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에 핍박받는 ‘젊은 록스타’ 베토벤, 사랑에 빠지다
■ 새해 첫 대형 창작 뮤지컬 ‘베토벤’
‘음악가’ 아닌 ‘인간’에 초점
자신 이해하는 유부녀와 밀애
삶의 환희·가치·아픔 알게 돼
월광 소나타·운명 교향곡 등
깔끔하고 세련된 편곡 인상적
프라하를 무대에 그대로 재현
박효신·옥주현 등 가창 일품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 어떤 수식어도 부족한 불멸의 음악가 베토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은 모험이다. 거기에다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베토벤의 음악들을 뮤지컬 노래로 바꿔 부르는 것은 거의 무모하다. 지난 12일 개막한 대형 창작 뮤지컬 ‘베토벤’은 여기에 도전장을 냈다.
1810년 오스트리아 빈의 화려한 궁정. 휘황찬란한 가발과 옷차림으로 치장한 귀족들 사이, 어두운 색의 코트를 입은 장발의 베토벤이 등장한다. 가발도 쓰지 않고 넥타이도 하지 않은 그에게 후원자인 킨스키 공작은 “예의를 갖추라”고 이야기하고 귀족들은 “천박한 그를 내쫓으라”고 소리친다. 킨스키 공작은 이윽고 베토벤에 대한 후원을 끊고, 킨스키 공작을 찾아간 베토벤은 우연히 안토니 브렌타노(토니)를 만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토니는 부모가 정해준 한 은행가와 정략결혼을 하고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유부녀. 베토벤과 토니는 그렇게 ‘비밀스러운 사랑’을 시작한다.
작품은 음악가로서의 베토벤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베토벤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에 빠진 나약한 인간. 토니와의 키스 장면도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학대로 사랑을 믿지 않았던 베토벤은 토니로 말미암아 사랑에 눈을 뜨고 환희, 삶의 가치, 아픔 등을 알게 된다. 베토벤의 사랑 이야기는 실제 역사에서 얻은 힌트에 상상을 더한 것이다. 베토벤이 유품으로 한 여성에게 보내는 세 통의 연애편지를 남겼고 학자들이 그 편지의 유력한 주인공으로 15세 연상의 부유한 상인과 혼인 후 네 명의 자녀를 두었던 안토니 브렌타노를 꼽은 것. 이번 뮤지컬 ‘베토벤’은 토니와의 사랑 이야기가 극을 이끌어 가기에, 음악가로서 고뇌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기대에 어긋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그는 이 작품에서 ‘젊은 록스타’처럼 표현된다. 옷을 갖춰 입지 않은 채 귀족들에게 반항하고 핍박받는 ‘젊은 록스타’. 실제로 베토벤의 대표 넘버이자 ‘비창’을 활용한 ‘사랑은 잔인해’ 등 다수의 넘버들에서 일렉트로닉 기타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된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새해 첫 대형 창작 뮤지컬이자 유명 극작가 미하엘 쿤체,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신작 ‘베토벤’의 관건은 넘버다. ‘월광’ ‘비창’ 등 피아노 소나타부터 ‘영웅’ ‘운명’ 교향곡까지, 너무나도 유명한 베토벤의 음악들을 그대로 활용했기에 원곡의 품격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넘버들은 꽤 훌륭하다. 베토벤의 대표 넘버 ‘너의 운명’은 운명 교향곡을 활용했는데 가장 유명한 멜로디 구간을 베토벤이 직접 가창하지 않고 앙상블의 몫으로 돌려 자칫 촌스러워질 수 있는 편곡을 피하는 영리한 방법을 택했다. 특히 록사운드를 가미한 곡들은 지금 시대에 나온 노래라 해도 믿을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편곡이 인상적이다. 다만 ‘엘리제를 위하여’를 활용한 넘버 ‘비밀의 정원’ 등 몇몇은 널리 알려진 멜로디에 직관적인 가사를 매치해 다소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고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가창력은 일품이다. 특히 기악곡을 가창곡으로 바꾼 것이어서 넘버들의 난도가 꽤 높은데 베토벤을 연기하는 박은태·박효신·카이, 토니 역을 맡은 조정은·옥주현·윤공주는 이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다만 가사 전달이 잘 되는 솔로 넘버와 달리, 앙상블의 합창에서는 음향이 조금씩 뭉개지며 가사 전달이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무대 연출은 다채롭다. 무대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오스트리아 빈과 프라하를 그대로 구현해 내는데, 프라하의 명소인 카를교와 그 위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인상적이다. 극 초반과 후반을 장식하는 천둥과 번개, 비 연출 역시 눈길을 끈다. 극 중반, 금발의 가발을 쓴 뮤지컬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프라하 오케스트라’라 칭하며 ‘베토벤’이 직접 이들을 지휘하는 장면은 예상 밖의 재미를 준다.
르베이는 앞서 “뮤지컬 ‘베토벤’을 통해 뮤지컬 음악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고, 반대로 클래식 애호가에게는 뮤지컬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대로 뮤지컬 내내 흐르는 클래식 선율이 반갑게 느껴진다. 다소 어색한 부분들이 있지만, 뮤지컬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베토벤의 원곡들이 담긴 CD를 찾아보게 되는 것은 르베이의 의도가 제대로 통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오는 3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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