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에게 '이태원 참사'와 '2차 가해'의 책임을 물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들을 향한 '2차 가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뉴스타파는 '2차 가해' 문제에 침묵해 온 이상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장관을 만나 입장을 물었다. 이 장관은 끝내 입을 다물었다.
'2차 가해'에 손 놓고 있는 정부와 여당
지난해 12월 중순 이태원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는 한 달이 다 되도록 2차 가해와 조롱에 시달리고 있다. 분향소 바로 옆에서 매일 집회를 열고 있는 보수단체 '신자유연대'는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1일에 한 신자유연대 관계자는 분향소와 유가족들을 향해 "뭘 기억해? 이태원이 뭔데?"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8일에는 분향소를 무단 촬영하다 한 희생자 유가족이 항의하니 또 욕설로 대응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행안부는 대책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방치나 다름없다. 행안부 내에 유가족 지원 조직인 '이태원 참사 지원단'이 있지만,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임시 추모·소통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청을 용산구청에 전달한 게 전부다. 유가족과 희생자를 겨냥한 2차 가해, 특히 '신자유연대'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측은 지난달 20일 유가족 면담 때 '분향소 방문'과 '신자유연대의 집회 장소 변경 설득'을 약속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연히 (설득) 해 봐야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3주가 넘도록 분향소에 방문하지도, 신자유연대와 접촉하지도 않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달부터 이달 12일까지 이만희 의원실에 총 세 번 연락해 "왜 분향소 방문, 신자유연대 설득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 물었지만, 이만희 의원 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경찰도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 하고 있다. 현재 용산경찰서는 신자유연대 측이 분향소 방문객·봉사자 등과 충돌하지 않도록 집회 현장을 관리하는 일만 하고 있다. 2차 가해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용산경찰서 측은 "집회시위법상 신자유연대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다만 분향소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으니 유족을 자극하지 않도록 '방송하지 마라', '촬영하지 마라'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으로 '이태원 참사 대응 TF'에서 활동하는 오민애 변호사는 "분향소 행사는 집시법에서 정한 '관혼상제에 관한 집회'로 볼 수 있고, 집시법에는 '집회를 방해할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따라서 신자유연대의 분향소 행사 방해는 실정법 위반 행위라 할 수 있다. 경찰이 그런 방해 상황을 목도했을 때는 충분히 권한을 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방심위가 알아서 한다"는 정부... 지원은 '전무'
신자유연대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이태원 참사를 다룬 기사 댓글과 유튜브 등을 통해 2차 가해성 발언, 조롱, 유언비어가 계속 양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가 할 일'이라며 자신들은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경찰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악의적 게시물을 적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삭제나 접속 차단 요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 특히 인력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실제로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 2차 가해를 막으려 만들었다는 경찰청 사이버대책상황실 인력은 고작 5명에 불과하다. 각 지방경찰청의 사이버 수사 인력도 전혀 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평소에 사이버 수사하던 직원들이 같이 담당한다. 이태원 참사 2차 가해만 전담해서 수사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이버 명예훼손·사기·도박 사건 등도 수사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문제에 집중하라는 지침은 내리고 있다"고도 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지난 5일까지 69일 동안 경찰이 입건 전 조사 및 수사한 '2차 가해' 사건은 전국적으로 37건에 불과하다. 이 중 경찰 단계 수사가 끝난 것은 11건(송치 8건, 불송치 3건)이었다.
방심위도 자체 인력만으로 악의적 게시물을 모니터링하며 삭제와 접속 차단 조치를 하고 있다. 다만 게시물을 삭제하기 위해선 심의에만 2~3일이 걸린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2차 가해 콘텐츠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지난해 12월 8일 기준 방심위는 이태원 참사 관련 '자극적·비하성 정보' 1072건을 삭제·차단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저희가 정부와 협조하거나 협력 회의를 한 건 없었다. 정부에서 요청도 없었다. 방심위가 민간기구여서 (정부와 협력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소속인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이 '적극 대응'을 지시하면 충분히 더 많은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주 일상적인 상황에서야 당연히 경찰 사이버수사대나 방심위에서 할 수 있지만, 참사 발생 열흘 만에 약 7000만 건의 악성 댓글이 달리는 건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잖아요. 사실상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가 양산되지 않도록 적극 대응을 해야 되는 거죠. 예를 들면 각 부처마다 디지털 사회의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응하는 인력이 있을 거예요. 그 인력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약에 부족하다면 인력을 채용해서라도 짧은 시간 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2차 가해를 방치해서 2차, 3차 피해자가 계속 생기면 이건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소속
2차 가해 막으려 유족들만 '고군분투'... 이상민 장관은 끝내 침묵
유가족들은 스스로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분향소 방문객과 유족을 무단 촬영하고 있는 신자유연대를 막기 위해 집회 장소에 가림막을 설치했다. 또 신자유연대가 분향소로 오지 못하게 법원에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경찰이 신자유연대의 추모 방해를 방치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제기한 상태다.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악성 게시물·댓글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 씨의 아버지 이정민 씨는 "정부가 스스로 각성해야 합니다. 이게 비단 저희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세월호부터 시작해서, 재난 사고 때마다 끊임없는 악성 댓글들과 2차 가해가 만들어져 왔거든요. 이것 역시 사회적 재난입니다"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의 핵심 책임자들이 '2차 가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기 위해 지난 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장을 찾았다. 국정조사 정회 때 청문회장을 나오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국정조사특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을 만났다.
취재진은 이상민 장관에게 2차 가해 문제와 신자유연대에 대한 입장, 분향소 방문 의사 등을 물었다. 이만희 의원에게는 왜 분향소를 가지 않는지, 신자유연대를 설득하겠다는 약속은 왜 안 지키는지 질문했다. 이상민 장관은 수행을 나온 행안부 공무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를 떴고, 십여 차례에 걸친 취재진의 질문에 한 번도 답하지 않았다. 이만희 의원도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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