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들어 말하기

2023. 1. 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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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양육의 방식은 세대를 거쳐 다양하게 변화하고, 가정이라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주관적으로 다뤄지기도 하지만, 낯선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부분을 적용하면 사고의 지평을 조금씩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어린이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연재하는 이 글은 독일 공교육 과정으로 두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이자 시인인 필자가 독일에서 어린이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에서 찾는 삶의 의미 있는 조각을 소개한다. 아이들을 사교육 없이 사립이 아닌, 독일 국공립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보내며 발견하는 삶의 의미를 담는다. 한국과는 다른 독일의 교육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함이 독자들에게 잔잔하고 부드러운 자극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교육환경과 양육의 태도, 나아가 어린이를 향한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그리고 어른에게는 강력한 응원을 전할 수 있는 작고 힘 있는 돌멩이 같은 글이다. 잔잔한 호수 속에 떨어진 돌멩이로부터의 조용한 파문과 같은 둥근 물결이 되기를 바란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알파벳과 숫자를 쓰는 방법을 배운다. ‘ㄱ, ㄴ, ㄷ, ㅏ,ㅑ, ㅓ……’ 등을 순서대로 잘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방법을 가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전,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학교로 온다. 선 긋기에 대해 학교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또 따로 있다. 예쁘게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 연필을 떨어뜨리지 않고 집는 방법과 손에 힘을 꽉 주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알파벳과 숫자 선 긋기를 몇 개월 동안 한다. 그리고 이때, 아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배운다. 바로, 손을 드는 방법이다.

<손듦의 방식>

손을 들고 말하기. 독일 교육에서 이것을 빼고는 교실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것은 발표를 수려하게 잘하는 아이를 육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말 잘하는 아이가 자존감이 높다거나, 자신감의 척도를 ‘발표’와 연결 짓는 개념이 아니다. 공식적인 사회생활의 출발이 되는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독일 교육은 무엇보다 ‘규칙’을 강조한다. 보통 ‘Schule Regeln’ 이라는 ‘학교 규칙’ 안에 들어가는 ‘손을 올바르게 들어 의견을 말하는 방법’을 어린이들은 배운다. 교사는 발표를 “어떻게 하면 잘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발표하는 규칙’을 가르친다.

독일어로 ‘melden’(말하다, 등록하다, 언급하다 등의 동사)이라고 칭한다. ‘검지 손가락’을 올리고 손을 뻗어야 한다. 손을 들지 않고 먼저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의 아이의 교사는 입을 먼저 가리고 손을 드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 주기도 했다. 먼저 손을 든 후에 선생님이 자신을 선택하면, 그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차례가 된 것이다. 또한 친구가 말하고 있는데 ‘끼어들기’를 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답을 말하려고 다른 친구의 차례 중간에 불쑥 말해서는 안 된다. 한 아이를 한 번 선택을 한 교사는 보통 중복해서 시키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골고루 선택한다. 그만큼 학급 구성원 대부분이 손을 들고 말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규칙 없이 돋보이는 것이 아닌, 규칙을 먼저 지키면 얼마든지 나의 차례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다른 친구의 말을 먼저 막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욕구와 기다림의 균형을 알아가는 교실. 손바닥 전체를 사용하거나 주먹을 쥐고 팔을 뻗는 것이 아니라 검지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 언어치료를 위한 교실형 대화 수신호 중 하나로 시작했다. 여기에는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말하고 싶어요.”라는 수화의 개념이 담겨있다. 검지 손가락 말고도 교사가 교실에서 다양한 수신호를 규칙 언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멜든’(melden)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나의 의견이 다른 친구들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해.’ 를 확언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의 준수를 행동으로 옮기는 첫 시작점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나의 의견을 끝까지 말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의 의견도 다른 아이들의 그것과 똑같이 소중하므로 잘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사진출처: https://stadt.muenchen.de/
자녀들이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도 자주 아이들에게 발표는 했니, 얼마큼 했니, 또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해 매일 물었다. 해를 거듭하며 학교 수업에 관한 부모와 교사와의 토론, 아이들의 경험 등을 통해 알게 된 것, 즉 학급에서 내 아이가 돋보였으면 하는 우쭐함이 아니라 규칙을 준수하고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 미덕임을 알았을 때 독일 교육 현장 앞에서 늘 겸손해진다. 아이 대부분이 교실에서 손을 드는 일, 많은 아이가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아주 쉽고 간단한 단어를 말하기도 하고 자세히 자기 생각을 말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리고 어떤 날은 아이들의 질문과 생각으로만 토론하는 시간도 있다.

완전한 자율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발표의 방식. 그만큼 교사의 질문은 거듭되고, 다양하다는 말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 발표의 횟수와 질이 점수에 전체 과목 점수의 절반 정도로 반영된다. 나아가 수업 기여도 차원의 협력, 공동작업의 점수로 사회성 점수에도 반영이 된다. 너도나도 손을 들고, 선택되었을 때 무엇이든, 어떻게든 말해야 하므로, 아이들은 결국 무엇이든지 생각해낸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그 ‘무엇’이 들어 있고, 또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 꺼내려고 하는지.

1과 1을 더하면 왜 2가 되는지, 그 이유를 함께 말한다. 수학 문제의 경우 하나의 문제에 답을 구했을 때, “도대체 왜 이 답이 나왔는지?”를 손을 들고 이야기한다. 정답도 없고, 아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어린이들의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배려가 담겨 있다. 문제의 답이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푼 방법을 천천히 말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저학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식하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복잡한 문제도 과정을 천천히 생각할 힘의 근원이 되어 준다.

틀려도 좋다. 친구들의 잘못된 답에 절대 웃지 않는 아이들. 웃으면 크게 혼나기도 하고, 심할 때는 반칙 카드를 받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기다리는 습관을 쌓으면서 생각과 표현의 실제 경험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있다. 기본적이든 복잡한 것이든 모든 질문의 답을 환영하는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더욱 소중하게 대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 다시금 질문할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을 가장 중요하게 전하는 학교는 오히려 경직된 분위기가 아닌,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모든 의견이 가능한 교육 터전으로 존재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알고 있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팔을 쭉쭉 뻗어 손을 들 때 다른 사람들을 앞에 둔 수줍음과 당황함은 더 많은 자신감을 위한 운동으로 바뀐다. 두려움을 앞에 둔 할 수 있다, 는 강한 믿음이다. 처음에는 얼굴이 붉어지거나 말을 더듬을 수 있어, 괜찮아. 상관없어, 천천히 말하는 너의 말을 우리 모두 천천히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우리 모두 듣는 중이야, 그러니까 너의 말은 소중해, 라는 외침이 교실에 가득하다. 절대로 끼어들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법, 말하기 위해 기다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쭉 뻗은 손가락이 믿음직스럽다. 모든 어린이는 자기만의 마음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이제 이렇게 손을 들고 말하자. 그러면 응답하는 세상이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https://www.phoenix.de/
박소진 (시인, 글쓰기 교사)우버칼럼니스트

<어린이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교육-학교-가정-교사-자연-지역사회 등 아이들을 둘러싼 독일의 다양한 환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시인의 눈으로 따뜻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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