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생각보다 큰' 수송부문 탄소중립의 역할과 의미 (하)

박상욱 기자 2023. 1. 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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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6)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선택할 때 눈여겨보는 요소 중 하나, 바로 안전평가 결과입니다. 각 제조사는 자사 자동차의 '별 다섯'을 앞다퉈 자랑하곤 합니다. 별의 개수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경우엔 '탑 세이프티 픽'과 같이, 같은 '별 다섯' 등급 중에서도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를 강조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도 자체적인 평가를 실시합니다만, 미국 IIHS 안전평가와 NHTSA NCAP, 유럽의 유로 NCAP 안전평가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가혹하고, 진보적인 평가로 손꼽힙니다. 새로운 시험 방식을 선도적으로 적용하고, 기존과 같은 종류의 평가라도 더 가혹한 조건에서 실험하는 등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평가죠.

우리는 왜 이러한 안전평가에 관심을 갖는 걸까요. 가장 먼저는, 자동차에 탑승한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일 겁니다. 또한, 남을 위해서도 중요하죠. 최근엔 탑승자를 넘어, 자동차와 부딪히게 되는 보행자를 얼마나 보호하는지도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동차 평가의 '기본적인 목적'은 안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의 환경영향 역시, 탑승자와 보행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죠. 안전을 평가하는 NCAP에 이어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NCAP, 이른바 〈그린 NCAP〉이 등장하게 된 이유입니다.

충돌 안전성은 사고 등으로 인한 순간적인 위협을 평가하는 것이라면, 환경영향은 차량을 이용하는 기간 동안 장기적,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위협을 평가합니다. 그린 NCAP은 기존 NCAP과 마찬가지로 '별 다섯'이 만점입니다. 세부 항목은 대기 영향(Clean Air Index), 에너지 효율(Energy Efficiency Index), 온실가스(Greenhouse Gas Index)로 구성됩니다. 대기 영향과 에너지 효율은 말 그대로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과 에너지 소비량을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온실가스 항목의 경우, 단순히 자동차 운행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를 넘어 LCA(Life Cycle Assessment, 전주기 평가) 차원의 배출량을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2022년 그린 NCAP 평가를 받은 차량은 총 30개 차종으로, 이 중 7개 차량이 최고등급인 '별 다섯'을 획득했습니다. 같은 '별 다섯'이라 할지라도, 세부 점수는 서로 달랐습니다. BEV(배터리 전기차)인 만큼, 대기영향은 모두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았지만, 에너지 효율과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차량은 다치아 스프링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 역시 최고등급을 받았는데, 종합점수는 30점 만점에 28.4점으로 전체 7개의 '별 다섯' 중 점수가 가장 낮았습니다. 에너지 효율 점수는 간신히 9점을 넘겼고, 온실가스 점수 역시 여타 '별 다섯' 차종보다 낮은 9.3점에 그쳤습니다.

최고등급 7개 차종에 이어 박한 평가를 받은 하위 8개 차종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평가 대상인 30개 차종 가운데 '별 하나'에 그친 자동차는 단 한 대였습니다. 이는 안타깝게도 한국의 차지였습니다. 제네시스 GV70(2.5T 가솔린)은 30점 만점에 4.1점이라는 처참한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내연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설명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2.5리터 엔진이 장착된 스바루 아웃백의 경우, 에너지 효율 점수가 GV70의 3배였습니다. 대기 영향 점수 역시 GV70보다 1점 이상 높았고요.

GV70을 비롯, 하위권 전체 8개 차종의 절반이 국산차였습니다. 제네시스 G70 슈팅브레이크(2.2 디젤), 기아 스포티지(1.6 가솔린), 현대 투싼(1.6 하이브리드)은 각각 26위, 25위, 24위에 이름을 올렸죠. 하이브리드 자동차 가운데, 별을 두 개밖에 받지 못한 자동차는 투싼이 유일했습니다.

그린 NCAP은 이러한 환경영향 평가 결과 외에도 LCA 결과 역시 공개했습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LCA가 이뤄진 차량은 총 61종에 달했습니다. 우리가 '전기차'라고 통상 일컫는 BEV(Battery Electric Vehicle, 배터리 전기차)와 '수소차'라고 부르는 FCEV(Fuel Cell Electric Vehicle)과 같은 '무공해차'뿐 아니라,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HEV(Hybrid Electric Vehicle, 하이브리드 자동차), 그리고 CNG와 가솔린, 디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까지. 현존하는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를 고루 평가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코나 전기차는 전체 61개 차종 가운데 두 번째로 LCA 관점에서의 배출량이 적었습니다. 차량 1대가 만들어져 폐차될 때까지의 배출량은 31톤으로 평가됐죠. 포드의 머스탱 마하-E의 경우, 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전주기 동안 42톤의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는 토요타 프리우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뿐 아니라 2리터 디젤 엔진을 장착한 스코다 옥타비아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BEV와 함께 '무공해차'로 분류되는 현대자동차의 넥쏘는 무려 56톤으로 평가됐습니다. 웬만한 가솔린/디젤차보다도 많을뿐더러, 전체 61개 차량 평균인 52.2톤보다도 많았습니다. 현재 전 세계 수소 충전소에서 쓰이는 수소의 대부분이 화석연료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가 수소라 할지라도, 탄소나 질소 등 다른 원소들과 결합한 형태로 존재할 뿐, 순수한 수소, H2의 형태로 존재하진 않으니까요. 전기의 경우,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을 통해 현시점에서 어느 정도 탈탄소화의 진전을 이뤄냈지만, 수소의 경우 '그린 수소'가 대세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LCA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연료'에 있지 않습니다.

지난주 〈[박상욱의 기후 1.5] '생각보다 큰' 수송부문 탄소중립의 역할과 의미 (상)〉을 통해 LCA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A라는 메이커의 자동차가 만들어져 소비자에게 인도되고, 폐차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따져보는 것이 바로 LCA였죠.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만 RE100에 가입한다고 해서, RE100을 달성한다고 해서 LCA 관점에서의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석탄화력발전이 전체 발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과 같은 환경에선, 제아무리 전기차라 할지라도 생산과정에서 뿜어낸 탄소 배출량보다 자동차를 운행하는 과정에서 뿜어낸 탄소 배출량이 더 많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기차가 내연기관 또는 하이브리드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뿜어낸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 역시, 지난주 연재를 통해 상세히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내연기관에서 하이브리드로,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전환에 나설수록 '제조 전' 배출량의 비중이 급격히 커진다는 점 역시 강조한 바 있습니다. 내연기관의 시대, 자동차의 온실가스를 이야기할 때엔 '판매 이후' 상황에만 주목하면 충분했습니다만 더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저 자동차의 동력원이 석유에서 전기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판매 이전'의 배출량 비중이 커지는데, 여기에 에너지전환까지 가세하면 이 비중이 커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국제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고, 그렇게 전기에서 비롯되는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수록 전기차의 운행 과정에서의 배출량 역시 자연스레 줄어들기 때문이죠.

LCA 차원에서의 감축, 궁극적인 탈탄소를 달성하려면 위의 모든 전 과정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위의 그림은, 한 기업이 어떤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그 제품이 쓰이고 폐기되기까지 전 과정의 배출량을 종합해 설명한 그림입니다. '무슨 임직원 출퇴근까지 따지고 그러냐'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우리에겐 낯설게 보이는 모습이지만, 각 Scope 별로 어떤 배출이 포함되는지 이미 세부적으로 구분되고, 정의된 지 오래입니다.

자동차의 경우, 그럼 LCA 차원에서의 탄소중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자동차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소 배출량은 점차 0에 수렴하게 됐으니, 앞으로의 관건은 '판매 이전'의 배출량이 된 것이죠. 이는 자동차 제조사가 공장에서 차를 조립하는 과정에서의 배출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차체를 구성하는 강판, 자동차 내·외장에 쓰이는 플라스틱과 인조가죽 등 철강, 석유화학 산업의 배출량을 포함하죠. 결국, 수송부문의 탄소중립은 연계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 없이는 불가능한 겁니다.

'판매 이전'의 탄소배출에 주목하게 된다면 이는 곧 연계 산업의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의 강판, 플라스틱, 인조가죽 등을 생산하는 철강, 석유화학의 감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실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Scope 별 배출량을 보면, 연계 산업의 중요성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현대자동차의 담벼락 안에서 뿜어져 나온 온실가스의 양이 재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다 할지라도, Scope 3 배출량, 그러니까 협력사나 하청업체, 원자재 및 부품의 생산 과정에서의 배출량은 Scope 1과 2를 합친 양의 39배에 달하니까요.

이처럼 수송부문의 탄소중립이, 모빌리티의 전환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전환의 영향은 그저 수송부문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부문으로, 더 나아가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부르는 나비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동차가 갖는 역할은 더 확대되고, 그렇게 확대된 역할은 탄소중립의 필수 요소가 됩니다.

국내에선 전기차의 전력을 활용해 가전제품 등을 작동시키는 V2L(Vehicle to Load) 기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조사가 먼저 나서서 '세계 최초'라며 V2L을 홍보하기도 하고, 실제 소비자 역시 이를 활용해 좀더 쾌적하고 윤택한 차박에 나서곤 하죠. 그런데, 글로벌 차원에서 전기차에 주목하는 역할은 따로 있습니다. V2L이 아닌 V2G(Vehicle to Grid)라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V2G에 있어서 '세계 최초' 타이틀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고요. 스웨덴의 볼보는 출시를 앞둔 전기 SUV EX90에 V2G 기술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볼보를 시작으로, 다수의 해외 제조사들 역시 V2G 도입을 준비중이고요. V2L에 인색했던 수입 전기차들이지만, V2G는 서로가 앞다투는 모양새입니다.

V2G는 자동차가 전력망에 있어 '전력 공급원'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전소가 각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처럼, 전기차가 '미니 발전소'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거, 고작 전기차 1대가 무슨 미니 발전소냐'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전기차가 갖고 있는 배터리의 크기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서울의 가구당 월평균 전력 사용량은 255kWh 가량. 전기차 3대 정도면 한 가구가 한 달 동안 쓰고도 남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 1대가 하루 10가구가 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 역할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특히나 더욱 중요해집니다.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시스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갖는 '간헐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꼽힙니다. 각 발전사업자가 자체적으로 ESS를 구축할 수도 있지만, V2G 기능을 활용한다면 길거리의 모든 전기차가 '움직이는 ESS'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볼보는 향후 출시될 EX90 전기차에 V2G 기능을 탑재할 계획이다. (자료: 볼보)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 태양광 발전량이 전력수요를 넘어설 만큼 급증하면서 발생하는 커테일먼트(출력제한)는 이미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껏 투자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설치했더니 해마다 버려지는 전기가 ○○억원 규모”라는 기사, 여러분들도 접해보셨을 겁니다. 실제, 지난 2020년 제주에서만 77차례에 걸쳐 풍력발전기의 가동을 강제로 멈췄고, 그로 인해 우리가 놓친 전력의 양만도 30억원어치, 약 2천명이 1년간 쓸 만큼이었습니다.

V2G를 활용하면, 이처럼 전력이 넘칠 땐 전기차에 이를 저장하고, 반대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량이 저조할 때엔 이를 전력망에 공급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전력망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망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고, 발전사업자의 입장에선 고가의 ESS 구축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기차를 운행하는 입장에선, 저렴한 가격에 초과 생산된 전기를 충전하고, 이를 합리적인 가격에 되팔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서로가 '윈-윈-윈'인 것이죠.

이와 같은 수송부문의 전환이 부르는 나비효과를 살펴보고, 다시금 정부의 무공해차 보급 확대 계획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43만대 가량 보급된 무공해차를 올 한 해 추가로 30만대 더 보급하고, 현 정부 임기 내엔 누적 보급 200만대를 달성하겠다.” “현재까지 누적 19.2만기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를 올 한해에만 9.5만기 더 설치하겠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탄소중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반가운 계획이고, 정책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공해차 보급' 외에 다른 측면들은 빠진, 너무도 아쉬운 계획이고 정책이기도 합니다. 이 무공해차를 어떻게 '생산할지', 이 무공해차를 어떻게 '충전할지', 이 무공해차를 어떻게 '추가로 활용할지', 그 추가 활용을 위한 '부가적인 인프라는 어떻게 늘려갈지'에 대한 뚜렷한 계획과 목표는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무공해차 생산과 직결된 철강 및 석유화학 산업의 감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 무공해차를 충전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는 어떻게 '무탄소'로 만들어낼 것인지, 이를 다각도로 활용하기 위한 V2G 기술 개발엔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 이를 위한 무탄소 전원을 늘리고, 무공해차를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력망은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무공해차 전환으로 누릴 수 있는 '진짜 효과'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는 무공해차 보급은 '반쪽짜리 무공해'에 불과할 뿐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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