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통로 막지 말아주세요”···청소년들 호소에 화답한 강남구

김기범 기자 2023. 1. 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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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 공원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양서류 맹꽁이의 모습. 숲여울기후환경넷 제공.

지난해 11월9일 저녁,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 공원에서 맹꽁이 모니터링을 하던 청소년 동아리 자연보듬이단 소속 학생들은 유수지 내에 새로 조성된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산책로에 높이 10㎝ 안팎의 경계석이 설치된 것을 발견했다. 산책로와 녹지를 구분하는 흔한 경계석이었지만 청소년들은 몸길이가 5㎝ 정도인 맹꽁이, 특히 새끼 맹꽁이들에게는 넘어가기 힘든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 공원 내 산책로에 설치됐던 경계석의 모습. 숲여울기후환경넷 제공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 공원 내 산책로에 설치됐던 경계석이 철거된 뒤의 모습. 숲여울기후환경넷 제공

자연보듬이단에 3년째 참여하고 있는 대원국제중 2학년 이연두양은 “특히 산책로 양쪽에 경계석이 있다보니 겨우 한쪽을 넘어가더라도 다른 경계석을 넘지 못하고 사이에서 죽게될 위험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맹꽁이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뒤 산란을 위해 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 경계석이 이동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자연보듬이단 청소년들은 강남구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환경단체 숲여울기후환경넷과 함께 2015년부터 멸종위기 양서류 맹꽁이 생태를 모니터링해왔다.

자연보듬이단 청소년들과 숲여울기후환경넷은 “사람에겐 별것 아닌 경계석이 맹꽁이 통로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으며, 사람에게도 경계석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의견을 모아 다음날인 같은달 10일 강남구청 치수과에 전달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 공원에서 청소년들로 이뤄진 자연보듬이단 학생들이 맹꽁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자연보듬이단 이연두양 제공.

‘맹꽁이 통로’ 민원을 전달받은 강남구 치수과는 애초에는 경계석이 맹꽁이에게는 높은 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지난달 초 경계석을 없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산책로를 다시 단장했다. 위창현 치수과 하천관리팀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일반적인 형태의 경계석이다 보니 맹꽁이에 대한 고려 없이 설치했었다”며 “맹꽁이에게는 높은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청소년들과 환경단체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봤기 때문에 개선작업을 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 공원에서 청소년들로 이뤄진 자연보듬이단 학생들이 맹꽁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자연보듬이단 이연두양 제공.

박상인 숲여울기후환경넷 대표는 “구청 입장에서 이미 콘크리트 타설까지 진행된 공사를 다시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맹꽁이라는 작은 생물을 배려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다른 지자체들도 야생동물 정책에 참고해야 될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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