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간 100개국 장관과 소통… 친화력·뚝심의 ‘글로벌 마당발’[Leadership]

김유진 기자 2023. 1. 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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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 베스트 리더십 - 박진 외교부 장관

책임감으로 무장

작년 윤정부 출범 사흘째 취임

열흘만에 한미 정상회담 수행

4년7개월만 한일 외교 회담도

‘우리가 세계의 중심’지론 바탕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설계

격의없이 소통

야당 공격때 조직 중심 잡고

예산당국 관계자 찾아다니며

지역구보다 외교부 예산 챙겨

외교부 산악회 직원들과 등산

연말 모임때는 기타실력 뽐내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외교 지향점은 ‘글로벌 중추 국가’(GPS·Global Pivot State)로 요약된다. 외교부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다방면으로 확대하는 GPS의 대표적인 시행 계획으로 지난해 12월 28일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개했다. 이 전략의 얼개를 짜고 구체화하는 모든 과정에 박진(사진) 외교부 장관이 관여했다. 박 장관은 지난 11일 대통령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 나와 “인·태 전략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한반도·동북아라는 지정학적 틀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지난해 5월 10일 윤 정부 출범 약 열흘 만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어 이번 인·태 전략 공개까지 약 8개월에 걸쳐 한국 외교의 최전선에서 현장을 진두지휘 중이다. 박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순방(14∼17일)에 동행해 정상외교를 지원하고 있다. 박 장관은 북한 비핵화라는 난제 속에서 자유와 평화, 번영에 기반을 둔 가치 외교와 한·미 동맹을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중국을 포용하는 전략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상황을 무난하게 풀어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장관은 지난해 9월 말 윤 대통령의 뉴욕 순방 후 야당의 ‘외교 참사’ 공세에 국회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는 위기도 겪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한국 외교를 이끌고 있다.

◇특유의 친화력과 책임감으로 한국 외교 지평 확대=박 장관은 윤 정부 출범 사흘째인 지난해 5월 12일 취임했다. 이후 약 열흘 만인 같은 달 21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을 수행한 뒤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워싱턴DC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동맹국인 미국과의 정상회담과 외교장관 회담을 잇달아 가지며 전임 정부에서 파열음을 내던 한·미 외교를 정상화시켰다.

7월 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같은 달 중순에는 외교부 장관으로서는 4년 7개월 만에 일본을 방문해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도 참석했다. 역시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최악의 상황에 빠진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바쁜 움직임이었다. 2주 뒤에는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지금은 정치국원이 된 왕이(王毅) 당시 외교부장과도 회담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에 새로 들어선 윤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알리고 관계를 맺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여기에는 박 장관이 가진 친화력과 책임감이 일조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남다른 친화력으로 소문난 박 장관은 지난 8개월간 수차례의 다자·양자 외교 무대에서 직접 만난 다른 나라 외교장관만 50여 명이다. 전화 통화로 협의한 국가의 외교장관까지 포함하면 100여 명으로 늘어난다.

박 장관의 역량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GPS를 축으로 하는 윤 정부의 인·태 전략은 △규범·규칙 기반 국제질서 구축 △법치주의·인권 증진 협력 △경제안보 네트워크 확충 등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가치 중심 과제’와 한국의 외교적 목표를 담은 ‘국익 중심의 과제’를 두루 아우른다.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박 장관의 평소 지론을 바탕으로 한국 외교의 지평을 한반도 밖 전 세계로 넓혀 잡은 게 핵심이다. 박 장관은 인·태 전략 성안 과정에서 주무 부처 수장으로 한국 외교가 보다 넓은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로 박 장관은 지난해 12월 28일 인·태 전략을 공개하면서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며 한반도 문제에만 주력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인·태 전략을 통해 한국의 전략적 지평은 한반도를 넘어 설정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격의 없는 리더십으로 조직 내 소통 강화=외교부가 정치인 출신 장관을 맞은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세계 각국과 협의하는 외교부 업무를 정치인 출신에게 맡기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또 직업 외교관 출신 장관들은 업무나 조직에 대해 비교적 이해도가 높다. 박 장관의 경우 외무고시 11회 출신으로 외교부 근무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더 길었던 때문에 임기 초반 조직 운영 등을 놓고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8개월 내내 외교부 내에서 박 장관의 부 운영과 관련해 특별한 잡음은 없었다는 게 외교부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친화력과 조직 장악력으로 간부들은 물론 사무관, 행정관들과도 격의 없이 소통해온 때문이다. 박 장관은 때때로 외교부 내 산악회 소속 직원들과 등산을 하는 것으로 격무의 피로를 푼다. 지난 연말엔 일부 직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박 장관이 기타 연주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최근까지 박 장관은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당시 외국인 희생자들을 전담 지원했던 외교부 직원들과 일일이 점심식사를 했다. 당시 외교부 직원들은 사고 여파가 워낙 컸던 탓에 희생자 유족 지원 업무를 하는 중에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를 전해 들은 박 장관이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직접 시간을 냈다고 한다

◇해임건의안 사태에는 뚝심 돌파=박 장관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최대 위기는 야당이 지난해 9월 윤 대통령 순방 외교 논란에 대한 책임을 박 장관에게 묻겠다며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뉴욕 순방 외교를 ‘국격·국익 훼손’으로 규정하고 지난해 9월 27일 소속 의원 169명 만장일치로 ‘박 장관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 해임 건의안은 이틀 뒤인 29일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해임건의안 수용을 압박했지만 윤 대통령은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내고 박 장관에게 힘을 실어줬다. 박 장관은 이 일이 있고 나서 열린 외교부 실·국장 회의에서 “하던 일을 하면 된다”며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조직의 중심을 잡았다. 직접 외교부 기자실을 찾아와 “정치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착잡한 심정”이라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박 장관은 해임건의안 통과 이후에도 외교부를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등에 참석해 위축되지 않는 뚝심을 보였다. 외교부를 겨냥한 민주당의 각종 문제 제기를 일부 수용하며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과도한 지적에는 적극 반박했다. 박 장관은 지난해 말 여야의 팽팽한 대치 속에 처리가 늦어진 올해 예산안 채택 과정에서도 자칫 외교부 예산이 감소해 외교 활동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쏟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역 국회의원인 만큼 지역구 예산을 챙길 법도 하지만 외교부 예산을 우선적으로 챙겼다고 한다. 직접 예산 당국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소통한 것은 물론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외화 예산 비중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외교부 특성상 환율 상승 시 예산 감소로 이어지는 어려움이 있다”며 “박 장관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국회와 성실하게 소통하는 것을 중요시했다”고 전했다.

■ 정치인 시절부터 다진 인맥

블링컨 미국 국무와 ‘진’‘토니’라 부르고 히야시 일본 외무와는 케네디스쿨 ‘선후배’

박진 외교부 장관의 휴대전화는 글로벌 메신저 ‘왓츠앱’(WhatsApp) 알림음으로 온종일 쉴새 없이 울려댄다. 시차도 개의치 않고 쏟아지는 각국 외교 사절들의 문자 메시지 때문이다.

박 장관은 아무리 일과가 바쁘더라도 틈틈이 짬을 내 답장을 보낸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카타르월드컵 기간엔 조별리그, 16강, 8강 등으로 이어지는 경기 결과를 살펴가며 승리한 나라의 장관에겐 축하 연락을, 패배한 나라의 장관에겐 위로 연락을 했다.

추석과 같은 명절엔 박 장관 자신이 전통 한복을 갖춰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안부를 전하고 덤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도 알렸다. 상대국 장관들은 박 장관에게 이모티콘 등을 더한 친근한 문자 메시지로 답을 보내온다고 한다.

박 장관은 다가오는 설 명절에도 이 같은 소통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 외교관은 “단순한 인사에 불과한 것 같지만 자주 나누다 보면 친밀감이 커지고 이런 것들이 실제 외교 현장에서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박 장관 특유의 친화력 덕분엔 외교가에서는 ‘이전에는 없던 스타일의 외교장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 장관은 정치인 시절부터 다져 둔 세계 각국 인사들과의 인맥을 장관이 된 뒤 외교 무대로 옮겨와 십분 활용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는 서로를 ‘박’이나 ‘블링컨’ 같은 성 대신 ‘진’과 ‘토니’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편한 사이로 지낸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후배 사이여서 금세 가까워졌다고 한다.

박 장관은 지난해 8월 9일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지금은 정치국원이 된 왕이(王毅) 당시 외교부장과 회담을 할 때 산둥대 명예교수 재직 경력을 대화 소재로 꺼내 긴장을 허물었다.

같은 달 29일 몽골에 방문했을 때 우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이 박 장관과 1박 2일을 함께하며 만찬을 주재하고, 국빈급으로 대우한 일도 외교가에서는 화제다.

당시 후렐수흐 대통령은 박 장관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전용 헬기를 제공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이런 의전서열을 뛰어넘은 몽골 측 환대는 박 장관이 정치인이던 시절부터 후렐수흐 대통령과 친분을 다져 둔 오랜 인연 덕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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