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하버드대 한인 과학자, 회춘의 새로운 길 찾았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1. 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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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자체 변이 없어도 노화 유발
DNA 풀리고 감기는 과정 손상 탓
후천적 손상 복원하자 다시 젊어져
”치매, 당뇨 등 노화 질병 치료에 새 길”
생후 16개월 된 중년 생쥐(왼쪽)와 5개월 된 어린 생쥐(오른쪽). 5개월 생쥐는 유전자 자체는 멀쩡하지만 DNA가 감겼다가 풀리는 과정에 후천적으로 손상이 생겨 노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아닌 후천적 요인으로 노화가 유발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미 하버드 의대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가 유전자 돌연변이 없이도 노화를 유발하는 새로운 경로를 찾아냈다. 동물실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이든 동물을 다시 젊게 회춘(回春) 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연구가 발전하면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치매나 당뇨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길이 새로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와 양재현 박사 연구진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셀(Cell)’에 “유전물질이 담긴 DNA가 감기고 풀리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유전자 돌연변이 없이도 동물이 노화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돌연변이 없이 후천적 노화 가능

지금까지 노화는 DNA에 있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유전자에 담긴 정보가 일부 누락되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면 세포가 제 기능을 잃고 결국 장기 손상과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사람이나 생쥐에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많이 생겨도 노화가 빨라지지 않거나, 반대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데 노화가 일어나는 일들이 관찰됐다.

싱클레어 교수와 양재현 박사는 이른바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 epigenetics) 연구를 통해 DNA에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아도 노화가 발생할 수 있음을 동물실험으로 입증했다. 후성유전학은 이름 그대로 태어날 때 물려받은 DNA 유전정보는 변함이 없지만 이후 성장하면서 DNA의 구조적 변화로 유전자 기능이 바뀌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세포핵의 염색체에 있는 DNA는 실패와 실처럼 크로마틴(chromatin) 단백질에 촘촘히 감겨 있다. 유전자가 작동하려면 해당 부위의 DNA가 실패에서 풀려야 한다. 연구진은 효소로 생쥐의 DNA에서 20군데에 칼집을 내듯 손상을 일으켰다.

DNA에 손상이 발생하자 조절 인자가 그쪽으로 이동해 수리를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자 조절 인자가 나중에 제자리로 복귀하지 못하는 일도 일어났다. 결국 실패에 감긴 DNA가 엉뚱한 위치에서 풀리거나 감기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생후 5개월 된 어린 생쥐가 16개월 중년 생쥐처럼 나이가 들었다. 연구진은 세포 단위에서 실제 생물학적 나이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음을 확인했다.

미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싱크레어 교수(왼쪽)와 양재현 박사. 유전자 돌연변이 없이도 DNA가 풀리고 감기는 구조에 문제가 생기는 후천적 요인으로도 노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했다./양재현 박사 제공

◇회춘 유전자 세트로 노화 역전 가능

연구진은 DNA의 구조적 변화인 이른바 후성유전체를 원상복구하는 방법으로 생쥐를 회춘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싱클레어 교수는 “고장난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작동시키는 재부팅과 같다”고 설명했다.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2006년 생쥐의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 4가지를 주입하면 모든 세포로 자라는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공로로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신야 교수가 세포 역분화에 쓴 유전자 중 3가지(Oct4, Sox2, Klf4)를 자기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생쥐에 주입했다. 그러자 생쥐의 근육과 신장, 망막에서 후성유전체에 생긴 변화가 다시 복원됐다. 생쥐는 제 나이만큼 젊어졌다. 양재현 박사는 “이번 실험으로 후성유전체를 조절함으로써 노화를 앞당길 수도, 거꾸로 되돌릴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바이오기업인 리주버네이트 바이오(Rejuvenate Bio)도 하버드대와 비슷한 실험에 성공했다. 이들은 지난 5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하버드대가 사용한 것과 같은 3가지 유전자를 생후 124주 된 나이든 생쥐에 주입했더니 평균 18주 더 생존했다고 밝혔다. 같은 나이의 다른 생쥐는 평균 9주만 더 살았다. 회춘하면서 수명이 늘어난 것이다. 부작용은 없었다고 회사는 밝혔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번 실험 결과는 앞으로 심혈관 질환이나 퇴행성 뇌질환, 성인 당뇨병 같이 노화로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양재현 박사는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고 약물로 후성유전체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연구는 세포와 조직을 회춘시킬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유전자 자체는 그대로 두고 구조적 변화만 손을 봐서 건강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박사는 성균관대 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10년간 싱클레어 교수 연구질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노화 연구를 진행했다. 하버드 의대는 그동안 실험에 비판적인 의견도 많아 한때 양 박사가 싱클레어 교수에게 프로젝트를 그만두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싱클레어 교수는 “다행히 양 박사가 그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19일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싱크레어 교수(오른쪽)가 13년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이 셀지 게재가 확정됐다고 발표하는 모습. 화이트보드 앞에 있는 사람이 논문 제1 저자이자 싱클레어 교수와 공동 교신저자인 양재현 박사이다./트위터

참고자료

Cell,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2.12.027

bioRxiv, DOI: https://doi.org/10.1101/2023.01.04.52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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