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눈 내린 조계사…합장, 탑돌이하는 할머니들 '만원의 행복'

김성진 기자 2023. 1. 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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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 도심 한복판에 있는 사찰 조계사에 눈이 내렸다.

1955년 조계사 뒤편의, 지금은 없어진 단독주택에서 태어났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했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매주 토요일 밤 조계사 불경 강의를 들었다.

오전 9시쯤 조계사를 찾아 오전 10시쯤 법회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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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과 따뜻한 밥 한끼...'1만원'이면 충분천원 커피로 입가심 후 남편 저녁상 차리러..."가족 건강 기도했어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모씨(68)가 종로구 대웅전을 향해 합장하고 기도하고 있다. 이날은 조계사가 정한 관음재일이다.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는 날이다. 박씨는 네번 허리를 반쯤 숙여 반배하고, 마지막은 반배보다 고개를 더 얕게 숙였다. 그게 서서 기도할 때 원칙이라고 했다./사진=김성진 기자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 도심 한복판에 있는 사찰 조계사에 눈이 내렸다. 눈은 쌓이지 않고 대웅전 앞마당에 녹아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모씨(68·여)는 물웅덩이 옆에 비켜서서 기도했다. 이날은 조계사가 정한 관음재일.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는 날이다. 박씨는 "가족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평생 불자였다. 1955년 조계사 뒤편의, 지금은 없어진 단독주택에서 태어났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했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매주 토요일 밤 조계사 불경 강의를 들었다. 29세에 결혼해 40여년 전에 낳은 딸은 지금 호주에 산다.

박씨는 매주 일요일 조계사에서 7~8시간을 보낸다. 오전 9시쯤 조계사를 찾아 오전 10시쯤 법회에 참석한다. 공양하고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커피 한잔도 먹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며 박씨가 쓰는 돈은 1만원을 넘지 않는다.

박씨가 향 공양을 하고 있다. 향은 1박스에 30여개씩 들고 4000원이다. 불자들은 향 1박스를 사고 남은 향을 공양 장소 주변에 두고 간다. 이를 불교에서는 '조건 없이 베풀었다'는 뜻의 '보시'라 부른다. 박씨는 이날 누군가 보시한 향으로 공양을 했다. 향 세개를 꺼내 공양했다. 향 하나당 남편과 딸, 집에서 기르는 6세 푸들을 위해 기도했다./사진=김성진 기자


조계사 공양은 종류가 여러 가지다. 그중 초와 향 공양이 대표적이다. 초는 2000~3000원, 향은 4000원이다.

향은 1박스에 30여개 들어 있다. 어떤 불자들은 한 박스를 사고 공양한 뒤 남은 향을 놓고 간다. 불교계는 이를 '보시'라고 부른다. 조건 없이 베풀었다는 뜻이다. 박씨는 이날 향을 살 필요 없이 누군가 보시한 향 3개로 공양했다.

공양을 마치면 점심시간이다. 한끼 가격이 2000원이다. 이날은 시금치, 콩나물, 도라지, 가지, 김치에 배춧국이 나왔다.

조계사는 밥을 무료로 제공하다 2010년쯤부터 가격을 매겼다. 식당 가까이 카페는 커피와 차를 1000원에 판다. 지난 10여년 동안 넘게 가격은 그대로다.

박씨가 이날 쓴 돈은 점심값 2000원이다. 적은 돈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다. 박씨는 "매주 이렇게 편안하게, 굴곡 없이 은은하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박씨가 15일 오후 12시쯤 공양간(식당)에 줄을 섰다. 12시쯤 법회가 끝나고 나온 불자들로 50여명이 줄을 섰다. 밥값은 2000원이다. /사진=김성진 기자


박씨 말고도 조계사에서 적은 돈으로 하루를 보낸 불자는 많다. 이날 오후 1시쯤이 되자 대웅전 앞마당 곳곳에서 불자 30여명이 기도를 했다. 상당수가 고령 여성 '할머니'들이었다. 남편들은 '무릎이 불편해 절하기 싫다' '출근해야 한다'며 안 온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보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경기 수원에서 오는 박명화씨(76)는 "아들 두명, 손자 다섯명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집에서 기도해도 되지 않느냐' 묻자 "불상 앞에서 직접 무릎 꿇고 기도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어떤 불자들은 사리탑 주변을 돌았다. 사리는 스님, 부처의 유골을 화장하고 나온 구슬 모양 뼈조각을 말한다. 조계사 사리탑은 2500여년 전 부처의 사리를 보관한다고 한다.

조계사 불자 정모씨(77)가 15일 오후 12시30분쯤 사리탑을 향해 기도하고 있다. 이곳 사리탑에는 2500여년 전 부처의 사리가 들었다고 한다. 사리란 유골을 화장하고 남은 구슬 모양 뼈조각을 말한다. 불교는 합장하고 사리탑을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이를 탑돌이라고 한다./사진=김성진 기자


인천에서 오는 곽모씨(66)는 합장하고 탑 주변을 세바퀴 돌았다. 이를 '탑돌이'라 불렀다. 곽씨는 30대 두 아들이 지난해 말, 올해 초 취업을 했다. 곽씨는 "아들들이 건강 해치지 않고 원하는 바 이루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불자도 있다. 인사동에 화랑을 운영한다는 정모씨(77)는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세상 떠나기 전 나라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며 "경제가 어려운데 슬기롭게 헤쳐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자들은 서로를 '보살'이라고 불렀다. 정진하고 수행하면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법명이 묘승화인 불자는 "절에 있는 부처만 부처가 아니고 남편과 가족, 이웃 등 도처에 부처가 있다고 믿는다"며 "기도하고 부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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