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삼남매'의 관계는 이토록 복잡하게 꼬이게 됐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꼬여도 너무 꼬였다. KBS 주말드라마 <삼남매가 용감하게>를 보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우연적으로' 관계들이 꼬일 수 있는지 의아해진다. 주말드라마에서 양가가 서로 겹사돈으로 얽히는 이야기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 정도야 늘상 있었던 일이니까.
하지만 김태주(이하나)와 이상준(임주환)이 결혼해 부부가 된 그 양가는 김태주의 막내 동생 김건우(이유진)와 이상준의 이모 장현정(왕빛나)이 연인 관계로 얽혀있다, 이모뻘 되는 연상과 만나 하룻밤에 아이까지 갖게 됐으니 그 나이 차는 그저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크다.
물론 그런 나이 차이가 사랑과 결혼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지만, 그런 큰 나이차를 가진 연인관계가 김태주의 여동생 김소림(김소은)과 신무영(김승수) 대표에서도 또 이어진다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김소림과 신무영의 관계는 김건우와 장현정의 관계보다 더 복잡하다. 엄청난 나이차는 차치하고라도 신무영의 딸 신지혜(김지안)와 김소림의 전 남자친구 조남수(양대혁)가 연인 관계로 얽혀 있어, 이 네 사람의 관계는 너무나 꼬여있다. 만일 신무영과 김소림이 또 신지혜와 조남수가 결혼을 하게 되면, 과거 헤어진 연인 사이였던 김소림과 조남수의 관계는 장모와 사위 관계가 된다.
물론 이런 관계는 이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조남수가 이 드라마 속에서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빌런으로 등장하고 있고, 그래서 신무영이나 신지혜가 그 실체를 알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김소림은 만일 신무영과 결혼해 재혼가정을 꾸릴 경우, 딸이 될 수 있는 신지혜가 최악의 빌런인 조남수와 사귀는 걸 막으려 한다. 이 네 사람의 꼬인 관계는 현재 <삼남매가 용감하게>가 얼마나 관계를 비틀어 놨는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준의 아이를 자신이 낳았다며 갑자기 등장한 이장미(안지혜)라는 인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꼬인 관계에 비하면 심지어 약한 느낌이다. 이장미는 이상준의 과거 코디로서 술기운에 하룻밤을 보낸 후 그의 아이를 가졌다며 이상준의 엄마 장세란(장미희)과 이종사촌형인 장영식(민성욱)을 협박한다. 결국 이장미는 아이를 버리고 돈을 뜯어 사라져버리지만, 장세란과 장영식은 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배우인 이제 막 창창대로가 열린 이상준의 앞길이 막힐 걸 두려워해 그 아이를 장영식이 아들 삼아 키우기로 한다.
그렇지만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을까. 이상준이 김태주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나타난 이장미는 또다시 장세란과 장영식을 협박한다. 아이가 진짜 이상준의 친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아마도 아닐 거라 생각된다. 장영식 또한 이장미의 공범이라는 뉘앙스가 풍기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실이 밝혀지면 모든 이들의 관계가 파탄지경에 이른다. 장영식과 그의 아내 나은주(정수영)는 사랑으로 키운 아들을 잃게 되고, 이상준의 결혼은 파경에 이를 수 있다. 물론 그의 커리어도 망가지게 되고 배우로서의 활동도 어렵게 된다.
이처럼 <삼남매가 용감하게>가 만들어내고 있는 극적 상황들은 바로 꼬아 놓은 관계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개연성으로 보면 과연 저렇게 우연적으로 꼬인 관계들이 가능할까 싶은 복잡한 상황을 던져 놓고, 누군가 만들어내는 파열음으로 전체 관계가 깨지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을 통해 극을 이끌어가는 것.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관계를 꼬아 만들어낸 갈등 구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애초 이 드라마가 하려던 K장남, K장녀에 대한 메시지는 점점 더 뒤로 가려진다. 그 메시지보다는 꼬인 관계가 만들어내는 불편한 감정들이 드라마 전편에 채워진다. 과연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태세전환은 괜찮은 걸까.
애초 <삼남매가 용감하게>는 특별한 빌런이 별로 보이지 않는 '착한 드라마'로 시작했다. 하지만 주말드라마로서 시청률이 20%를 넘기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클리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출생의 비밀과 혼사장애가 전면에 등장했고, 드라마에 자주 인물들이 머리채를 잡고 악다구니를 쓰는 장면들도 나왔다. 그 과정에서 여주인공 김태주가 단기기억상실을 겪는 상황까지 담겼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후반부에 진입하면서 시청률을 위해 할 걸 다 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KBS 주말드라마가 20%대 미만의 시청률에 머문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수 있다. 그만큼 과거와는 달라진 가족형태나 OTT의 등장으로 볼 게 많아진 콘텐츠 환경 속에서 주말드라마가 과거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거기에 맞게 주말드라마도 목표치를 낮추는 게 맞다. 어떻게든 시청률이라는 수치적 목표를 맞추기 위해 갖가지 불편한 관계들과 클리셰를 동원할 때 주말드라마의 시청층은 오히려 더 이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시청률이 다소 낮더라도 따뜻한 가족의 양태를 재연해 보여줄 수 있는 가족드라마가 나와야 그나마 주말드라마의 존재 이유가 설명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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