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두산 감독 “고개숙이지 마라, 당당해져라”[일문일답]
‘베이징키즈’ 이끈 올림픽 금, 대표팀 책임감 가져야
이승엽 두산 베어스 신임 감독이 선수들에게 “당당해지라”고 주문했다. 이 감독은 16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팀 창단 41주년 기념식에서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른 자신감으로, 고개 숙이지 말고 당당하게 앞을 보면서 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타석, 한타석에 일희일비 한다면 시즌 144경기 장기레이스를 치러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시즌 9위라는 충격을 털고 반등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멘탈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창단식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올시즌 구상과 각오를 내놨다. 이날 첫 소집을 맞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선전을 당부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전지훈련 캠프 명단부터 선택해야 할텐데
“다른 팀들보다는 4~5명 정도 많이 캠프에 합류 할 것 같다. 직접 눈으로 보고, 진짜 싸워야 할 멤버를 찾아야 한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모두 다 데려가고 싶지만, 인원은 한정이 돼있으니 미안한 마음도 있고. 퓨처스에서 캠프를 시작하는 선수들도 좋은 모습 보여주면 다른 선수들 부상이나 부진 등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으니 동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캠프에서 훈련 스케줄 구상은 마쳤는지
“(캠프 장소인) 호주가 낮이 굉장히 덥다. 오후 스케줄을 어떻게 잘 활용할지가 고민이다. 날씨에 따라 바꿀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침에 좀 일찍 시작하려고 한다.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을 훈련처럼 그렇게 많은 훈련을 가져가긴 좀 힘들거다. 컨디션이나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4월1일 개막에 퍼펙트하게 나갈 수 있는 몸을 만들겠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문에 캠프에서 2주 넘게 양의지가 빠지는데, 염두에 둔 다른 포수는
“주전 포수 1명으로 144경기를 치를 수는 없다. 제2, 제3의 포수들이 중요하다. 장승현, 안승한, 박유연이 있고 신인으로 윤준호도 있다. 2, 3, 4번에 순서는 없을 것 같다. 투수들과 호흡 잘 맞추고, 경기 준비 잘하고, 얼마나 캠프에서 실력이 향상되느냐에 따라서 (정해질 거다).”
-캠프에서 특별히 보고 싶은 선수가 있는지
“될 거 같은데 되지 않던, 가능성은 있는데 확실히 포텐셜을 터뜨리지 못했던 선수들, 젊은 선수들을 많이 보고 싶다. 군 제대한 김대한, 송승환, 이유찬이나 아직 어린 안재석 이런 선수들을 좀 보고 싶다. 모든 조건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전지훈련 시작하는) 2월1일부터 (시즌 개막하는) 4월까지 60일도 안된다. 연습경기, 시범경기 들어가면 3주, 4주 안에 선수들이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신인 중에 캠프에 가는 선수는?
“윤준호가 간다. 포수라서다. 투수들이 워낙 캠프에 많이 가기 때문에 포수들도 많이 필요하다. ‘최강야구’와는 전혀 상관 없다.(웃음)”
-허경민이 주장인데, 어떤 판단이었는지.
“(지난시즌 주장인) 김재환이 좀 부진하면서 부담이 있었다. 팀의 주포가 부진하면, 전체 분위기가 확 내려갈 수 있는데 주장까지 맡으면 부담이 배가되지 않겠나. 허경민은 조용한 선수가 아니다. 치얼업도 할 수 있고, 선후배들 중간에서 잘 케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파이팅 넘치는 모습도 좋게 봤다. 이제 할 나이도 된 것 같다.(웃음)”
-새 주장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시즌에 들어가면 1주일에 6일, 7일은 보게 되는게 팀이다. 서로 가족 같은 공동체다. 선수들을 대변해서, 팀이 어떻게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자리가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역할을 잘 해주면 좋겠다. 외부와 싸워야지, 내부와 싸우는 일은 안 만들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허경민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꼭 해야할 일, 해선 안되는 일이 있다면.
“꼭 해야하는 건 없다. 모두 프로선수들이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건 있다. 태만한 플레이라든지 (이런 건 안된다). 교만하고 더티한 플레이보다는 건실하게, 성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경기장 밖에서는 팀에 대한 룰이 있으니, 그 룰에만 잘 따른다면 전혀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프로로서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이해할 거다.”
-창단기념식에서 “당당해지라”고 했는데.
“저도 예전에 선배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고개숙이지 마라’는 거였다. 한타석 못친다고 고개 숙이면 144경기 치르기가 굉장히 어렵다. 잘 할 때나 못 할 때나 자기 페이스를 컨트롤해야된다. 한 타석 잘했다고 기분 내고, 못했다고 처지고 하면 안된다. 일희일비를 안했으면 좋겠다. 그런건 감독인 내가 하면 된다.”
-양의지 입단식때 정말 환하게 웃더라
“제가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FA로 한번 팀을 떠난 선수가 다시 올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팀들도 (영입 경쟁에) 많이 붙었고, NC도 워낙 애지중지해서 3대7 정도로 밀린다고 생각했다. 못오더라도 여기 있는 선수들하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했는데, 생각도 못한 보물이 와줘서 표정에 진심이 묻어난 거 같아.”
-양의지가 감독님 선수시절에 타석에서 감히 말을 못걸었다고 하던데.
“그랬나(웃음). 선수시절엔 교집합이 없어서 말을 많이 해보진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느낌이란게 있지 않나. 양의지가 포수로 앉은 두산 베어스는 정말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제 의도와는 다르게 공략이 들어오더라. 굉장히 영리하고, 상대 준비를 많이 하는 포수라고 느꼈다. 표정도 없고, 웃지도 않는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판단하기 어려운 선수였다. 지금은 시간이 더 흘러서, 더 여우같이, 더 곰같이 상대를 요리하지 않을까.”
-WBC 대표팀에 두산에서 3명(양의지·곽빈·정철원)이 가게됐는데
“우선은 축하를 하고 싶다. 걱정스러운 건 투수 2명이 뽑혀서 피치를 좀 더 빨리 올려야한다는 점에서 걱정이 있지만, 양의지가 같이 가니 그런 부분은 좀 안심이 된다. 더 많은 선수가 뽑혔으면 하는 실망감도 좀 있다. 우리나라 야구를 대표해서 가는 만큼 베어스의 이 마크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태극마크를 대표해서 팔이 빠지도록,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경기하고 웃으면서 복귀하면 좋겠다.”
-오늘 첫 소집인 WBC 대표팀에 해주고 싶은 말은.
“정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금메달 따면서 ‘베이징 키즈’들이 지금 프로야구에서 활약을 하고 있지 않나. 어린 친구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뛰어줬으면 좋겠다.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야구의 성패가 갈린다는, 그 정도의 절박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3월 초에 몸을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여기고, 귀국할 때는 팬 여러분들이 열심히 싸웠다 할 수 있도록 좋은 장면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저 역시 응원하고 있다.”
-WBC 같은 국제대회에서 임팩트 있는 활약할 수 있는 팁 하나만 알려준다면
“초반에 못하면 된다.(웃음) 농담이다. ‘임팩트’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저도 매번 초반에 부진하다가, 어떻게 보면 마지막에 얻어걸린 것일 수도 있고, 포기하지 않고 준비해서 좋은 결과가 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조용하게, 잔잔하게, 팬들이 보기엔 재미 없는 야구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치고나가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잘 할 거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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