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저출산 대책, 젊은층 의견 더 듣고 고민해라

양재찬 편집인 2023. 1. 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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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존립 위협하는 ‘인구 지진’ 경고음
저출산 · 고령화, 경제 후퇴 요인
충격 막아줄 정부 정책 보이지 않아
역대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저출산 대책에도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사진=뉴시스]

우리는 저출산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들을 목도하며 살아간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생산·소비가 위축되는 '인구절벽'에 이어 총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위기'를 입증하는 증거와 통계는 차고 넘친다.

지금 대학 정시모집 기간인데, 전국 14개 대학 26개 학과에 단 한명의 지원자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평균 경쟁률이 3대 1에 못 미치는 대학이 전체 188개 대학 중 65곳이었다. 응시생이 3곳까지 원서를 내는 정시모집에서 경쟁률이 3대 1이 안 되면 '사실상 미달'로 간주된다. '미달' 대학 65곳 중 59곳, 86.8%가 지방 소재 대학이다.

정시모집에서 미달학과 및 대학이 증가하는 것은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가 가장 큰 요인이다. 수도권에서 멀수록 입시 경쟁률이 낮고 미달이 많다. 정시·수시 모집에 관계없이 합격자 등록률도 지방대일수록 낮다. 대학가에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이 나도는 배경을 넘어 지역소멸을 예고한다.

저출산은 출산·양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부담이 큰 데다 취업과 결혼을 하기도 쉽지 않은 사회여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게다가 결혼을 늦게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초혼初婚 신부에서 30대가 20대보다 많아졌다. 2021년 초혼 신부 15만7000명 중 30대가 7만6900명(49.1%)으로 20대(7만1263명)를 추월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는 등 사회·경제 환경 변화로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있다. 1991년 남자 27.9세, 여자 24.8세였던 초혼 연령이 2021년 남자 33.4세, 여자 31.1세로 높아졌다. 만혼晩婚과 함께 결혼을 기피하는 비혼非婚 추세도 저출산을 심화시켰다. 급기야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20년 뒤 나이지리아에, 50년 뒤엔 필리핀에 각각 추월당한다는 분석도 나왔다(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2075년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

2020년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상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0위다. 나이지리아가 26위, 필리핀은 31위인데 20년, 50년 뒤 따라잡힌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규모 순위 후퇴 요인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다. 2021년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 최저다. 지난해 3분기 0.79명까지 내려갔다. 아이는 적게 낳고 오래 살다 보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결국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아지며 2020년부터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2021년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한국 땅에 사는 사람 수, 이를테면 총인구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줄었다. 저출산 고령화는 비단 인구를 감소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출산은 노동력 공급과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고령화는 세금을 내는 청장년층 비중은 줄이면서 의료·복지 혜택을 받는 노년층을 늘려 국가재정을 압박한다.

영국 인구학자 폴 월리스는 1999년 저서 「인구 지진」에서 인구감소 및 고령사회의 충격을 지진에 빗댔다. 월리스는 '인구 지진'이 '자연 지진'보다 파괴력이 강하며, 강도가 리히터 규모 9.0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가 본격화하는 2020년께 세계경제는 인구 지진으로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며, 한국도 그중 하나로 지목했다. 사회·경제 현상과 정부 공식통계들은 인구절벽과 인구위기 단계를 넘어 '인구 지진'이 임박했음을 경고한다.

하지만 인구 지진이 몰고 올 충격을 예방 내지 최소화하고 후유증을 해소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과 정책은 보이지 않고 효과도 거의 없다. 더구나 정부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내부에서 잡음을 일으켜 걱정을 더한다. 저출산 대책을 놓고 대통령실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갈등을 노출했다.

정시모집에서 미달학과 및 대학이 증가하는 것은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가 가장 큰 요인이다.[사진=뉴시스]

나 부위원장이 "자녀 출산 시 대출이자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탕감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자 대통령실은 "정부 기조와 다르다"며 반대했다. 나 부위원장이 "돈 없이 해결되는 저출산 극복은 없다"고 반박하자 대통령실은 "대통령과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나 부위원장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여야 정당이 아닌, 여권 내부에서 정책 방향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국민의힘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와 맞물려 억측을 낳고 있다. 저출산 대책 등 인구 문제 해결은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이 국정의 우선 과제로 놓고 추진해도 쉽지 않다. 하물며 우리가 고안한 것도 아닌 외국 대책을 갖고 티격태격해선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역대 정부가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세우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저출산 대책에도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아이를 낳는 젊은층의 의견을 더 듣고, 현실에 기반한 여러 아이디어를 놓고 소통과 협의를 통해 정책을 선택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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