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징용해법 공식화뒤 첫 국장급협의…'호응조치' 공은 일본에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한국 정부가 공개 토론회에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풀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지 닷새 만에 한일 외교당국이 대면 협의에 나섰다.
한국 쪽이 해법을 공식화한 만큼 초점은 일본의 변제금 조성 참여와 사죄 등 '성의있는 호응' 수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16일 오전 일본 외무성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국장급 협의를 개최했다.
지난 12일 정부가 공개 토론회를 열어 그동안 논의해온 해법의 윤곽을 제시한 뒤 한일 외교장관 통화(13일)에 이어 국장급 협의까지 한일 당국간 후속 논의가 속도감 있게 이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이날 협의에서 서 국장은 공개토론회 등 '국내적 분위기'를 전달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한국 측은 공개 토론회 당시 피해자 측이 정부 해결안에 반발했고 국내 여론에서도 아직 높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등의 상황을 설명하고, 접점을 찾으려면 일본의 입장 진전이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토론회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의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 특히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의 재원 조성 기여를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피해자들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토론회 개회사에서 "우리가 결단력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디면 일본도 여기에 호응해 발맞춰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한국의 선제적 해법 마련에 일본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촉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한국 상황을 의식한 듯 공개 토론회 직후부터 일본 언론 등을 중심으로 일본의 호응 조치 가능성도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고 기업에 배상금 반환을 요구하는 '구상권'을 포기하면 일본 기업의 기여를 허용하는 방안이 일본 정부 내에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과거 일본의 태도보다는 분명 진전된 것이지만 결국 악마는 여러 복잡한 쟁점의 '디테일'에 있다는 평가다.
일단 일본은 한국의 구상권 포기를 통해 자국 기업의 재원 참여가 판결 이행 성격이 아니라는 형식을 갖추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다.
모금 방식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판결금 지급을 위한 출연금을 낼 경우 향후 배임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재단이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지정기탁 방식의 기부금 접수가 가능하다는 것이 재단 측 설명이다. 앞서 포스코가 30억원씩 두 차례 출연한 것 역시 사회공헌 차원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토론회 당시 발제문에서 "기업들이 억지로 프로세스에 참여하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헌'이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피해자와 기업이 서로 윈윈하는 방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본 측에 판결금 지급이 아니라는 명분을 줄 수 있느냐가 피고 기업의 참여를 끌어낼 핵심 변수지만 동시에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책임 이행 요소도 갖춰야 한다는 점이 정부의 딜레마다.
사죄와 관련해서는 역대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과거사 관련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이 유력한 '절충점'으로 점쳐지는데, 중요한 것은 과거 사죄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이 진정성 있게 드러날 수 있느냐다.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무라야마 담화)나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등에서 아시아 국민들 또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 바 있다.
그 이후 자민당 주류에서 일본의 역사인식이 후퇴하고 우경화 경향을 뚜렷이 보였다는 점에서 이를 다시 계승한다고 밝히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한일 간 이미 합의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나 일본이 기존 담화에서 밝힌 내용을 재확인하는 것이 피해자들의 기대를 충족할지는 미지수다. 피해자 측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사실인정'을 전제로 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일간 협의가 막바지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처럼 까다로운 쟁점을 포괄할 '묘안' 도출이 가능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르면 다음 달 방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방일이 성사되면 한일간 정상 셔틀외교가 재개된다는 의미가 있으나 강제징용 문제 진전을 통한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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