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나를 생각해줘’ … 옆사람의 외로움 못 보는 건 아닌지[주철환의 음악동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추가열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
“만약 투명인간이 된다면 어디부터 가보고 싶니.” 이런 농담이 어색지 않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무심코 던질 질문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어감도 달라져서다. 이제 신입생이나 신입사원들에겐 따돌림 방지 교육이 필수다. “누가 너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면 반드시 신고부터 해라.”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과학소설(SF·1897) 제목에서 유래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을 마음껏 휘저으며 내 뜻대로 살 수 있을까. 주인공(그리핀)은 실험(약물 개발)엔 성공했을지 몰라도 실존(대인관계)에선 불행했다. 소통과 공감의 부재가 비극적인 건 음악동네 ‘투명인간’(원곡 손담비)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어디를 보니. 니 앞에 난 투명인간이니. 소리쳐야 내가 보이겠니. 바로 앞이야. 지금 니 눈앞에 내가 있잖아.’
마음의 눈을 뜨지 않으면 먼 산의 미세먼지도 구름 덩어리에 불과하다. 뉴스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어느 담임교사의 인터뷰가 귓가에 맴돈다. “우리 반 아이가 그렇게 외로운 줄 전혀 눈치 못 챘어요.” 담임이란 담당과 책임을 합친 말인데 ‘저 선생님은 수업 준비로 얼마나 바쁘셨길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연수 담당자들에게는 차제에 노래 몇 곡을 교재로 추천하고 싶다. ‘너를 처음 만난 날 (중략) 사랑의 시작이었어’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의 제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가 아니라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원곡 조정현)다. 사랑에도 검진이 필요하다. 현장에선 누가 때려서 아픈 게 아니고 외로워서 아픈 경우가 훨씬 많다.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알고도 외면하고 무시한다면 그런 학교나 직장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감옥의 끝엔 지옥이 있지 않겠는가.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의 제목도 그래서 ‘사랑의 종말’(원곡 차중락)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익숙함에 길든 사람들도 매일매일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는 게 좋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는 수송부 간판에만 적합한 구호가 아니다. 혹시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나만 못 듣는 건지 ‘낮은 귀를 열고서’(이규석 ‘기차와 소나무’ 중) 주변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한 번만 나를/ 한 번만 나를 생각해 주면 안 되나요.’ 마치 외로움의 끝판왕 같은 이런 가사가 포함된 노래는 제목(‘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부터 강렬하다. 이어지는 하소연은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절규’(1893)만큼이나 절박하다. ‘그대만 행복하면 그만인가요. 더 이상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의 이름은 추가열(본명 추은열)이다.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을 위해 추가로 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알고 보니 예명 탄생에는 뜻밖에도 SM 이수만 회장이 가세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얼핏 이질적인 결합 같아도 대중 침투라는 목표에선 정확히 일치했다. 이 처량한(?) 가사와 집시풍 멜로디는 아이돌 기획사 오디션에서도 빛을 발했고 한때 H.O.T.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중년의 아이돌로 그를 등극시켰다.
‘누구야 누가 또 생각 없이 돌을 던지는가. 무심코 당신은 던졌다지만 내 가슴은 멍이 들었네’(오은주 ‘돌팔매’ 중). 살다 보면 가끔 돌에 맞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는 일도 잦다. 문제는 본인조차 그걸 모르고 산다는 사실이다. ‘어디다 던지는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는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우노라.’ 고려가요 ‘청산별곡’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돌 던지고 맞으며 살았던 게 분명하다.
추가열은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을 맡고 있다. 혼을 다해 만들고도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라며 버려진 노래들에도 추가로 열이 필요하다. 이름 참 잘 지었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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