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에 갇힌 대한민국…"노동개혁 못하면 망한다"

이태성 기자, 정한결 기자 2023. 1.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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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노동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①

[편집자주] 노동 시장의 양극화, 잦은 파업 등으로 노사 문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지 오래다. 주요 국가들과의 노동 시장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더 이상 개혁을 늦춰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부도 3대 개혁 과제 중 노동 분야를 첫 손에 꼽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새해를 맞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함께 성공적인 노동 개혁을 위한 과제와 방향을 모색한다.

일자리·경제성장 모두 위기, "노동개혁 못하면 망한다"

[기획]노동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1.총론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에서 1조 근로자들이 퇴근을 하고 있다 . 2021.7.8/뉴스1

"노동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치도 망하고 경제도 망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분야를 첫번째 개혁 대상으로 꼽으며 한 말이다. 국가의 미래가 노동개혁의 성패 여부에 달려있다고 보고 강도높은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노동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대한민국 경제에 해묵은 과제다. 노동시장의 중요한 지표로 꼽히는 고용률, 노동 유연성, 노동 생산성 등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한참 뒤쳐져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우리나라 노동유연성은 141개국 중 97위, OECD 36개국에서는 34위에 해당한다. 선진국 중에서는 사실상 최하위 수준이다. 노동생산성도 좋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7달러(약 5만2000원)로 OECD 회원국 38개국 중 29위에 그쳤다.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중 특정 시점에 취업해 있는 인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률도 상황은 비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고용률은 외환위기 직후 급락한 뒤 2000년대 초반 반등했다가 이후 정체돼있다. 2021년 기준 OECD 국가들의 평균 고용률은 67.8%인데, 한국은 이보다 낮은 66.5%를 기록했다.

개혁을 통해 노동 시장의 경쟁력을 높인 선진국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크다. 하르츠 개혁에 이어 '노동 4.0'을 단행한 독일의 고용률은 75.8%로 우리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다. 일본(77.7%), 네덜란드(80.1%), 스웨덴(75.4%), 스위스(79.3%) 등도 75% 이상의 높은 고용률을 보인다.

연례 행사처럼 불거지는 파업도 심각한 실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2~2021년 사이 1일 근로시간(8시간) 이상 작업이 중단된 노사분규(부분파업, 정치파업 미포함)는 연평균 111건이다. 노사분규가 직접적 원인이 돼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측정한 지표인 근로손실일수는 75만4500일에 달한다. 임금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는 39.2일로 영국(18.5일), 미국(8일), 독일(4.5일), 일본(0.2일)에 비해 현저히 높다.

노동 개혁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사례에서 보듯 강성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고 정부의 원칙 대응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여기에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크다. 정부 역시 노동개혁을 1과제로 꼽을 만큼 의지가 강하다.

대외 환경도 노동개혁 없이는 더이상 버티기 힘든 실정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이로인한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투자 유치를 위한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경직된 노동 시장 구조와 강성 노조, 잦은 파업으론 외면 받기 십상이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의 기가 팩토리 공장 후보지로 한국을 언급했을 때, 전문가들이 가장 큰 걸림돌로 거론한 것이 바로 노조 문제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의 개편 방향으로 △노동 수요에 따른 유연성 △노동자 보상체계 공정성 △노동자의 직장 내 안전 △노사관계의 안정성 등 4가지를 꼽고 있다. 이중 주52시간제 완화 및 임금제도 개편,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강화와 부조리 점검 등을 통한 불합리한 관행 개선으로 노동개혁 스타트를 끊었다.

이번 정부에서마저 노동개혁 실패할 경우 대한민국 경제의 경쟁력이 급전직하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정치와 경제가 모두 망할 수 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일자리 창출, 노동시장 이중구조 혁파 등을 내세우며 노동 분야에 칼을 빼들었지만 개혁이라고 말할 만큼의 큰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수차례에 걸쳐 시도됐던 노동개혁의 실패 요인 중 하나로 양대 노총의 견제가 꼽힌다. 선거 때마다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직화된 표, 파업 등 압박과 여론전으로 무장한 이들을 정부와 정치권이 넘지 못했다. 굳은 의지와 전략적인 접근이 없다면 이번 시도도 과거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노동연구원장)는 "노동개혁은 지체된 개혁"이라며 "노동계는 노동계 대로, 재계는 재계 대로 모두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개혁 내용 면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데 대화와 타협의 프로세스를 통해 개혁을 이뤄나가야 한다"며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일하고 더 받고 싶어요" '주 52시간'에 갇힌 韓 노동시장

[기획]노동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2.유연성이 일자리 키운다①'주 52시간' 유연화 절실


급격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산업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현행 연장근로제가 한 주 단위로 제한되면서 업무 효율성은 물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주52시간제 유연화' 등의 근로제도 개편이 한시바삐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청 주문이 많은 자동차 부품업계가 대표적이다.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부품업계는 일반적으로 완성차업체의 주문에 따라 사업장을 가동해 근무시간이 불규칙하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값 폭등과 반도체 공급난 등 공급망 붕괴로 주문 주기나 수량이 더욱 불규칙해졌지만, 엄격한 노동 규제에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 주문이 들어와 공장을 가동하는 주에는 80시간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나 주문이 없을 때는 52시간을 채우기도 버겁다.

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주문이 몰려 사람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52시간제 제한에 따라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면 납품을 못한다"며 "납품을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주문이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공급난이 해소되면 문제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 규제에 답답한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일감과 함께 소득이 줄어든 제조업계 종사자들은 월급을 늘릴 뾰족한 수가 없다. 올해 고용시장에도 한파가 불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연장근무가 가능할 때 최대한 추가 수익을 벌어야하지만 길이 막혔다. 업계 관계자는 "많은 이들이 연장근무 등을 통한 추가 수익을 원해도 주52시간제 때문에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연구개발 역시 노동규제로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현행 특별연장근로인가 제도는 소재·부품·장비 등을 중심으로 인정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앞다퉈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서 특별연장근로인가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노동시간에 따라 일의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직종임에도 노동시간 배분과 휴게·휴일 등을 제한하는 규제가 여전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의 자율성과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노동시간 규제가 엄격한 편이다. 미국의 경우 연장근로 제한이 전무하다. 관리직·운영직·전문직·컴퓨터관련직·외근영업직 등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주급(약 85만원 이상)을 받을 경우 초과근로수당 및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시행 중이다. 영국은 17주 평균 기준 1주 48시간 내에 연장근로가 가능하지만 노동자와 합의할 경우 예외를 허용한다.

일본은 월 45시간 1년 360시간 내 연장근로가 가능한데, 특별한 경우에 월 100시간 연 720시간으로 이를 늘릴 수 있다. 일본 역시 전문성을 갖춘 고연봉자를 대상으로 연장근로 규제를 완화했다. 금융상품 개발·취급, 애널리스트·컨설턴트, 신기술·상품 연구 개발 등 업무 종사자의 연봉이 약 1억원을 초과하면 연간 104일 이상 휴일을 부여하는 조건 아래 노동시간 한도 및 시간외수당 적용을 제외한다. 연구개발 부문은 연장근로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기업들은 이에 국내 노동 규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약 26.4%는 주 52시간 제도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다. 외국투자기업의 48.6%도 노동 분야의 개선 과제로 주52시간제 같은 '근로시간 규제 완화'를 가장 높게 선택했다.

산업환경 변화에 맞춰 다양하고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근로시간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일본처럼 연구개발직이나 고소득·전문직에 대해서는 초과근무를 허용하고, 현재 주단위인 연장근로 산정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이에 공감하면서 관련 입법 예고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연장근로시간 기준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업무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현행 제도는 기본 주당 40시간에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기간을 주 단위로 인정한다. 정부는 그 기준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 등으로 확대해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경총 관계자는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도 활용 기간을 최대 1년으로 확대하고 전체·부분근로자대표도 서면 합의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재량 근로시간제 역시 대상 업무를 법이 아닌 노사 자율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정한결 기자 ha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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