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원청 직교섭’ 1심 판결의 4대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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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지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해석함으로써, 노란봉투법 내용 중의 하나인 하청기업 노동자의 원청기업과의 직접교섭권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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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지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그러나 귀족노조 논란을 비롯해 각종 불법파업, 노동자들의 불법행위까지도 정당화하려는 ‘노란봉투법’ 논란은 국민 다수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찬성하게 했다. 이제는 노동운동이 곧 민주화라는 등식은 인정되지 않게 된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정당한 노사관계란, 노사의 어느 한쪽이 무조건 정당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사안마다 법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기업에서 부당해고를 한 경우에는 노동자의 편을 들지만, 노동자가 불법파업을 했을 때는 기업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불법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게임 룰을 바꾼다면 위헌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 CJ대한통운이 하청노동자와 교섭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라는 판결을 했다.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해석함으로써, 노란봉투법 내용 중의 하나인 하청기업 노동자의 원청기업과의 직접교섭권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법률을 개정해야 할 문제를 법원의 판결로 해결하는 것은 대륙법 체계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 판례법 중심의 영미법과는 달리 대륙법에서는 법률의 우위를 강조하며, 법원은 법률에 엄격하게 구속된다. 그런데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하청기업 노동자와 원청기업의 직접교섭을 인정한 것은 명백히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법’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둘째, 관련 법 규정들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면,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헌재의 결정에 따라 재판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절차 없이 새로운 법 해석으로 사실상 법률 규정을 변경한 것은 월권이다.
셋째, 법원이 사용자의 범위를 확장한 해석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개별적 경우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런 사실적 차이에 기초해 하청기업 노동자와 원청기업 간에 법적으로 근로계약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뿐 아니라 하청기업이 무리한 근로계약을 한 책임을 원청기업에 떠넘기는 것도 불합리하다. 만일 원청기업에서 하청기업의 근로계약에 개입한 경우에는 이를 근거로 다른 형태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무조건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노동자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의제하는 것은 책임 원칙에 반한다.
넷째,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사실상의 영향력만을 기준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자로 인정하는 경우에는 정부, 국회 또는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 등도 하청기업의 단체교섭 대상자가 돼야 할 것이다. 이는 감당할 수 없는 불합리함이 될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청기업 노동자가 원청기업과 직접 교섭하겠다는 것이 정당한 요구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법과 원칙을 깨뜨리면서 노동자 편에 서는 것은 법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며, 위헌의 문제까지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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