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예술가입니다

2023. 1. 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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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시립화곡청소년센터
아이들은 예술가다. 피카소도 부르짖었는데 나는 매순간 경험하고 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 수업이 서울시에서 하는 청소년 동행 캠프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는 예술과 캠프가 제격이고 말고. 오늘은 서울 시립 화곡 청소년 센터 아이들 스무명과 현장 수업을 진행했다. 서울 공예 박물관과 서울 시립 미술관. 현장에서 수업하자는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여 만반의 준비를 해주셨는데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아이들을 데리고 먼데 이동하고 인솔하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기에 함께해주는 선생님들이 특별히 고마웠다.

예술 수업을 진행하며 늘 현장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진짜 향유란 미술관까지 가는 여정까지 포함하기에 그 경험을 많이 하길 바라는데 어쩔 수 없이 자료 화면으로만 봐야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오늘은 바라던대로 현장, 그것도 박물관, 미술관을 누비게 된다, 신난다! 도 잠시, 현재 진행중인 박물관, 미술관의 전시들이 그닥 신나는 전시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너무 점잖거나 또는 어렵거나.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믿는다. 예술 감성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분명 아이들은 각자의 상상 주머니를 열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므로 재미없는 전시란 있을 수 없지. 오히려 나만의 재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테니 더 좋을거라고 믿었다.

먼저 서울 공예 박물관 전시를 보고 내 마음에 들어온 단 한 점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15분 글쓰기를 했는데 역시 마법의 시간이 됐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자기만의 시선을 보여주었는데, 서로 놀라 박수칠 글들이 쏟아졌다. 백자 오목렌즈 운학문매병을 보고 쓴 초등학교 5학년 친구의 글이다.

ㅡ활발한 겉면과 다르게 속은 여리고 울음이 많은, 그런 겉과 속이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 백자는 겉은 흰 색이지만 렌즈 안을 들여다보면 겉면과 다르게 거뭇거뭇했다. 사람도 똑같지 않을까. 이미지 때문에 화나도 슬퍼도 참고 항상 밝게 다니는 사람, 그러다보면 아쉽기도 하고 미련이 남는다.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인생의 주인공은 다른 이가 아닌 나 자신이니까 나의 내면에 집중하면 더 좋을 것 같다.ㅡ

솔직히 걱정을 안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전시를 보고 오더니 재밌는 작품은 없었어요! 했으니까. 그런데 15분 글쓰기를 하며 이런 글을 써낸 것이다. 도저히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백자 작품을 보고 사람의 내면까지 파고든 통찰이라니, 이토록 깊은 성찰이라니. 물론 아이들의 역량은 개인차가 난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통해 길어올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박수쳐주며 나 하나의 시선은 우리들의 시야가 된다. 마음은 유연해지고 드넓어진다.

오후의 서울시립미술관은 한가했다. 아이들은 이제 예술이 조금 만만해진 얼굴이다. 이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한 점을 찾아보고 응시하고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즐겁게 미션을 하러 떠났다. 6학년 친구가 방정아 작가의 ‘되돌아갈 수도 없고’ 작품으로 이런 글을 써서 발표했다.

ㅡ되돌아갈 수도 없고란 작품을 골랐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지금 난 너무 힘들고 포기하기는 너무 아쉬운 그런 느낌. 이 그림을 보자 마자 이 그림으로 글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훅하고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건 힘들고 어떻게 해야될지 막막할 때 그 순간이 공감되었다. 이 작품은 마치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선택을 잘하자,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나중에 후회한다 이런 말. 미래에 내가 후회하지 않게 오늘을 잘살아야겠다.ㅡ

그림 한 점으로 고 어린 인생을 있는 힘껏 돌아본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진심의 감탄과 칭찬, 두가지 뿐이다. 이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은 몸이 작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마음으로 존중하게 됐다. 모든 전시는 어른들의 시선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오늘 전시들도 그랬다. 심지어 많은 아이들이 키키스미스 작품을 공포스럽다고도 얘기했는데 예술은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얘기해줄 수 있어 기뻤다. 예술은 우리 삶의 모든 국면을 다루고 그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것. 아이들과 함께해보니 그 시선은 어른보다 자유로웠고 생각은 맑고 깊었다. 오늘 하루 미술관을 제대로 누볐고, 예술을 내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주책 떨며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오늘 수업 어땠냐고. 진심의 엄지 척! 엄청 재밌어요! 신기해요! 미술관 자주 올거예요! 내심 바라던 답들이 쏟아졌다. 그거면 돼! 무슨 그림을 봤는지 까먹고 선생님 얼굴도 잊어버려도 미술관에 대한 즐거운 기억. 그래서 다시 가고 싶고, 그림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단다.

사진제공=임지영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 / 즐거운 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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