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가 건강보험 위기 불렀다고?
“국민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편 추진을 두고 지난해 12월 13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건강보험에 대한 현 정부 인식의 요체를 담고 있다. 그는 전임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같은 정책이 “재정 파탄을 가져와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낭비와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에선 즉각 반박이 나왔다. “정치보복 때문에 건강보험을 망치려고 드는가. 돈 있는 사람만 좋은 치료 받으라는 것”(민주당 윤건영 의원) 등의 비판이었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해명자료를 배포해 더욱 노골적으로 전임 정부 ‘탓’을 했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지난 5년간 건강보험 재정은 위기를 맞았다. 2040년 누적적자가 6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대통령실 뉴스룸, 12월 14일)
지난 30여년 동안 건강보험은 한국사회 의료복지의 상징이었다. 대기업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에서조차 ‘대한민국을 만든 이슈’ 사회부문의 압도적 1위는 ‘건강보험제도 실시’였다. 그만큼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제도지만, 지금의 건강보험 시스템은 역대 정부가 모두 풀지 못한 병폐를 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4%)을 크게 밑도는 보장률(2021년 기준 64.5%)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단을 잘못하면 해법은 엉뚱한 방향으로 도출되게 마련이다. 전문가들의 지적을 종합하면, 건강보험의 ‘정상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전임 정부의 보장성 강화가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위기’ 진단은 무엇이 잘못됐을까. 온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 올해는 ‘정치 수다’ 대신 ‘정책 수다’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윤석열 정부가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건강보험이 어느 때보다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시기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MRI·초음파가 위기 불렀다?
먼저 현 정부가 말하는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 건강보험은 한 해 동안 걷은 보험료(수입)로 그해의 진료비(소비)를 충당하는 단기보험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은 2조822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시민들로부터 걷은 보험료와 정부지원금 등 수입이 80조4921억원이었고 진료비와 관리비 등의 지출은 77조6692억원이었다. 그리고 지출이 갑자기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쌓아놓는 별도의 적립금이 20조2410억원이다. 지금은 건강보험 재정에 별문제가 없다.
장기전망은 사정이 다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 2020년 작성한 ‘40년 재정전망’(지난해 8월 감사원 공개)을 보면, 현재 20조원대인 적립금은 2029년 모두 소진되고, 2040년엔 적자 678조를 기록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적자 위기를 2018년부터 시행된 ‘문케어’가 부채질했다고 본다. 특히 각종 MRI·초음파 검사의 급여화(건강보험 적용) 이후 과잉진료가 만연해진 것이 위기의 주요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김윤 서울의대 교수가 감사원 자료를 토대로 남용 규모를 가늠해봤다.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된 각종 MRI·초음파 진료비는 약 1조8000억원. 그중 기준에 미달하는데도 건강보험이 적용된 ‘남용 의심’ MRI·초음파 비용은 약 1600억원이다. 즉 전체의 9% 수준이라는 게 그가 감사원 자료를 재분석해 내놓은 결론이다. 김 교수는 “감사원이 남용이라고 본 MRI·초음파 진료비를 연단위로 환산하면 100조원가량 되는 한 해 전체 진료비의 0.2%도 되지 않는다”면서 “0.2% 때문에 재정위기가 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10여년 뒤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는 재정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파른 인구고령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현재 17% 수준인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급격히 커져 2070년엔 인구 절반에 육박하는 46.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통계청이 2021년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이미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의 절반 남짓(43%·2020년 기준)이 노인에게 쓰이고 있고 앞으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고령화로 인한 진료비 증대는 문케어 시행과 상관없이 정부가 미리 대비해야 할 ‘사회위험’이다.
진짜 ‘누수 요인’은 다른 곳에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건강보험에 대해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 이래 이제까지 ‘건강보험 보장 강화’를 내걸고 예산을 붓지 않은 정부가 없었다. 그럼에도 건강보험 보장률은 십수년 동안 63~65%를 횡보하고 있다. 의료비로 100만원 나왔다면 그중 65만원 남짓을 건강보험이 보장해줬다는 의미인데, OECD 국가 평균 보장률 (2021년 기준 74%)에 한참 못 미친다. 순위로 봐도 OECD 가입 38개국 중 30위로 최하위권이다. 왜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오르지 않는 걸까.
보건의료단체들은 의사가 진료행위를 하면 할수록 돈을 버는 의료체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한국은 OECD 국가 중 의사 1인당 진료건수가 압도적 1위”라면서 “의사가 진단과 치료를 많이 할수록 경제적 이익을 얻는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 때문에 공급자(의료인)의 과잉진료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행위마다 비용을 지급하는 가격제도를 뜻한다. 정부가 행위별 수가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진료행위가 아닌 질병별로 진료비를 묶는 ‘포괄수가제’를 변형시켜 10년째 공공병원 중심으로 일부 시행하고 있지만, 전체 진료 중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미미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약제비가 나날이 팽창하는 것도 건강보험을 ‘밑 빠진 독’으로 만드는 원인이다. 건강보험 적용 항목을 늘려도, 비급여 항목의 진료가 더 늘어난다면 전체 보장률은 오르지 않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20년 65.3%에서 64.5%로 떨어졌다. 보건복지부는 동네의원의 ‘도수치료’와 같은 비급여 진료 증대를 원인으로 분석했다. 갈수록 커지는 실손보험 시장은 비급여 진료를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이처럼 오랫동안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일으켜 온 요인들은 하나같이 의사단체, 의약업계, 보험시장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건강보험 정상화”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는 과연 ‘진짜 과잉’을 수술할 의지가 있을까.
일단 건강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서는 건강보험을 ‘진영대결’ 구도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전임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문재인 케어’로 불리다 보니, 현 정부와 보수언론은 그것을 전부 부정하는 식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건보의 지나친 정치화’를 경계하면서 개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료 공영주차장 알박기 차량에 ‘이것’ 했더니 사라졌다
- ‘블랙리스트’ 조윤선 서울시향 이사 위촉에 문화예술계 등 반발
- [전문] 아이유, 악플러 180명 고소…“중학 동문도 있다”
- 미납 과태료 전국 1위는 ‘속도위반 2만번’…16억원 안 내고 ‘씽씽’
- 고작 10만원 때문에…운전자 살해 후 차량 불태우고 달아난 40대
- 평화의 소녀상 모욕한 미국 유튜버, 편의점 난동 부려 검찰 송치
- “내가 죽으면 보험금을 XX에게”···보험금청구권 신탁 내일부터 시행
- 경북 구미서 전 여친 살해한 30대…경찰 “신상공개 검토”
- 가톨릭대 교수들 “윤 대통령, 직 수행할 자격 없어” 시국선언
- 김종인 “윤 대통령, 국정감각 전혀 없어” 혹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