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최민식, 도망자 맞아?…회장님 황제도피, 드라마 같은 현실

심재현 기자, 김효정 기자 2023. 1. 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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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술마시고 골프치고…회장님의 황제도피(上)

[편집자주]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주해 호의호식하는 이들의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들의 호화 도주행각은 디즈니플러스 신작 '카지노'의 현실판이다. 잡혀도 쉽사리 국내로 송환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비뚤어진 현실에 경종이 시급하다.

'카지노' 현실판…도망간 회장님은 어떻게 600억 소송을 이겼나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시리즈 '카지노' 4화 예고편 캡처.

"골프도 치고 술도 마셨습니다. 투자 받고 사람도 만나려고 (태국에)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김(성태) 전 회장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이달 6일 수원지법 204호. '해외로 도피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을 만나 무엇을 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쌍방울 계열사 대표 A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내놓은 대답이다. 김 전 회장이 검찰의 수사를 피해 해외로 건너가 여가를 즐기면서 새로운 사업까지 검토했다는 것이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디즈니플러스의 신작 드라마 '카지노'가 그린 해외도피사범들의 호화생활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김 전 회장은 태국에서 '본명'을 밝히면서 국내 인사에게 전화를 하거나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할 정도로 대담했다.

대북송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도 연관된 쌍방울그룹 비리 의혹의 핵심인물 김성태 전 회장이 8개월 동안의 해외 도피 생활 끝에 태국에서 체포돼 오는 17일 자진 귀국 형태로 송환되면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몸을 숨긴 이들의 호화 도피 생활이 도마 위로 올랐다. 김 전 회장 검거는 국제사법 공조 강화가 거둔 값진 성과로 꼽히지만 여전히 활개 치는 해외도피범들을 법의 심판정에 세우려면 추격의 그물망을 좀더 촘촘히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도 8월까지 379명 해외도피…최대 도피처는 필리핀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해외로 도주한 국내 범죄자는 총 3781명으로 집계된다. 2018년 579명 이후 2019년 927명, 2020년 943명, 2021년 953명으로 연간 규모가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는 8월까지 379명이 해외로 도주했다. 태국에서 검거된 김성태 회장과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사태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뒤 도피해 세르비아에 머무는 것으로 파악되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여기에 포함된다.

죄명으로 보면 사기 혐의 도피범이 1854명으로 전체 범죄의 절반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도박 565명(15%), 마약 200명(5%), 폭력(4%), 횡령배임(4%), 성범죄(3%) 순이다. 지난해 1~7월 기준으로 국내에 송환된 해외도피사범은 국가별로 필리핀 56명(27%), 베트남 39명(19%), 중국 36명(17%), 태국 25명(12%), 캄보디아 10명(4%) 등이다. '카지노'에서 그린대로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났다가 필리핀에서 검거돼 송환되는 사례가 가장 흔한 셈이다.

밀항으로 출국 기록을 남기지 않고 해외로 나가면 국내에 체류하는 것으로 간주돼 공소시효 정지 규정도 적용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처벌을 피한 사람이 2018년에 이미 1만명을 넘어섰다.

◇징역형 선고 도피범도…선종구 전 회장 잠적 1년5개월째


수사를 받다 도주하는 경우를 넘어 법원에서 실형을 받은 뒤 형집행을 피해 도피한 자유형 미집행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회사에 17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로 2021년 8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뒤 불구속 상태에서 미국으로 출국해 잠적한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은 지난해 3월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징역 5년, 벌금 300억원이 확정된 뒤에야 형집행을 위해 선 회장의 소재를 파악하다 출국 사실을 확인했다. 실형을 선고하고도 불복할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구속하지 않은 재판부와 이런 배경 등을 고려해 출국금지를 요청하지 않은 검찰의 빈틈을 선 전 회장이 악용한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선 전 회장 같은 자유형 미집행자는 2021년 5340명으로 2017년 4593명, 2018년 4458명, 2019년 4413명, 2020년 4548명, 2020년 4548명에 비해 700~800명 늘었다. 법조계에서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불구속 재판이 늘어난 것도 자유형 미집행자 증가의 원인으로 본다.

선 전 회장은 도피 와중에도 대리인을 내세워 진행 중인 622억원 규모의 증여세 환급 소송으로도 논란이다. 2021년 12월 1심에 이어 지난해 11월 나온 2심 승소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면 국세청은 선 전 회장이 자녀 명의로 취득했던 하이마트 주식에 부과한 상장차익 증여세 622억원을 고스란히 돌려줘야 할 상황이다. 선 전 회장은 과거 보유했던 더플레이스CC 골프장과 각종 부동산도 모두 매각한 뒤 해외로 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송환을 앞둔 김성태 전 회장 이상의 호화 도피가 추정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2심 판결 이후 국민적인 공분이 터져나온 이유다.

수사당국이 국세청, 관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과 손잡고 해외 도피사범 검거에 못지 않게 이들의 불법·은닉재산 환수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런 재산은 복잡한 채권 채무 관계로 엮인 경우가 대다수라 환수가 더디고 쉽지 않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가 회삿돈 수백억원을 해외로 빼돌렸다가 여권을 위조해 출국한 뒤 21년만인 2019년 검거됐을 때도 불법재산을 환수하는 데 상당한 애를 먹었다.

◇불법재산 환수 더 어려워…국가간 공조 구축해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지난해 9월23일 5개월 동안의 추적 끝에 140억 원대 가상자산 해킹 피의자 A씨(40대·남)를 필리핀 현지경찰과 공조해 체포,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강제송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외로 도주한 범죄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은닉재산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미국 등 우호국은 물론, 중국·일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인접국과 공조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검찰 간부와 실무진이 정기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협의할 수 있는 상설기구 설치가 해법으로 거론된다. 임금 123억원을 체불한 혐의로 미국으로 도피했던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의 경우 다섯달만에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됐는데도 보석으로 석방되면서 2019년 자진 귀국할 때까지 9년 동안 호화 도피 행각을 이어가는 것을 사실상 손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김성태 전 회장 검거 과정은 국제 형사 공조의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검찰과 경찰 안팎에서 주목받는다. 검찰에서는 수원지검 김 전 회장 수사팀에 투입된 범죄인 인도·형사사법 공조 분야의 전문검사(블루벨트) 인증을 받은 조주연 대검 국제협력담당관(부장검사)이 지난해 12월 초 태국을 방문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같은 달 주한 태국대사를 접견하며 김 전 회장 등 해외도피사범 송환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태국 현지에 파견한 코리안데스크(한국인 사건 전담 주재원)를 통해 지난해 12월 김 전 회장의 동선에 대한 첩보를 입수해 검거에 힘을 보탰다.

검찰 출신 법조계 한 인사는 "국가간 공조 체제가 강화되면 선종구 전 회장이나 권도형 대표 등 거물급 해외도피범을 검거하긴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라며 "보이스피싱, 마약 등 범죄가 국제화되는 데 맞춰서도 국가간 대응 역량을 키울 기회"라고 말했다.

물 건너 도망간 그 놈, 잡아도 문제…국내 송환율 40%

#. 쌍방울그룹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도피 8개월 만에 태국에서 붙잡혀 국내 송환을 앞두고 있다. 이보다 앞서 김 전 회장의 처남이자 쌍방울그룹 '금고지기' 김모씨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현지에서 체포됐지만 강제추방에 대응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 국내 송환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 고(故)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장녀 유섬나씨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검찰 출석에 불응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체포됐다. 범죄인 인도 재판으로 송환이 결정됐지만 불복 소송을 제기해 송환이 지연됐고 체포 3년 만인 2017년 6월에서야 국내로 송환됐다.

법무부와 수사기관이 해외도피사범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검거에 성공하더라도 국내로 데려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해외도피사범을 국내로 데려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내 송환율이 낮다보니 이를 노리고 해외로 도피하는 범죄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해외도피사범은 3781명, 국내로 송환된 도피범은 1583명이다. 송환율로 따지면 41.8%에 그친다. 단순 비교하면 해외도피범 10명 중 6명은 해외에 머물면서 한국 사법당국의 처벌을 피하고 있는 셈이다.


수사기관은 범죄자의 해외 도피 정황이 확인된 경우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입국시 통보 조치, 외교부를 통한 여권 무효화 조치 등을 하는 한편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해 국제공조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범죄자가 수사망을 피해 밀입국 등을 시도할 수 있는 만큼 실제 체류 장소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공조에 적극적이지 않은 국가로 도피한 경우 소재를 파악해도 신속한 검거를 기대하기 어렵다.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검찰 수사를 피해 동유럽 세르비아로 도피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세르비아가 인터폴 수사 공조에 빠르지 않고 한국과 범죄인 인도가 이뤄진 전례가 없는 국가라는 점을 이용했다는 분석이다.

검거에 성공해도 범죄자가 자진귀국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당장 국내로 송환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한국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체포영장부터 범죄사실 등을 확인하는 절차만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여권 무효화 조치로 불법 체류자 신분인 경우 현지에서 강제추방될 수 있지만 국가별 비자 상황에 따라 체류기간이 남은 경우 현지에 머무를 수 있다.

국가간 요청으로 이뤄지는 범죄인 인도는 더 복잡하다. 한국 법무부가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면 현지 사법당국이 관련 자료 등을 토대로 범죄혐의가 있는지, 국내로 송환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 등을 검토한다. 국내법상 범죄 행위라도 현지에서 범죄가 안 된다면 송환 결정이 나지 않을 수 있다. 현지 사법당국이 인도를 결정해도 불복 소송을 한다면 최종 송환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한국의 범죄인 인도 심사는 단심제지만 2심제나 3심제를 택하는 국가도 있다.

결국 송환율을 높이는 것은 외교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조 수사 확대나 강제추방 요청, 범죄인 인도 심사 등은 모두 개별 국가와의 외교력에 달렸다는 얘기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해외로 도피하면 전혀 방법이 없었던 과거에 비해서는 공조 활동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국가간 친밀도에 따라 수사 협조에 차이가 크다"며 "국제 공조를 원활하게 하는 방법으로 국제검사협회 등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런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등 사법외교 측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검찰도 직접 도피국가를 방문해 해외도피사범의 신병확보를 요청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노공 법무부 차관은 지난해 8월 '동남아 반부패 컨퍼런스' 참석차 태국을 방문해 김성태 전 회장의 신병확보를 요청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지난해 10월과 12월 주한 캄보디아 대사와 주한 태국 대사를 접견하는 등 주요 도피사범의 송환 협력에 적극 협조해 달라는 뜻을 피력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김효정 기자 hyojh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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