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 사들여 공공임대로”···취약계층 내세운 건설사 구하기?

류인하·심윤지 기자 2023. 1. 16. 14: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취약계층 보호를 명목으로 민간 미분양 아파트 매입 검토에 들어갔지만 적절성을 놓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분양 사업장에 대해 5조 원 규모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보증상품을 마련하는 등 이미 공적자금을 투입한 상황에서 악성 미분양 사들이기까지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건설사 연쇄부도를 해결할 목적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다 자칫 공공 재정 건전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아파트를 매입하더라도 적정 분양가격을 지불해야 하는데 한 채당 적어도 수 억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정부예산으로 구입하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아파트 미분양이 위험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국토부·환경부 연두 업무보고에서 “미분양 주택들이 시장에 나오는데 정부, 공공기관이 이를 매입하거나 임차해서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깊이 있게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수는 5만8027가구로, 정부가 미분양 위험선으로 판단하는 6만2000가구에 근접했다. 이중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7110가구에 달한다. 입주가 시작되고도 주인을 찾지 못한 집이 7000가구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12월 미분양 주택 수는 취합 전이지만 현재의 분양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6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존 매입임대주택과 동일한 방식으로 준공 후 미분양 매물을 매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매입임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기존 주택을 사들인 뒤 청년·신혼부부를 비롯해 경제취약계층 등에 저렴하게 임대하는 주거복지사업으로, 이같은 방식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여 공공임대 물량으로 풀겠다는 말이다.

문제는 한정된 예산이다. 준공후 미분양 매물이라 하더라도 아파트는 기존 다세대·다가구와 매입단가에서 차이가 크다. 정부가 올해 매입임대주택(3만5000가구)에 편성한 주택도시기금은 6조763억원이다. 단순 산술로도 가구당 매입비용으로 1억7300만원 가량을 쓸 수 있는 셈이다. 아무리 할인분양을 하더라도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 36~59㎡ 중 2억원 미만으로 매입가능한 물량은 없다. 그동안 LH가 다세대·다가구 주택 중심으로 매입임대 물량을 사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멱살을 잡고 ‘반값보다 더 싸게 안 주면 가만히 안 둔다’고 하지 않는 이상 기존 분양가보다 큰 폭의 할인가로 미분양 물량을 넘기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아무리 미분양이 나도 준공 전까지는 할인분양을 하는 경우가 없다”면서 “금융위기때 할인분양을 한 적은 있지만 그때도 15~20% 사이에서 할인이 들어갔을 뿐 그 이하로 건설사가 떠안고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특혜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공공임대 예산을 그렇게 삭감해놓고 이제와서 미분양을 매입임대로 사들인다는 것은 넌센스”라면서 “미분양은 잘 안 팔리는 지역에 지었거나 고분양가이거나 각각 원인이 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미분양을 사줘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공공임대가 필요한 지역과 미분양 지역 간에도 괴리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공공임대가 필요한 곳은 수도권 지역인데 정작 미분양이 다수 발생하는 곳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지방이다. 취약계층 보호를 명분으로 지방 미분양을 매입한다면 불필요한 정부예산을 들여 건설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화해야한다고 말해온 윤석열 정부가 정작 개입하면 안 될 상황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라며 “건설업체가 어려워지면 정부가 공적기금을 투입해준다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분양 아파트를 환매조건부로 반값에 매입해 공공임대로 풀어줄 것을 줄곧 주장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역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정택수 경실련 정책국 부장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무주택 서민에게 공급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분양가격을 거의 그대로 지불하고 산다면 건설사 수익 올려주기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설경기가 좋을 때는 선분양을 통해 건설사가 수익을 얻어오다가 갑자기 아파트값이 하락하면서 발생한 리스크를 정부가 메워주려는 방식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