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확대 필수조건 '사용후핵연료' 처분...기술은 '성숙' 실증은 '아직'

이영애 기자 2023. 1. 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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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의 입구. 원자력연 제공

"지하터널의 암반은 중생대에 만들어진 복운모화강암으로 이뤄져 있어요. 암석을 타고 흐르는 지하수가 균열을 따라 어떻게 퍼지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전시 유성구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원 동쪽 끝에는 550m 길이 지하터널이 있다. 수명을 다한 핵연료를 처분하기 위한 연구시설(KURT)이다. 산중턱에 위치한 지하터널 입구에서 만난 조동건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용후핵연료저장처분연구단장이 현재 연구 상황을 설명했다. 터널로 들어선 뒤 비탈진 길을 5분가량 걷다 보니 지하 120m 깊이의 KURT에 도착했다.

● 원전 확대 필수조건, 사용후핵연료 처분 연구

원자력 발전의 연료로 사용된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이번 정부의 기조인 원전 확대를 위해서는 처분 기술과 처분시설 확보가 필수적이다. 땅 속에 묻는 심층처분이 가장 기본적인 처분 방법이다. 

심층처분을 하면 사용후핵연료가 방사성을 띠지 않을 때까지 길게는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묻혀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용후핵연료가 담긴 연료봉을 여러겹으로 감싸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료봉은 지하의 고압을 견디기 위해 주철로 만든 처분용기에 담고 이를 5cm 두께 구리로 코팅한다. 구리는 100만년에 0.5mm 이내만 녹슬 정도로 부식에 강한 금속이다. 이 용기는 다시 완충재인 벤토나이트로 감싼다. 벤토나이트는 물을 먹으면 부풀어 압력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는 광물로 부풀어오르면서 바깥에서 지하수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다.

심층처분에 있어 가장 큰 위험요소는 지하수다. 방사성 물질이 암석에 생기는 균열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를 만나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 단장은 암반의 지형적 특성을 분석해 이런 위험을 사전에 대비한다. 지하터널을 이루는 암반 구조 균열 모델을 만들어 지하수의 흐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조 단장은 "실제 집수량과 비교해 보니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확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류재수 원자력연 핵주시공정연구부장이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파이로 프로세싱을 시연하고 있다. 원자력연 제공

● 처분장 면적 줄이는 파이로 공정…산업적 재활용도 가능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1만8600t이 모두 원전 내 임시저장된 상태다. 고리·한빛 원전은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신월성 원전 2044년, 새울 원전 2066년 임시 저장시설 포화가 예상된다. 이를 모두 심층처분하기 위해 필요한 면적은 6.01km2로 여의도 면적(4.5km2)보다 큰 부지가 필요하다. 처분장의 면적을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도 활발하다. '파이로프로세싱'이 대표적이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여전히 타지 않은 우라늄이 93% 남아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전기분해해 세슘과 스트론튬 등 방사성 원소들을 별도로 처리하고 남은 플루토늄과 아메리슘 등 우라늄보다 질량이 무거운 초우라늄 원소를 차세대 원자로인 소듐냉각고속로(SFR)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원자력연은 2012년부터 파이로 공정과 연계해 SFR을 개발하고 있다.

류재수 원자력연 핵주기공정연구부장은 "사용후핵연료가 1만t(톤) 수준인 스웨덴, 핀란드에서는 그냥 심층처분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지만 3만8400t(톤) 이상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은 재처리 기술로 처분장 면적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의 환경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 시설. 땅속 500m 깊이에 시추공을 묻어 지질 환경과 지하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원자력연 제공

● 기술은 충분…실증 연구 시설·처분장 부지 확보가 관건

사용후핵연료를 복층 형태로 묻어 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있다. 조 단장은 "500m와 800m에 두 층으로 나눠 묻으면 하나의 처분장에 두 배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분장 온도 제한치를 늘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조 단장은 "150도 고온에서도 벤토나이트가 기능의 변화 없이 작동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며 "처분장 온도를 130도로 맞춰도 사용후핵연료를 묻는 간격을 줄일 수 있어 처분장 면적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기 위한 기술은 어느정도 확보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실제상황과 같은 500m 깊이 지하연구시설(URL)에서 이 기술을 검증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이날 방문한 KURT는 120m 깊이의 시설로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묻는 깊이와는 지하수 속도나 환원상태에 차이가 있다.

지난해 의결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는 일반부지와 처분부지 URL을 건설·운영해 심층처분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명시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부지도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적인 합의만이 남은 상황이다. 주한규 원자력연 원장은 "지역발전을 위한 투자와 연계해 연구용 URL 건설을 진행할 것"이라며 "URL은 실증 전 연구시설로 방사성폐기물을 두지 않고 구조 지질 특성만 분석하는 식으로 지역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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