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대단치 않은 사람 이야기가 특별해진다 - '법쩐' 김원석 작가

심영구 기자 2023. 1. 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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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재가 만난 열 번째 '지식인싸', By 남작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열 번째 손님을 반겨줘. 김원석 작가야.

우리는 모두 판타지가 필요해

방영 첫 주부터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순조롭게 항해를 시작한 <법쩐>의 김원석 작가. 대체로 호평 일색인 댓글 반응, 그는 보았을까.


"감사하죠. 그런데 마냥 댓글 반응에 기분이 좋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섣부른 것 같네요. 아직 갈 길이 멀어서."

<법쩐>은 ['법'과 '쩐'의 카르텔에 맞서 싸우는 '돈장사꾼' 은용과 '법률기술자' 준경의 통쾌한 복수극]이야. 이 이야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처음에는 심플하게 정의로운 검사들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취재하고 이야기 만드는 과정에서 제가 기댈 수 있는 캐릭터들이 애매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전 버전 이야기를 뒤집고 돈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했어요. 돈과 권력이 멀리 있어 주면 참 좋겠으나, 이 둘이 같이 있는 현실, 그것들이 평범하고 상식적이고 선한 사람들을 해쳤을 때 그것에 대해서 갚아주는 이야기 그런 걸 하고 싶었어요."

나 주우재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 답답한 일이 많이 있을 거 아니겠니. 그런데 그걸 푸는 거의 유일한 창구가 먼치킨 물을 보는 거야. 속이 뻥 뚫리게. 그걸 기대해 봐도 된다는 걸까. <태양의 후예> 때도 '우리 마음속 진짜 영웅을 만나고 싶다'는 기획 의도가 있었지. <법쩐>의 주인공들도 그런 영웅의 모습일까.

"제가 좋아하는 저의 주인공들은 다들 유능한 사람들이고 영리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사실 진짜 영웅은 그냥 평범한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왜 우리는 어떤 편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은 악당이라고 생각할까. 그게 사실 별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이 엄청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상식적인 사람의 마음? 그냥 고마워한 것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알고, 미안함에 대해서 잊지 않고, 기억하고. 강자한테는 물러섬 없이 맞서고. 은용(이선균 役), 박준경(문채원 役), 정태춘(강유석 役) 같은 우리 편의 인물들은, 때로는 부딪혀서 깨지기도 하고 힘들기도 할 거예요. 보는 사람들이 그래서 응원하고. 그게 현실에 없으니까."


작품을 쓸 때 취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3년여 동안 일선에서 일하는 수사관, 변호사, 판사 등을 많이 만났다고 해. 그중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만남이 있었다지.

"어떤 수사관 분이 정말로 열심히 사건을 수사했대요. 권력형 비리. 젊은 검사님 하고. 갑자기 검사님이 위에 다녀오시더니 다른 사건 합시다, 그래서 높으신 검사님 방에 직접 찾아갔는데 5분 만에 후회를 하셨대요.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되게 똑똑하네 저 사람? 그런데 논리적으로 납득이 될 정도로 뭐가 다 있으면 기소를 해서 수갑을 채우지, 수사를 하는 이유는 사실 그걸 찾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직 그게 없으니까 하지 마,라는 건 사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았대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그러고 나서부터 이런 수사를 안 하는 부서로 그냥 가버리셨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제가 법쩐을 시작하게 되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도 그런 거예요.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면 어? 저 사람 나쁜 사람이네, 그럼 벌을 받아야지. 돈도 추징해서 다 갖고 와야지 했는데 며칠 있다가 신문에 나는 거 보면 복잡한 얘기들을 막 하면서, 풀려났대. 피해 금액은 이만큼~ 크다 얘기해 놓고서는 막상 찾으니까 없다, 판결도 쉽게 납득이 안 되고. 그때마다 되게 좀 이상하고 슬펐거든요. 우리 상식에 맞는 그런 복수를 하게 해주고 싶다, 죄지은 만큼만 벌 받자."

부디 선한 자의 복수가 성공하는 이야기길, 그 과정이 얼마나 통쾌하게 그려질지는 지켜봐야겠어.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태양의 후예>라는 소위 '흥행대박' 작품 이후 그의 다음 행보는 <맨투맨>이라는 작품이었어.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전작에 비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어. 그리고 지금, <법쩐>이야.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있진 않을까.

"이번 작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걸린 건 나한테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태양의 후예>하고 겁없이 막 달려들어서 <맨투맨>까지 하고 나니까 마치 프로야구선수 2년 차 징크스처럼, <법쩐> 쓸 때 그 과정에서 작업한 걸 두 번을 뒤엎기도 하고."

그 불안을 이겨내는 마법의 문장을 찾았다고 해.


"제가 흥행했던 작품의 작가이기는 했었죠. 운이 좋았던 거 같고. 시청률이 좋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이쪽도 경험해 보고 이쪽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사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작품을 쓰느냐가 중요하구나, 내가 만약에 그런 걸 몰랐으면 어설프게 욕망을 계속 갖고 있었을 텐데 사실은 그런 면에 있어서 되게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이제는 좀 더 내가 할 수 있는, 내 영역에서 같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좀 하고 싶다?"

햇수로는 7년여 동안의 공백.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믿음을 쌓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작가에게 '내 이야기가 세상에 통할까' 고민은 숙명, 오랜 시간 <법쩐>을 집필하면서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하니까.


"저도 젊었을 때 헤비메탈을 들었는데 요즘 랩을 들으면 그게 왜 인기가 있는지 그 감각을 모르겠어요. 섣불리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는 척할 수도 없고 폄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존해야 한다, 각자의 시절에 맞는 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기획을 시절에 맞춰서, 어떤 타깃 세대에 맞춰서, 트렌드에 맞춰서, 이런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과론적인 얘기고 스스로가 얼마큼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거지, 때로는 정말로 시절을 잘 만나서 더 성공하거나 혹은 아쉽게 묻히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원석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오묘한 일 같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여야 하면서도 그 본질은 내가 재밌어야 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다른 무엇

여차저차 막론하고 전 국민이 알 정도의 흥행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감, 분명 남다를 거 같아. 소재를 찾는 눈이랄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선이랄까. 드라마를 '잘 쓰기' 위해 그는 무엇을 했을까.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 드라마를 잘 쓰기 위해서는 드라마를 잘 써야 되는데요, 누가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말로 많이 떠들어요. 어제 봤던 드라마 얘기하듯이 뭔가 떠오르면 말로 떠들어서 정리가 되면 글쓰기 시작해요. 그래서 언제나 동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나름 힘든 게 없었겠어요? 오랜 동료이자 제작자였던 사람이 옆에 있어 줬고 대본 얘기한 게 많은 도움이 됐죠."


말이 나온 김에 혹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

"지망생 작가님들도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드라마라는 게 물리 공학 논문을 쓰는 거랑 달라서 어려운 얘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그런 얘기하잖아요. 어제 봤던 드라마 얘기하면 듣는 사람이 그 드라마 뭔데, 재밌겠네? 하고 보든가 내 취향은 아니네 안 보든가 하잖아요. 그렇게 얘기를 했을 때 재밌어야지 재밌는 거지, 난 대본으로 쓰면 재밌을 거야, 이건 사실 다음 문제고. 드라마는 어쨌든 조금 더 대중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실제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되거든요. 배우도 설득해야 되고 제작자도 설득해야 되고 방송국도 설득해야 되고 그러니까 많이 떠드시라. 자기 아이템 30자를 누가 훔쳐 갔으면 그건 내 거 아닌 거야 생각하시고, 내 이야기를 10명 중에 8명은 좋아해야 돼, 그래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원석 작가는 원래 영화감독을 꿈꿨던 인물이야. 곽경택, 류승완 감독 사단이었다가 드라마 작가가 되었지. 입문이 쉽지 않은 드라마 작가의 길, 어떻게 발 담그게 됐을까.

"맞아요,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곽경택 감독님 <닥터k> 연출부를 했었고 감독님이 드라마 <친구>를 하는데 작가를 누굴 하지 고민하시길래 '저요' 했던 게 시작이었죠. B팀 연출도 맡기시길래 연출도 했었고 그러고 나서 <여왕의 교실>, <국경 없는 의사회(태양의 후예 원작)>를 썼죠. 경제적인 부분도 있고 기회가 이쪽에 계속 있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드라마 작가 김원석'에 만족하고 있을까. 언젠가 업을 바꿀 수도 있을까.

"경제적인 이유로 전향했다 했지만, 사실 드라마 작가도 돈을 좇으면 못할 일이죠. 효율을 따지면 하기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야 수입이 더 불안정했던 영화를 하다가 드라마로 전향했던 거지만 안정적인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한다면 어려워요. 대외적으로 드라마 작가가 많은 돈을 버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한 작품을 온에어하기까지 최소 2~3년 작업을 하니까, 그마저도 작품을 꼭 하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내가 만드는 이야기를 내가 풀어가는 게 재밌어요. 지금은 드라마에 집중하면서 열심히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죠."

완벽한 동그라미


'작가' 김원석이 종국에 닿고 싶은 지점이 어딜까,라는 질문에 수수께끼 같은 답이 돌아왔어. '완벽한 동그라미'는 뭘 뜻하는 걸까. 완벽한 작품, 완벽한 인생?

"자세한 건 숨겨둘게요, 누구든 '완벽한 동그라미'에 대한 다른 해석이 가능하도록."

그리고 이어서 뜬금없는 얘기를 들었어. 물론 반가운 얘기였지.

"주우재 씨,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 이후에 살아남은 의사 캐릭터로 좋겠어요. 엘리트 의사가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좀비 시대를 겪었어. 그리고 살아남았어. 그래서 얼굴에 흉터도 몇 개 있어.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사이에 이 사람은 되게 뜨거운 심장을 갖게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작품에서 보이는 캐릭터 사이에 되게 재밌는 게 나오지 않을까."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를 그리는 작품이 언젠가 방영된다면 기대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의사 주우재'. 그나저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작품 구상이라니, 천생 작가구나 싶었어.

"저도 한 줄을 못 쓸 때가 있었어요. <여왕의 교실> 쓸 때 처음 쓰다 보니까 9부, 10부쯤 가니까 어쨌든 원작도 있는데 구성안을 써서 주기로 했는데 한 줄을 못 쓰겠더라고요. 그때 밤을 새웠는데. 왜지? 나도 이해가 안 가. 도망가거나 잠수타는 거는 좀 쪽팔린다. 어. 죽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그럴 순 없으니까 감독님한테 전화를 했어요. 형, 하나도 못 썼어. 알았어. 나 촬영 나가야 되니까 자고 저녁때 보자 이러는 거예요. 그때 CP 하셨던 감독님이랑 감독형이랑 셋이 카페에서 얘기하고 어떻게 그 부를 넘어갔는지는 또 기억이 없어요. 그냥 어떻게 썼을 거야, 아마. 그 이후로 늘 하는 생각은 괜찮다. 죽고 살 일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는 자고 먹고 그리고 좀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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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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