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파업에 툭하면 불법점거..."손해배상 청구도 하지 말라"는 노조
[편집자주] 노동 시장의 양극화, 잦은 파업 등으로 노사 문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지 오래다. 주요 국가들과의 노동 시장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더 이상 개혁을 늦춰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부도 3대 개혁 과제 중 노동 분야를 첫 손에 꼽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새해를 맞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함께 성공적인 노동 개혁을 위한 과제와 방향을 모색한다.
#지난해 6월 초 대우조선해양의 거제·통영·고성 조선 하청지회는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 사무실 지급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인상 등을 요구하며 작업장 입구를 점거했다. 생산시설을 직접 점거한 것은 아니지만 작업장 입구가 막혀 사실상 핵심 시설을 점거한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됐다. 입구를 점거한 노조는 현장에 투입되는 작업자들의 출근까지 방해했다.
이후 노조는 '조선소의 심장'인 독(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서 조선소·항만 등에 세워진 시설)까지 점거했고, 51일간 지속된 하청지회 파업으로 인해 신규 선박 진수가 5주나 미뤄졌다. 대우조선해양은 해당 파업으로 800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강성 노조의 '사업장 점거'는 노사간 힘의 균형이 깨져 있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노조의 파업권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재산권도 보호해야 하지만, 현행법이 '부분적'인 시설 점거를 허용하고 있어 사용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16일 경영계에 따르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42조는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주요 시설이 아닌 경우 시설 점거가 가능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 대법원은 2007년 "사업장 시설을 '전면적 배타적'으로 점거하여 조합원 이외 사람들의 출입을 저지하거나 사용자 측의 관리지배를 배제하여 업무를 중단 또는 혼란시키는 경우만 허용하지 않는 것이고, 사업장시설의 일부분이라도 사용자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부분적·병존적' 점거는 허용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은 노조에 사업장 부분점거 명분을 줬고, 최근까지 노조의 파업을 더욱 강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대우조선해양 뿐만 아니라 CJ대한통운, 현대제철 등의 사업장이 점거됐다. 지난해 2월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본사 1층과 3층을 점거하고 투쟁에 나섰다. 이 당시 CJ대한통운 직원들은 출근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제철 노조의 경우 지난해 5월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무단으로 점거했고, 이 점거는 146일간 이어졌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 본부장은 "사업장 점거 형태의 파업은 영업방해, 시설파괴, 폭행 등 불법행위 유발 가능성이 높고, 노사 간 법적 다툼, 장기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수"라며 "이는 사용자의 영업.조업 자유 및 시설관리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파업에 불참한 근로자들의 근로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불법 사업장 점거에 대한 공권력의 대응이 미온적이고 노조원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도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는 불법점거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노조 집행부가 불법 파업으로 기소가 돼 법원까지 가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노조의 강경 투쟁을 더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도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151건(73개소), 액수로는 2752억7000만원이 청구됐고, 법원은 이 중 49건, 350억1000만원만을 인용했다.
많은 경우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당장 생산을 재개해야 하는 사업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이 이같은 관행을 끊고 하청노조에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정치권에서 노조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도입을 논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미 노사의 힘의 균형이 노측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여전히 정치권은 노조의 권익 보호가 취약했던 개발경제 시대의 노사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선진국의 경우 직장점거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미국, 영국에서는 파업을 하며 직장시설을 점거하는 경우 노동자 징계, 해고까지 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분적·병존적' 점거는 허용하지만 파업 자체가 많지 않다.
황 본부장은 "사업장 내 모든 시설에 대한 점거를 금지해 폭력행위 및 노사분쟁 장기화를 방지해야 한다"며 "이와 반대로 노란봉투법을 도입하게 되면 노조의 불법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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