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명’부터 ‘탈(脫)명’까지, 사법리스크 이후 ‘이재명계’ 분석 [김지현의 정치언락]
김지현 기자 2023. 1. 16. 14:12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경기 성남지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 출석했습니다.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뒤로 빗어 넘긴 머리에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그의 뒤로는 마치 드레스코드라도 맞춘 듯 파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맨 현역 의원들이 줄지어 섰죠
여기에 ‘개딸’들과 보수 유튜버, 취재진 등 1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포토라인까지 올라가는 100m 남짓한 거리 내내 치열한 몸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개딸’들과 보수 유튜버, 취재진 등 1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포토라인까지 올라가는 100m 남짓한 거리 내내 치열한 몸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치열했던 어깨싸움 끝에 이 대표 주변 ‘명당’을 차지한 의원들을 보시죠. 이왕 사진 찍히는 거 제대로 찍히고 싶었는지, 마스크도 벗어버린 분들도 많네요. 사진상 안 보이는 저 뒤로도 현역 의원 수십 명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통상 정치권에서 말하는 ‘계파’는 대선주자급 인물을 중심으로 뭉치는 모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현재 민주당에서 계파라 할 수 있는 건 이재명계 뿐입니다. 다만 지난해 대선 후 11개월 동안 지방선거부터 전당대회, 사법리스크 등을 거치면서 이재명계 내부에도 적지 않은 기류 변화가 있었는데, 그게 이번 검찰 출석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네요.
일단 온 사람들부터 한번 보겠습니다.
지난해 8월 ‘이재명호’가 출범한 뒤 당 내에 한 자리씩 받은 사람들, 이른바 ‘신(新) 친명’계는 총출동했습니다. 들리는 소문엔 일부는 동행 일정에 내심 불편한 기색도 내비쳤다지만, 어쨌든 당직자라 어쩔 수 없이 전원 출석한 듯 보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남아 퇴근길도 함께 했습니다. 당에선 의원님들 편히 대기하시라고 근처에 대형버스도 한 대 세워뒀고요. 박 원내대표와 정 최고위원 등은 기다리는 의원들에게 저녁식사로 돼지갈비를 쏘기도 했다네요.
아래는 이날 밤 10시 42분 조사를 마치고 나온 이 대표 옆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의 검찰청 앞 ‘인증샷’입니다. 박 원내대표, 정청래 서영교 박찬대 최고위원, 조정식 사무총장,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 김성환 정책위 의장,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 이해식 김남국 사무부총장, 임오경 대변인(이 대표 출석길엔 눈물도 보였습니다) 등이었다네요.
정 최고위원은 나가는 길에 이 대표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기자를 옆으로 밀어 논란이 되기도 했죠. 다음날 SNS에 ‘쏘리’라고 쿨하게 두 글자 사과글을 올린 그는 13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가 메시(아르헨티나 축구선수)처럼 밀었다더라”며 “기자를 보호하려고 그랬던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들 정도면 ‘친명’을 넘어선 ‘찐명(진짜 친이재명)’으로 분류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한 중진 의원은 2012년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가 검찰에 소환됐을 때를 회상하며 “조사 받는 사람 입장에선 들어갈 때보단 나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라며 ”박 전 원내대표 때도 들어갈 땐 율사 출신 5명만 동행했지만 자정 경 나올 땐 현역 의원 40여 명이 마중 나갔다”고 했습니다.
차기총선 도전자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래도 당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있으니 눈도장을 찍어야겠죠. 지역구를 받아야 하는 비례대표부터 원외 지역위원장과 원외 대변인 등이었습니다. 이 대표 변호인으로 조사실에 입회했던 박균택 전 광주고검장과 당 법률위원장을 맡은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도 광주 지역에서 차기총선에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신친명계 내에선 조정식 이해식 정태호 강준현 의원 등 ‘이해찬 라인’도 눈에 띕니다. 이해찬 전 대표도 이 대표 소환 다음날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 직접 출연해 “(검찰 소환은) 야당 총재도 우리가 불러낼 수 있고, 구속, 기소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겁주기용”이라고도 했죠. 이 전 대표와 측근 그룹이 다음 총선 공천 때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 당 내에 이미 파다한 배경입니다.
반면 당연히 왔을 법한데 의외로 안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원조 친명계인 ‘7인회’ 중에선 절반도 안 왔습니다. 7인회는 대선 전인 지난해 1월 “이재명 정부에서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까지 선언했던 이 대표의 최측근들입니다. 그런데 정성호(4선) 김병욱 김영진 임종성(재선) 김남국 문진석(초선), 이규민 전 의원 중 이날 현장엔 당직을 가진 김병욱 김남국 문진석 의원만 왔습니다.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된 뒤로 이 대표에게 줄곧 애정 어린 쓴 소리를 해 온 맏형 정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개인 일정이 있었다. 함께 가고, 안 가는 것이 특별한 문제인가”라고 했습니다.
대선 때 당 사무총장과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맡았던 ‘브레인’ 김영진 의원도 이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김 의원은 이 대표의 보궐선거 및 당 대표 출마 강행을 말리는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로도 이 대표가 몇 차례 SOS를 보냈는데도 거부한 채 지역구 활동에 올인 중입니다. 대선 때 이 대표를 도왔던 의원들도 여럿 안 왔습니다. 친명계로 분류됐던 백혜련 의원을 비롯해 역시 대선 선대위 때 대변인을 맡아 이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이소영, 홍정민 의원도 안 왔습니다. 한 의원은 “세 사람 모두 대선 이후 이 대표와는 거리를 두더라”고 했습니다.
사법리스크가 고조될수록 이런 ‘탈명(脫이재명)’계도 점차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들을 겨냥한 ‘개딸’들의 문자테러도 이미 본격화된 모습입니다.
이 대표와 정치적 입장을 함께 해 온 강경파 의원들이 안 온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멤버 중 검찰에 대해 유독 날을 세우던 김용민 민형배 의원 등 모두 안 나타났죠. 이들과 가까운 한 의원은 “강경파들은 끝까지 이 대표의 ‘나홀로 출석‘을 주장했다“며 ”이 대표가 검찰에 핍박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취지”라고 전했습니다. 지난해부터 ‘윤석열 퇴진 집회‘까지 다니며 이 대표를 엄호해 온 5선 안민석 의원도 안 왔네요. 안 의원은 지난달 말에만 해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가 검찰 소환에 당연히 불응할 것”이라며 “500원을 걸어도 된다”고 자신있게 장담했던데 내기에도 졌네요.
이 대표의 지역구인 인천에서도 이대표 외 총 10명의 민주당 의원 중 박찬대 최고위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 왔습니다. 호남에서조차 신정훈(전남 나주화순), 김원이(전남 목포), 주철현(전남 여수갑) 의원 등 현역 의원이 3명이나 와서 지역 정가에선 화제였다는데, 상당히 상반되는 모습이네요.
아, 인천 지역구 의원 중에서 민주당 대신 국민의힘에서 윤상현 의원(동구미추홀을)이 직접 나왔습니다. 윤 의원은 현장에서 “누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데 같은 당 지도부와 강성 지지자들을 호위무사로 대동하느냐. 괴이하고 어이없는 풍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직도 민주당 내에선 당 대표의 소환길에 의원들이 동행한 것을 두고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상민, 박용진, 조응천 등 확실한 ‘비명’계 의원 외에, ‘중립지대‘의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원들이 병풍이냐”는 불만부터 “당사 압수수색 때도 의원들을 내세우더니 이젠 검찰 앞에도 우르르 데려가냐”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중립 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가 절대 아무도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도 지지자나 당직자들은알아서 갔을 텐데, 이 대표가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니 다들 경쟁적으로 눈도장 찍으려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이 오늘(16일) ‘위례·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추가로 소환 통보를 했다죠. 이 대표 측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앞으로 검찰 소환 요청에 응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했는데요, 그게 이 대표 마음대로만 되는 건 아닐테니까요. 추가로 출석하게 되면 그 땐 친명계 내에 또 어떤 흐름 변화가 생겼는지 같이 눈여겨 보시죠.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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