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앞세운’ 인질 구출 외교전 vs ‘기교 돋보인’ 항일 스파이 찾기
■‘교섭’ vs ‘유령’설 극장가 격돌
교섭
아프간 선교단 피랍 실화 소재
외교관·국정원 요원 분투 그려
마지막 교섭 장면 30분 절정
유령
절벽 호텔 밀실 추리물로 시작
스파이 정체 밝혀진후 액션물로
비비드한 색감 등 영상미 눈길
‘연휴에 먹을 게 없다.’ 편견과 진실 그 사이 어디쯤 놓인 이 ‘속설’을 깨기 위해 벼르는 한국 영화 두 편이 오는 18일 동시에 개봉한다. 설 연휴에 정면 승부를 벌일 영화 ‘교섭’(연출 임순례)과 ‘유령’(연출 이해영)이 그 주인공.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뚝심 있게 나아가는 실화 바탕 드라마 ‘교섭’과 고도로 세공된 양식적 세트 안에서 5명의 캐릭터가 각자의 색을 발산하는 일제강점기 배경의 추리 액션 ‘유령’. ‘뚝심’ 대 ‘기교’로 요약할 수 있는 두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분석했다.
“외교부의 제1 사명, 자국민 보호 아닙니까!”
‘교섭’은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 재호(황정민)와 현지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의 분투를 그렸다.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에게 피랍됐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영화는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실화 소재 드라마란 키워드 안에서 정직하게 작동한다. 그 우직함과 예측 가능성이 ‘교섭’의 장점이자, 한계다.
황정민이 맡은 외교통상부 소속 외교관 재호는 피랍된 인질들 구조를 최우선 사명으로 여기며, 능력과 소신을 갖춘 인물이다. 국가의 체면, 재정적 손실 등을 걱정하는 정부 간부 등과 갈등이 생기지만, ‘대통령 찬스’까지 쓰면서 꿋꿋하게 인질들을 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영화는 신념에 가득 찬 황정민의 얼굴에 상당 부분 기댄다. 현빈이 맡은 대식은 거칠지만,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누구보다도 인질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인물. 다만 탈레반과의 최종 교섭자는 결국 외교관인 재호일 수밖에 없어 영화가 진행될수록 역할이 겉도는 측면이 있다.
인물에 대한 묘사는 평면적이다. ‘신념을 추구하는 외교관’(황정민)과 ‘인도주의적 마음을 가진 국정원 요원’(현빈)이란 인물적 특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아프간 정부와 교섭을 시도하다 엎어지는 패턴이 반복되는데, 과정이 지난할수록 최종 교섭 순간이 간절해진다. 기교를 덜고 진심을 담아낸 연출 덕분에 재호가 탈레반 총사령관과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교섭 30분은 힘이 있다. 임 감독 스스로 “영화의 핵심적 장면”이라고 손꼽은 지점이다.
‘샘물교회 피랍 사건’이란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영화 내에서 인질들은 최소한으로 언급된다. 통역사 카심(강기영)의 “그 사람들 뭐 하러 이런 곳에 와서 엄한 사람들 개고생시키냐고”란 대사 정도다.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소재를 고른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듯하다. 다만 재호나 대식이 목숨까지 거는 동기이자 행동 목표인 인질들에 대한 묘사가 극히 적은 탓에 인물들의 추동력이 약해지는 측면이 있다. 요르단 현지 로케이션 촬영으로 구현한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은 황량하면서 웅장하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 여름에 촬영이 진행됐지만, 되도록 ‘진짜’ 풍경을 담기 위해 어려운 길을 택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우리는 언제라도 어디라도 있을 텐데.”
영화는 항일 조직 흑색단의 스파이인 ‘유령’을 잡기 위해 유령으로 의심받는 용의자들을 외딴 절벽에 있는 호텔에 가두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설경구(쥰지)·이하늬(박차경)·박소담(유리코)·서현우(천 계장)·김동희(백호) 중 ‘유령이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초반부가 밀실 추리물이라면, 실체가 밝혀진 유령이 일본군을 소탕하는 후반부는 통쾌한 액션물이다.
전작 ‘독전’(2018)에서 화려한 스타일을 과시했던 이해영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양식적 기교를 극대화했다. 인물 간 연대를 상징하는 성냥불을 붙이는 장면은 매번 감각적이고, 물 한 방울 떨어지는 순간도 슬로모션으로 놓치지 않는다. 특히 1930년대 조선이라곤 믿기 힘든 비비드(vivid)한 색감이 돋보인다. 인물들의 의상은 각 캐릭터 고유의 색을 담고 있고, 취조 장소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을 연상시킨다. 조선인 어머니를 둔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쥰지 역의 설경구는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면서 한 컷 한 컷 정말 정성스럽게 닦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타일이 강조되다 보니 서사의 흐름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것보단 보여주고 싶은 무엇을 위해 서사를 붙여 나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폐쇄적 공간에서 누가 유령인지 찾는 초반부는 마피아 게임이 연상된다. 다만 추리보단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의 화학작용을 보이는 데 집중한다. 유령의 정체가 공개되는 지점부터 영화의 온도는 급상승하며 액션 영화로 변모한다. 유령이 일본군을 말 그대로 소탕하는데,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현실과의 괴리로 이질감을 느낄지에 따라 반응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주역으로 활약한 이하늬는 “일제강점기의 슬픔이 내재돼 있으면서도 굉장히 세련되고 독특하게 풀었다”며 “양손에 총을 들고 일본군을 소탕하는 마지막 부분은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각 역할의 특성을 살린 캐릭터 무비를 지향한다. 할리우드 ‘오션스’ 시리즈나 최동훈의 ‘도둑들’을 연상하면 쉽다. 설경구, 이하늬 외에 정무총감 비서로서 단단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박소담과 악랄한 경호대장 카이토 역의 박해수 등 기존 이미지와 조금씩 다른 모습을 연기한 배우들의 합도 나쁘지 않다.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은 보다 강조되고, 상대적으로 남성 캐릭터는 기능적으로 쓰였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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