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우리 민족끼리’ 통전술에 속아 나라가 넘어갈 판

김순덕 대기자 2023. 1. 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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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이런 초한전(超限戰)을 중공만 하고 있겠느냐는 점이다. 공산독재정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중공에서 배운 초한전을 우리에게 펼치고 있는지 주시할 때다.’

작년 말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를 놓고 쓴 ‘도발’을 이렇게 마무리하면서(악마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 중국 비밀경찰서처럼) 나는 생각했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에서 자유세계를 대상으로 펼치는 공작이 이제야 드러났다. 그럼 북한 통전부는 ‘자기네 밥’ 같은 남한을 놓고 놀고만 있겠나?
2018년 11월 강원도 철원 지역의 최전방 감시초소(GP)가 철거되는 모습을 한 군장병이 지켜보는 모습. GP 철거는 2018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 후 후속 조치로 만들어진 9.19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른 조치다. 동아일보DB

아니나 다를까. 전임 문재인 정권 때는 꼭꼭 숨어있던 사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민중자주통일전위’를 만든 경남 창원의 부부 반정부단체 활동가, 북한 공작원과 접선 뒤 진보정당과 농민단체 등을 포섭해 ‘ㅎㄱㅎ’(조국통일 한길을 수행하는 한길회)을 조직한 진보정당 전직 간부 등이 국가정보원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다.



● 문재인 복심도 간첩 사건의 실체 인정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북한 인사와 접촉한 뒤 정치인 보좌관 시절 북한에 난수표(암호문) 보고를 했던 정치권 인사도 내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다. 북한 드론이 대통령실 상공을 뚫기에 앞서 북한 지령은 이미 국회를 뚫었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건영의 반응이 놀랍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그는 12일 “최근에 보도된 간첩 사건은 최소한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들여다보고 수사해 왔던 사건들”이라고 했다. 좌파가 흔히 주장하는 ‘간첩 조작’이 아니라 실체가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러면서도 윤건영은 왜 이 시점에 윤석열 정부가 요란하게 수사하는지, 정치적 이용을 하는 게 아닌지를 되레 의심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문 정권 때는 대체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기에 간첩이 활개 치는 걸 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투쟁, 간첩이 하는 일

탈북자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간첩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언을 했다. 김정은 시대 간첩의 기본 사명은 단순한 정보수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이라는 거다. 김정은 집권 이후 대남 공작부서를 확대 개편해 공작 영역도 경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투쟁, 조직 설립, 합법 및 비합법 투쟁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

“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벌일 때마다 반미 등 정치구호를 외치고 일부 세월호 단체가 지원금으로 북한 김정은 찬양교육을 벌인 것도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느냐.” 태영호 의원이 던진 의문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단체들은 문 정권 5년간 진보정당을 넘어 국회, 청와대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왔다”고도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재인은 대통령 시절 북한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보증인처럼 거듭 확인했다. 개뿔이었다! 김정은이 2022년 핵무기 개발은 자위용 아닌 선제타격용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듯, ‘남조선혁명을 통한 전조선혁명’이라는 김정은 왕조의 최종목표는 변한 적 없다.

● 문 정권에 손 내민 김정은의 통일전선전술

이 무서운 의도를 감추기 위해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 통일전선전술이다. 주적을 타도하는 데 자파세력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때 필요한 동조세력을 획득하고, 그들과 잠정적 동맹체를 형성해 투쟁하는 전술 말이다. 핵심은 기만술이다.

그러고 보면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우리 민족끼리’를 수차 언급하며 문 정권에 대화 제스처를 보인 것부터가 통전술이었다. 반색한 문재인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미국과의 회담을 주선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대한민국을 무장해제하듯 김정은 집단의 요구도 들어줬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회담을 끝내고 자유의집에서 걸어나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DB


2020년 4월 총선에서 대북 유화적 민주당이 대승한 뒤 북한은 제도권과 직접 교감하는 합법적 방법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상층부 통일전선을 구축할 것이라고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밝혔다(2020년 논문 ‘북한 대남통일전략의 추진구도와 전개양상’). 그 결과가 이번 수사를 통해, 태영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난 꼴이다.

● “민주당은 조선로동당 1중대냐, 2중대냐”

간첩 잡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 정권 때 통과된 법에 따라 2024년부터는 경찰로 완전히 넘어간다. 해외조직이 없는 경찰에서 북한 공작원과의 해외접촉 같은 수사는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익히 알고 만든 법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대공수사권은 국정원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민주당은 결사반대다. 그래서 태영호가 따져 물었던 거다. “도대체 간첩이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두려는 민주당은 조선로동당의 1중대냐 2중대냐”고.

우리 신문 단독 보도에 따르면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단 활동과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한마디로 나라가 넘어갈 뻔했다”는 거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는 ‘우리 민족끼리’ 같은 통전술에 넘어가는 문 정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다수 국민의 분노와 각성이 기여했다.

윤 대통령이 작년 10월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라며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나흘 뒤 문 전 대통령은 “책을 추천하는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콕 찍어 추천했다. “32년 전 ‘빨치산의 딸’을 기억하며 읽는 기분이 좋았다”고도 했다. 이러다…개헌으로 대통령 중임제가 되면 문재인 대선 후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민족끼리에 또 넘어가면 나라가 넘어갈 수도 있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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