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끝났는데 자리 지키는 과기 출연연 원장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신임 원장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 현행 규정에 따라 전임 원장은 새 원장 선임 전까지 자리를 지킨다. 자연히 전임 원장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기간이 길어지며 기관 운영에 차질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NST에 따르면 이날 기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들의 임기가 이미 만료됐다. 이미혜 화학연 원장은 지난해 11월 10일, 김종남 에기연 원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임기가 끝났다.
심지어 신형식 기초과학지원연 원장은 지난해 4월 30일까지가 공식 임기였다. 신임 원장 선임 절차가 진행됐으나 지난해 말 선임요건인 NST 이사회 재적이사 과반 득표 후보자가 없어 선임이 무산됐다.
그나마 화학연 신임 원장 선임만 절차가 진행중이다. 최근 후보자 서류 접수를 마치고 후보자에 대한 면접과 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설 연휴 이후인 이달 4~5번째 주 사이 3배수가 발표된다. 빠르면 2월, 늦어도 3월 안에는 원장 선임 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12월 신임 원장이 임명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경우 같은 해 9월 3배수를 발표하며 3배수 발표에서 원장 선임까지 3개월 정도가 소요된 점을 감안할 때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초과학지원연과 에기연은 선임 절차를 시작조차 못했다. 기초과학지원연의 경우 지난 12월에 원자력연과 전자통신연과 함께 원장 선임 심사가 진행됐지만 당시 후보 기준 미달을 이유로 선임이 불발됐다. 후보자 공모부터 다시 선임과정을 시작해 전임 원장 임기 종료 후 새 원장 선임에 1년이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에기연은 원장 후보자 접수조차 진행하지 않은 상황이다.
출연연 원장 선임 지연은 과학계 고질병으로 꼽힌다. 원자력연과 전자통신연 모두 전임 원장 임기 종료 후 새 원장이 선임됐다. 김명준 전자통신연 전 원장과 박원석 원자력연 전 원장 모두 지난해 3월 31일이 임기 만료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 기관의 현 원장들도 전임 원장의 임기 종료 후 선임됐다. 대부분 기관들의 원장 선임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문재인 정부이던 2017년 9월 임기가 종료된 기관장은 다음 기관장이 선임되지 못한 상황이어도 곧바로 퇴임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원장 선임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규정이 만들어지자 원장 공석 기간이 이전보다 늘어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2020년 규정을 다시금 개정해 기관장이 선임되지 않은 경우 새 기관장 선임 전까지 원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NST 관계자는 “임기제 준수의 의미보다 기관 경영의 안정성을 더 중시해 규정을 다시금 바꾼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원장 임기가 끝날 때 되면 레임덕은 당연히 존재한다”며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애매하다. 그 기간 동안 연구원은 소강 상태에 접어든다”고 말했다.
NST 소속 출연연 외 과학계 전체로 넓혀봐도 ‘늑장선임’ 상황은 동일하다. KAIST 부설 고등과학원, 나노종합기술원, 동남권원자력의학원, 한국원자력의학원 모두 전임 기관장의 임기가 만료됐지만 기관장 선임이 이뤄지지 않았다. 광주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수장들의 임기 역시 상반기 내 끝나지만 원장 선임은 '하세월'이다. NST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내 임기가 만료되는 과기 출연연 기관장들의 숫자가 10명이다. 이 자리에 대한 선임 역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추측컨대 정부에서 원하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 하다”며 “3배수에 정부가 원하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고, 그 3배수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듯 하다”고 말했다.
NST 관계자는 “임기 만료 3개월 이전에 기관장 공모를 시작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며 “최대한 일정을 빠르게 진행한다고 쳤을 때 2개월을 최소 소요기간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