이 같다는 점을 활용해 두 명을 동시에 디스한 것이다.

이를 접한 노엘은 비속어를 섞어가며 강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된장찌개 X먹고 산 X끼들이 드릴 하는 게 제일 역겨워"라는 글귀도 있었다. 힙합의 하위 장르인 드릴은 최근 영국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장르로 블라세, 플리키 뱅, 실키보이즈 등이 드릴 음악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블라세는 노엘의 반응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잠잠해지나 싶었던 갈등에 플리키 뱅이 다시 불을 붙였다. 유튜브 콘텐츠 딩고 라이징 벌스에 출연한 플리키 뱅이 "된장찌개 먹고 자랐지만, 음주운전 해본 적은 없어"라며 노엘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며칠 뒤 플리키 뱅은 자신의 사운드 클라우드에 'SMOKE NOEL'이라는 디스곡을 발표하며 자신의 디스 대상을 정확히 밝혔다. 노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강강강?'이라는 맞디스곡을 내며 본격적인 디스전이 시작됐다.

국힙 최대의 디스전 '컨트롤 대전'을 알린 스윙스. 랩 게임으로 시작한 디스전은 점차 폭로전으로 변질됐다./사진=저스트 뮤직

래퍼들이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부분은 래퍼의 태도,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곡과 가사의 일부가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디스전을 시작한다. 노엘은 디스전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신을 언급한 것이 불쾌했으며 플리키 뱅은 반성 없이 컴백하려는 노엘의 태도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플리키 뱅처럼 자신을 향한 디스가 아니여도 동료를 향한 디스에 발끈해 디스곡을 발표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원인은 다양하지만 디스곡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디스를 힙합의 한 문화로 인식하고 디스전 또한 랩 게임의 일부로 풀어내는 방식이다. 이런 디스곡의 경우 화려한 랩 스킬과 재치 있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쇼미더머니11'을 통해 알려진 던말릭·저스디스와 VMC의 디스전의 경우나 '쇼미더머니10'에 출연한 조광일-키츠요지의 디스전은 철저히 랩게임의 관점에서 서로의 태도와 랩 스타일 등을 지적했다. '쇼미더머니' 시리즈 내에서 펼쳐지는 팀 디스 배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내용은 디스의 목적이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에 있을 때다. 이 경우에는 민감한 사생활과 폭로가 점철된다. 지난해 말 이슈를 모은 MC스나이퍼와 탁의 디스전, 올티와 디젤의 디스전이 대표적인 예다. MC스나이퍼와 탁은 스나이퍼사운드 시절 수익 정산 및 대마 흡연 여부를 두고 폭로를 이어갔다. 올티와 디젤은 비트에 대한 페이 지불을 두고 서로의 치부를 폭로했다. 이 같은 디스전은 때때로 인신공격 양상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국힙합신에서 가장 유명한 디스전인 '컨트롤 디스전'은 두 가지 경우가 공존하는 사례다. 디스전에 불을 지핀 스윙스나 이에 맞디스한 테이크원, 딥플로우 등은 랩게임의 관점에서 디스전에 참가했다. 그러나 어글리 덕의 디스곡을 시작으로 이센스, 사이먼 도미닉, 개코 등은 그들 사이에 얽혀있던 사적인 치부를 드러내며 또 다른 양상을 보였다.

대부분의 디스전은 한 쪽이 반응을 하지 않으며 시들해지거나 양측이 서로 화해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과거 래퍼 리미나 키디비는 자신을 향한 성희롱적 디스에 결국 고소를 진행했다. 지난해 중반 진행된 손심바와 감마의 디스전에서는 감마가 지인들과 함께 손심바의 소속사 데자부 그룹 사옥을 습격해 시설물을 파괴하며 법적인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나뉘지만 디스전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디스곡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판정승' 양상을 취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 참여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고 참가자 모두 '안 한 것만 못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팬들이 승패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은 음악성이다. 디스전은 문서를 통해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는 법정 다툼이 아니라 힙합 음악을 토대로 벌이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디스전만의 통쾌한 펀치라인과 색다른 플로우는 힙합이라는 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언급된 리미의 경우 음악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급한 디스곡으로 공격받았기에 맞디스곡이 아닌 고소로 대응했다. 아무 의미도 명분도 없는 디스곡은 팬들도 환영하지 않는다. 물론 '어디까지가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시 노엘과 플리키뱅으로 돌아오면 현재 두 사람의 디스전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플리키뱅이 노엘의 맞디스곡 이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또한 전두환 정권을 언급한 노엘의 디스곡 일부 가사가 아버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엮이며 정치권까지 불똥이 튀었다. 새해의 시작을 달군 두 사람의 디스전은 화려한 랩게임과 무의미한 인신공격 중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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