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읽으면 돈을 준다?…'블록체인'에 미디어 미래가 있다 [긱스]
‘미디어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가.’ 오래된 화두다. 그럼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뉴스를 둘러싼 포털 장악력은 새해에도 강해지고 있다. 젊은 독자는 신문보다 모바일이 익숙하다. 매체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이다. 블록체인이 산업 분야별 디지털 혁신을 주도한다지만, 잠시 주춤한 상태다. 쌍둥이처럼 언급되는 암호화폐(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고, 거대 거래소인 FTX 파산과 고객 자금 횡령 의혹이 따랐다. 이런 가운데 ‘블록체인 기반 뉴스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스타트업이 있다. ‘사기가 판친다’는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니, '블록체인의 본질'을 강조하고 나섰다. 블록체인에 미디어의 미래는 있을까. 한경 긱스(Geeks)가 권성민 퍼블리시 대표를 만났다.
'충성 독자' 잡는 언론사 블록체인
퍼블리시의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제휴 언론사 명단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JTBC 코리아헤럴드 미디어오늘 서울경제TV 블로터 강원일보 등 총 64곳이다. ‘퍼블리시 에코시스템 파트너’의 개념이 일견 난해하게 다가온다. 권 대표는 “핵심은 토큰 리워드(보상)로 충성 독자를 늘리는 것”이라며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보면 어렵지 않은 원리”라 했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독립언론 ‘뉴스펭귄’을 예시로 꺼내 들었다. 권 대표가 퍼블리시 앱을 켜자, 뉴스펭귄 기사를 읽을 수 있는 ‘티켓’ 50장이 주어졌다. 뉴스 홈페이지에 접속해 기사를 읽자, 말미에 토큰을 받을 수 있는 QR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앱이 아니라 언론사 홈페이지로 접속해도 동일한 보상 화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기사를 읽기만 해도 돈을 준다, 이른바 ‘R2E(Read to Earn)’ 방식이다.
퍼블리시의 비즈니스 모델은 언론사를 타깃으로 한다. 보상을 받아 가는 독자가 많아지며 얻는 독자 수도 중요하지만, 더 큰 유인책이 필요하다. 뉴스펭귄은 ‘멸종위기종 보호 프로젝트’를 퍼블리시 기술 기반 대체불가능토큰(NFT)로 소장하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제휴 언론사마다 각양각색으로 달라진다. 독자가 소지한 토큰이 곧 언론사 내의 또 다른 ‘게임머니’가 되는 셈이다. 언론사가 토큰의 유통 주체가 되면, 각종 기획 이벤트에서 독자를 끌어모을 ‘무기’가 생긴다고 했다. 권 대표는 “최근 언론사가 주력하는 구독형 프리미엄 콘텐츠나 개최하는 포럼 등의 유료 결제도 기사를 읽으며 받은 토큰으로 결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독자와 언론사 사이의 관계는 지속해서 가까워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토큰을 찍고, 특정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방식은 블록체인 업계에선 다소 정형화된 방식이다. ‘환금성’에 대해 물었던 이유다. 토큰이 현금 가치를 잃으면 생태계는 무너진다. 가상화폐 ‘루나’가 그랬다. “토큰 가치를 어떻게 담보하는가”는 질문에, 권 대표는 “환금성을 확약하는 순간 사기가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 미디어 실무자에게 무수히 받아본 질문”이라고 했다. 그는 투자자산의 기능보다 블록체인 본연의 기능이 앞설 때가 온다고 했다. 원론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지만, 어조는 강했다. “현재 대부분 토큰의 백서엔 50이 유틸리티(기능)이면 나머지가 투기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와 토큰이 만나면 채울 수 있는 기능이 무궁무진합니다.”
현재 한창 아이디어를 실현 중인 단계다. 서비스는 ‘퍼블리시소프트’ ‘퍼블리시월렛’ ‘퍼블리시체인’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본질은 사용자가 뉴스를 읽고 토큰을 적립할 수 있게끔 서비스를 연동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추는 ‘퍼블리시아이디’다. 앱에 접속하면 구독 언론사와 보유 토큰을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의 이체나 보관을 돕는 중추다. 언론사로의 로그인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리비아·남아공 거쳐 美 언론사 '영업맨'에
스타트업은 미디어를 택하지 않는다. 다양한 ‘미디어 스타트업’이 있으나, 스케일업의 동력을 갖춘 곳보단 ‘소규모 매체’로 표현할만한 곳이 더 많다. 개발력과 아이디어를 갖춘 창업가가 혁신하는 분야로 묘사하긴 힘든 셈이다. 소위 ‘돈이 안 돼서’ 피하는 경우가 많다. 권 대표 이력은 창업 분야를 IT와 미디어의 결합으로 택했던 만큼 독특하다.
그는 7살 때부터 리비아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가 현지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까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았다. 대학은 북미에서 나왔다. 캐나다 서부 명문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수학과 통계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겨 다시 IT 비즈니스를 전공했다. 특별히 엄청난 꿈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졸업하곤 당시로선 중소 규모의 인터넷 언론사에 들어가 영업직으로 8년간 재직했다. 회사가 커지며 사업 개발 총괄직까지 지냈다. “생각보다 영업이 몸에 맞았다”며 예정보다 오래 일했다고 전했다.
2000년대 초중반 권 대표가 기억하는 미국의 뉴스 소비 생태계는 현재와 큰 차이가 있다. 그는 “미국이 영어를 기반으로 시장 자체가 커서 다행이었지만, 언론사 내부에서 ‘뉴욕타임즈도 망한다’며 위기감이 상당했다”고 했다.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을 향하던 당시, 그는 “당시엔 인터넷 배너광고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 적었다”며 “광고를 팔려면, 전화로 ‘혹시 근처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가며 1시간씩 통화했다”고 전했다. 현재 그가 한국에서 ‘언론의 위기’라는 테마를 접하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는 이유다. 그가 재직하던 시기 미국에선 외환(FX) 트레이딩 ‘붐’이 일기도 했다. 관련된 인터넷 광고와 포럼을 주로 만든 기억이 많다.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외환 투자 뉴스를 공급하는 전문 통신사를 만들기도 했다.
2014년 귀국했다. 퇴사 계기는 전직이었다. 처음엔 경력을 살려 본격적으로 FX 중심 자산운용사를 차려볼 요량이었다. 미국에선 한국인이 금융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국내 금융시장 규제를 접한 뒤 한국에서도 준비를 그만뒀다. 국내 대형 증권사도 찾아다녔는데, 돌아온 말은 ‘내부 조직에 입사해서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마루 180’이었다. “사실 다시 외국으로 나가려 했어요. 그때 역삼에 있었는데, 근처 건물에서 계속 행사를 하는 겁니다.” 마루 180은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다. 오가는 창업자들을 보며, 다시 한번 회사를 차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부터 ‘이코노타임즈’ ‘토큰포스트’ 같은 인터넷 매체를 직접 만들었던 계기다.
퍼블리시는 2018년 만들어졌다. 원래 공략하려 했던 사업 분야는 언론사의 ‘CMS(기사 입력 등을 관리하는 내부 프로그램)’와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것이었다. 기존 CMS와 기능은 동일하되, 업로드하는 기사를 일종의 블록체인 단위로 만들려 했다. 언론사는 독자가 기사를 읽으며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독자별 성향과 열독 데이터 등을 남길 수 있는 형태다. 하지만 국내 언론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권 대표는 “아무리 영업을 해도 언론사에선 기존 전산 시스템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며 “가격을 낮게 하고 기능을 높여도 관성이 매우 강한 조직인 것을 배웠다”고 했다.
블록체인 겨울 속…"韓 언론, 선택지 많지 않다"
이후 형태를 전향적으로 바꿨다.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형태로 만들어, 언론사가 기존 전산을 건드리지 않고도 블록체인 플랫폼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했다. 현재의 퍼블리시 서비스 형태다. 전 대표는 “아직은 클로즈베타 테스트 정도로 60개 이상 언론사만 서비스하고 있고, 오는 5월쯤 정식으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보상책의 핵심인 토큰은 공통의 토큰인 ‘뉴스토큰’이 있지만,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만드는 안도 준비되고 있다.
권 대표는 현재를 ‘블록체인 겨울’이라 진단했다. 루나와 위믹스 사태를 비롯해, 지난해 있었던 각종 악재에 대해 “차라리 이렇게라도 빨리 터지는 게 낫다”고 했다. 다시 유틸리티와 커뮤니티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 자신도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이 ‘스팀잇 프로젝트’였다. 2016년 나온 공개형 소셜 사이트인데, 작성자들의 글이 투표에 오르고 인기글은 토큰을 받는 구조였다. 스팀잇은 코로나19 확산세 가운데서 ‘돈 버는 SNS’로 포지셔닝하며 접속자 수를 크게 늘렸다. 다만 글의 질은 담보되지 못했다. 권 대표는 “한국 언론사는 다른 나라보다 자유롭고, 스스로 좋은 기사를 생산해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 있다”고 했다. 더 나은 커뮤니티가 출현할 수 있는 이유다. 권 대표는 “웹으로의 전환 시기, 한국 언론이 초기 포털과 같은 애드(광고) 네트워크에 투자했어야만 했다”며 “이제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참 한 가지 더
"한국 뉴스, '구매하는 상품'으로 인식 않는다"
학계도 블록체인과 미디어의 관계를 주목했다. 한국방송·미디어공학회가 분기마다 발행하는 '방송과 미디어'에선 이를 자세하게 분석하기도 했는데, 핵심은 블록체인 역시 상업성과 공공성, 양대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미디어 본연의 고민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의 '블록체인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 주제에서 유경한 한국외대 교수는 국내 뉴스 콘텐츠가 상업성을 잃었다고 서두부터 진단했다. 유 교수는 "한국의 뉴스 콘텐츠는 적지 않은 제작 비용을 들이면서도 콘텐츠의 가치, 즉 지불의사가 거의 없는 콘텐츠"라며 "북미나 유럽과는 달리 포털 잠식으로 인해 '구매하는 상품'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해외의 'CIVIL' 'DNN미디어' 등이 토큰을 보상으로 데스크 중심의 게이트 키핑 문화를 개선하고, 뉴스 구독자를 집중시키는 주요 사례로 언급됐다. '미디어 시프터'는 위·변조가 어려운 블록체인 특성을 '팩트체킹' 문제에 해결한다. 독립언론이 보상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이윤을 남기는 모델도 있다. 유 교수는 "블록체인과 미디어의 결합에서 발생하는 잠재적 이익이 결코 낮지 않다"면서도 "적은 수익과 비즈니스 모델, 광고주와의 논쟁 등 생각해볼 문제들이 남았다"고 전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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