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더 내고 더 받게’ 바꾸자” 전문가들 이견 없었다
국내 최고 권위자 16명 4차례 토론
1차례 설문 통해 ‘최소 합의점’ 도출
“보험료율 1~3%p 올리고, 실질 소득대체율 인상”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포인트 올리고, 명목 소득대체율은 유지하거나 조금 높이되, 실질 소득대체율 인상에 힘 쏟자.”
<한겨레>가 지난해 8~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와 함께 주최한 4차례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과 이후 진행된 1차례 설문조사를 통해 국내 최고 권위의 연금 전문가 16명이 동의하는 최소한의 합의점을 도출했다. 2018년 4차 재정추계 결과 2057년으로 예측된 연금기금 소진 시기가 1~3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연금개혁 첫 단추인 5차 재정추계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맡게 될 전문가들이 논의의 토대가 될 공통분모에 합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 월소득 9%에서 높일 필요성”
4차례 토론과 설문조사를 종합한 결과, 전문가들은 재정안정과 노후소득보장 및 사각지대 해소 등 서로 다른 정책적 지향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금 개혁에서 현재 월소득의 9%(사업자 4.5%, 직장가입자 4.5%)인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16명 가운데 다수인 12명이 ‘최소 1~2%포인트(월소득의 10~11%로) 인상’, 나머지 4명은 ‘3%포인트(월소득의 12%로)까지 인상’에 찬성했다.
이번 개혁에서는 보험료율 인상과 연동돼 있는 소득대체율(퇴직 전 임금에 대한 연금액의 비율)을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을 버는 사람이 40년 가입했을 때 현행 40%인 명목 소득대체율(제도 설계상 보장하는 소득대체율)을 당분간 유지하자는 데 16명 가운데 11명이 찬성했다. 다만 노후소득보장을 강조해온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주은선(경기대 사회복지학) 교수 등 5명은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45%에서 최대 50%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명목’ 소득대체율 유지…‘실질’은 인상 노력”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큰 폭의 소득대체율 인상이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과 별개로, 2020년 기준 39%에 이르는 심각한 노인빈곤율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의 가입기간과 소득수준을 고려한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신규수급자 기준(평균 가입기간 18.6년) 실질 소득대체율은 24.2%에 불과하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국민연금 보험료 산정 기준인 월 기준소득 상한액과 하한액을 함께 높여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월 기준소득 상한액은 553만원이며, 하한액은 35만원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보험료가 과도하게 책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득 상하한액을 설정한 것인데, 이를 더 높여 실질 소득을 반영해 보험료를 내도록 함으로써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자는 제언이다.
이 밖에 연금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출산과 실업 크레딧 제도 강화, 저소득층과 농어민 등에 대한 보험료 지원 확대 등도 실질 소득대체율 인상 방안으로 거론됐다. 현재 65살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1인 가구 기준 최대 32만3180원이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인상하거나, 퇴직연금 일부를 국민연금으로 전환해 낮은 소득대체율을 보완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험료율을 소폭 인상하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조합으로 노후의 최저소득을 보장하자는 연금개혁 대원칙에 다수의 전문가들이 합의했다”며 이번 포럼의 의미를 평가했다.
포럼 어떻게 열었나
<한겨레>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에 참여한 전문가 16명은 지난해 8월24일 1차 토론을 시작으로 10월 말까지 모두 4차례 설전을 벌였다. 연금개혁 첫 단추인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발표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핵심 의제를 추출해 전문가들 사이에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높여보자는 취지다.
포럼 목표는 팩트체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을 근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해 온 전문가들이 최소한의 합의를 하자는 데 두었다. 보다 다양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한겨레>는 토론 내용을 곧바로 전하지 않고, 토론을 마친 뒤인 지난해 10~12월 전문가별 설문조사를 진행해 이를 종합 정리해 보도하기로 했다.
포럼 주 토론자는 재정안정·소득보장·보편성 강화 등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입장 차이를 고려해 선정했다. 재정안정을 강조하는 김용하(순천향대)·석재은(한림대) 교수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소득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김연명(중앙대)·주은선(경기대) 교수와 정해식 한국자활복지개발원장(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국민연금 사각지대 완화를 주장하는 김원섭(고려대) 교수 등 7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더해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 이용하 전 국민연금연구원장, 김상호 전 보건사회연구원장, 구인회(서울대)·양재진(연세대)·남찬섭(동아대)·김진석(서울여대) 교수 등 전문가 7명이 패널로 추가 합류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최옥금 선임연구위원, 김혜진 부연구위원을 비롯한 연구자 2명도 포럼 진행을 원활히 하는 데 힘을 보탰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성혜영 연구위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류재린∙이다미 부연구위원, 이병재 전문연구원 등 4명이 실무 작업에 참여했다. 연금 분야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릴레이 토론을 벌인 것, 그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라고 참여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를 낼 정도로 전례 없는 매머드급 참여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사실에 기반해 상대 쪽의 주장을 함께 검증하는 팩트체크 과정이 최소한의 합의 도출에 큰 밑바탕이 됐다. 이는 또한 주요 쟁점에 대한 상대 쪽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한겨레> 등이 마련한 이번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이 국회와 정부에서 이뤄지는 연금개혁 논의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회 연금개혁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에 참가한 전문가 16명 가운데 절반인 8명이,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에서도 15명의 위원(정부위원 두 명 포함) 가운데 7명이 이번 포럼에 참여했다. 이 전문가포럼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나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의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사전 논의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 토론자와 패널 등 참가자들의 태도도 논의를 원활히 끌어내는 요소였다. 신문 지상이나 여타 토론회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격돌했던 전문가들은 이번 포럼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상대를 존중하고 이견을 인내 있게 경청하는 열린 태도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보였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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