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강화해 층간소음 잡겠다?" 탁상공론과 뼈아픈 현실

김정덕 기자 2023. 1. 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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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층간소음 기준 강화
피해 구제에 도움될지 미지수
중재 시스템조차 제 역할 못 해
법 만들고 건설사 책임 못 박아야

"층간소음 기준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층간소음 성가심' 정도는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다. 층간소음 분쟁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인정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30일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 및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 소식을 알리면서 이렇게 밝혔다. 과연 정부의 기대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층간소음의 갈등 해결의 핵심은 피해자 구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올해 1월 2일 새로운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 및 기준에 관한 규칙'이 적용됐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을 강화한 거다.[※참고: 이 규칙은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의 공동 부령으로 '공동주택 층간소음 규칙' 혹은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이라고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으로 통일했다.]

변경된 규칙의 핵심은 뛰거나 걸을 때 발생하는 직접충격 소음 중 '1분간 등가소음도'의 기준을 주간 39㏈(데시벨), 야간 34㏈로 바꾼 거다. 기존에는 주간 43㏈, 야간 38㏈이었다. 기준치를 각각 4㏈씩 낮춰 종전보다 작은 소리를 층간소음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직접충격 소음 중 '최고소음도'와 공기전달 소음인 '5분간 등가소음도'는 현재 기준을 유지했다.

[※참고: 층간소음은 직접충격 소음인 '1분간 등가소음도'와 '최고소음도', 공기전달 소음인 '5분간 등가소음도'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20㏈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40㏈은 조용한 도서관에서의 소음, 60㏈은 일반적인 대화, 80㏈은 알람시계 소리 수준이다.]

새로운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층간소음 발생 빈도나 이웃 간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부의 바람은 현실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 강화에 따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어서다.

층간소음 피해를 입었을 경우, 피해자의 선택지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이하 이웃사이센터)'에 중재를 요청하는 거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배려해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피해자가 아무리 피해를 호소해도 피해 구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웃사이센터는 중재 기능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이웃사이센터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피해자 가구를 방문해 층간소음을 측정해주는 거다.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전문가도 아닌 센터 직원들의 층간소음 측정치가 정확한지도 의문이지만, 법적 분쟁 시엔 효력조차 없다. 이웃사이센터도 자신들의 층간소음 측정결과서를 "층간소음 중재 상담 목적에 따라 작성하는 것"이라면서 "중재 상담 목적 이외의 용도로는 제공 및 사용이 불가하다"고 밝히고 있다. 전화상담 후 현장 조사까지 평균 2개월이 걸리고, 중재 상담에만 2개월이 걸리는데, 피해자가 얻는 건 쓸모없는 층간소음 측정결과서가 전부란 얘기다.

그래서인지 2012년에 설립한 이웃사이센터는 층간소음 민원 통계를 내면서도 최종 처리 결과는 발표하지 않는다. 고객만족도 점수가 100점 만점에 고작 50점대(2014~2018년 5년간)에 불과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공동주택 층간소음은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을 높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사진은 원희룡(왼쪽) 국토교통부 장관.[사진=뉴시스]

두번째 선택지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법적 절차(재정신청)를 밟는 거다. 환경분쟁조정위는 피해자를 위해 적은 비용으로 피해 사실을 대신 입증해주고, 법적 절차도 진행해준다. 하지만 피해자가 재정신청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서다.

서울시 환경분쟁조정위에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해 분쟁조정 과정을 경험한 60대 박인선씨(가명)의 사례를 보면 피해자 구제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음은 박씨의 녹취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다.

[※참고: 박씨의 집은 지은 지 2년밖에 안 된 30세대 미만의 아파트다. 30세대 미만이면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을 적용받는다. 그러면 각종 건설 기준이 완화되는데, 층간소음 기준치도 5㏈ 더 허용된다. 그럼에도 박씨가 사는 집의 층간소음 측정치는 기준치를 훨씬 웃돌았다. 박씨는 윗집이 이사 온 이후 극심한 층간소음에 시달렸다.]

박씨가 재정신청을 하자 며칠 후 심사관이 찾아왔다. 그는 문도 닫아보고, 바닥도 두드려보고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건물 자체가 층간소음에 취약한 구조다. 자재들도 엉망이다. 윗집이 아무리 문을 살살 닫아도 소음이 날 수밖에 없다. 문을 여닫지 말고 살라 할 수도 없고…. 재판으로 가려면 증거가 충분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재판하면 서로 얼굴도 붉혀야 한다. 그러고도 정신적 위자료가 고작 수십만원으로 책정될 수도 있고, 윗집에선 위자료를 줬으니 이제 막 뛰어다녀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걸 원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심사관은 말을 계속했다. "게다가 재판을 신청했다가 기각이라도 되면 그 이후 다시 해야 하는데, 그때엔 피해 기간을 재판이 기각된 후부터 산정한다. 그러니 중재가 최선이다. 합의서로 약속을 한번 만들어보자. 다만 합의를 하면 환경분쟁조정 신청은 철회해야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환경분쟁조정 심사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결국 해법은 층간소음 유발자와 피해자 간 중재뿐이라는 얘기다. 피해자인 자신이 위층의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 박씨는 오열했다.

심사관의 설명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재판까지 가기 힘들고 재판을 한다고 해도 피해자의 실익과 층간소음 유발자의 손실이 크지도 않으며 층간소음의 최초 원인 제공자인 건설사는 분쟁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환경분쟁조정위는 광역지자체별로 설치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다. 온라인으로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지자체는 서울시가 유일하다. 경기도는 조직도에서 환경분쟁조정위 자체를 찾을 수가 없다. 분쟁조정 신청조차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을 강화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층간소음 관련 법부터 만들어야

강규수 소음진동피해예방시민모임 대표는 "규정만 만들어 놓는다고 그냥 굴러가는 제도는 없다"면서 "제도가 굴러갈 수 있게끔 부수적인 장치를 갖춰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큰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강 대표는 말을 이었다.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으로 피해자를 구제할 수도 없고, 되레 국민들끼리 얼굴 붉히고 싸우게끔 만든다. 건설사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기준치를 넘어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이에게 제재를 가할 수도 없다. 피해 구제도 안 되는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은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층간소음에 관한 법률을 만든 후 이 법에 따라 공동주택이든 다가구주택이든 건설사가 제대로 주택을 짓게 하고, 기존 건물에 관한 책임도 지게 해야 한다."

물론 2019년 감사원이 LH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인정한 바닥성능재의 성능이 대부분 수준 미달이었다는 점을 적발한 후 층간소음 사후확인제(주택 사용승인 전에 층간소음을 측정해 승인권자에게 제출하도록 한 제도ㆍ2022년 8월)가 도입됐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세부 규정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층간소음 측정치가 기준치를 넘었을 때 이를 부실시공으로 볼 것인지 여부도 불투명하고, 샘플 측정을 얼마나 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건설사가 층간소음 측정치를 입주자들에게 알릴 의무 규정도 없어 빈틈이 많다는 지적도 받는다.

정부는 '세대간 층간소음 기준'을 강화하면서 "층간소음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층간소음 피해자의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이는 모르고, 피해 또한 상당하다. 층간소음 유발자의 대상을 건설사 등으로 넓히고, 그에 걸맞은 대책과 좀 더 촘촘한 처벌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섣부른 장밋빛 전망을 내놓을 때가 아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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