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하루 씨의 바람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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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만난 고교 동창은 '같은 부서 동료가 이태원 참사로 숨졌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시사IN〉에 이 사건에 대해 기고했던 일본 프리랜서 기자 아와노 마사오 씨는 지난해 7월, 희생자 가족과 변호인단이 사고 이후 21년 만에 참사와 그 이후를 되돌아보는 단행본을 출간했다고 전했다.
2001년 육교 참사 당시 딸 치하루(당시 9세), 아들 다이(당시 7세)를 잃은 아리마 마사하루 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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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만난 고교 동창은 ‘같은 부서 동료가 이태원 참사로 숨졌다’고 말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독자위원회에 참석한 한 독자위원은 ‘지인의 지인’이 그날 희생되었다고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다음 날, ‘핼러윈 파티를 구경 간다’던 누군가의 안부를 나도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참사였다. 1월 초, 전혜원·신선영 기자가 일본에 건너가 만난 ‘아카시시(市) 육교 사고 희생자’ 가족들도 이태원 참사를 남의 나라,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말, 편집회의에서 ‘일본 육교 사고와 그 후’를 취재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2001년 7월21일 효고현 아카시시 육교에서 벌어진 참사. 불꽃놀이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서로 엉켜, 어린이 9명과 노인 2명이 숨졌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은 여러모로 이태원 참사와 닮았다. 사고 당일 일본 경찰은 폭주족 단속에 주력했다. 사고 직후 젊은 청년이 소란을 피우고 일부러 밀어서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이 아니었다. 희생자 유족들은 “어린아이를 왜 그런 곳에 데려갔나” “자업자득이다”라는 비방을 견뎌야 했다. 또 15년 동안 민형사 소송을 치러야 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시사IN〉에 이 사건에 대해 기고했던 일본 프리랜서 기자 아와노 마사오 씨는 지난해 7월, 희생자 가족과 변호인단이 사고 이후 21년 만에 참사와 그 이후를 되돌아보는 단행본을 출간했다고 전했다.
〈시사IN〉 편집국은 일본의 육교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겪은 일과 이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자세히 소개하는 게 지금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혜원 기자가 원서를 구해 읽고, 일본 현지 취재를 준비했다. 아와노 마사오 기자가 섭외에 도움을 주었다. 두 기자가 가족, 변호인, (당시) 소방관·시청 직원 등을 만나고 돌아와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썼다.
2001년 육교 참사 당시 딸 치하루(당시 9세), 아들 다이(당시 7세)를 잃은 아리마 마사하루 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이태원 참사 유족분들에게 잘 전해주세요. 앞을 보고 힘내주시길 바란다고. 앞을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응원해주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요.” 이번 설 합병호에 실린 기사가 159명 희생자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 마사하루 씨의 바람처럼.
차형석 편집국장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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