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빈곤 막으려면…국민연금 개혁, 최저노후소득 보장에 맞춰야”
국내 최고 권위 연금 전문가 16명
4차례 설전 뒤 개혁 방향 합의 도출
“국민+기초연금으로 노인 빈곤 방지”
국민연금 개혁의 성패는 개혁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달렸다. 재정안정과 노후소득보장 및 사각지대 해소 등 연금 개혁의 우선순위가 서로 다른 전문가들 사이에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원장 이태수),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센터장 최영준)와 함께 국내 최고 권위의 전문가 16명을 모아 ‘연금개혁 전문가포럼’을 꾸린 이유다.
국민연금 평균 58만원…기초연금 32만원 더해도 90만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으로 최소한의 노후생활비용을 보장하자.”
지난해 8~10월 4차례 포럼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1~2차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난상 토론을 벌였다. 3차 토론에서야 이번 국민연금 개혁의 목표를 ‘최저 노후생활 보장’에 두는 데 합의했다. 비록 낮은 수준에 다소 추상적인 의견 일치지만, 그동안 서로 강하게 대립해온 전문가들이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진전을 이뤘다. 포럼이 끝난 뒤 개별 설문조사를 통해 전문가들이 △국민연금 보험료율 1~3%포인트 인상 △소득대체율 유지 또는 다소 인상 △실질 소득대체율 인상 노력이라는 큰 틀의 개혁 방안을 도출해낸 것도 최저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현실적 목표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상은 적정 노후소득, 현실은 최저 노후소득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회보험 제도로서 공적연금 제도는 흔히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최저 노후소득을 보장해 노인빈곤을 방지하는 ‘방빈’ 기능과 은퇴 전 받은 종전 소득을 유지해주는 적정 노후소득 보장, 즉 ‘소득 대체(유지)’ 기능이다.
포럼에 참여한 대부분의 전문가는 소득보장도 재정안정도 부실한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을 더한 대한민국 공적연금 체계로는 사실상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소득대체 기능을 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공적연금의 목표를 적정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이상이 아닌 최저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현실에 둔 이유다.
현 국민연금 제도는 가입자 소득의 9%(사업주 4.5%+직장가입자 4.5%)의 보험료로 40년을 유지할 때,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 기준 40%를 받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2021년 말 기준 65살 이상 노인(883만명) 가운데 국민연금 수급자(377만명)는 최대 46.8%, 기초연금 수급자는 약 67.6%(597만명)에 그친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동시 수급자는 전체 노인의 30%(265만명)에 불과하다. 가입자 평균 수급액도 2022년 6월 현재 58만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2023년 현재 65살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1인 가구 기준 최대 32만3180원을 주는 기초연금을 추가해도, 연금액은 90만원 남짓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말 내놓은 2021년 기준 국민노후보장패널 조사 결과, 노인 1인 가구의 월 최소생활비는 124만3천원이었다. 부부 기준으로는 198만7천원이다. 이 연구원의 성혜영 선임연구위원이 가계동향조사 등을 종합해 노인가구의 지출항목을 토대로 산출한 2020년 노인가구 필요 노후소득은 1인 단독가구 129만원, 부부가구 210만원가량이었다.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에 기초연금 최대 금액을 더해도 ‘방빈’조차 어렵다는 뜻이다.
목표 합의에도 각론은 여전히 이견
다만 이번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최저 노후생활을 보장하도록 연금개혁의 목표를 잡아야 한다는 데 합의하면서도, 최저 노후생활비용의 수준과 신뢰할 만한 조사와 근거, 해법에서는 견해차를 드러냈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최저생활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는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패널 조사나 최저임금, 최저생계비 등 여러 방법이 있을 듯하다”며, 공적연금이 보장해야 할 최소 노후소득보장 비용이나 보장금액을 도출하면 연금개혁의 난제를 “그래도 쉽게 풀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최저 노후생활비용을 절대 금액으로 표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밝혔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 또한 “노인의 지출만 봐서는 한계가 있을 듯하며, 부담능력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최저 노후생활 기준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정도에 맞추면 합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기초생보제도의 생계급여 평균은 대략 59만원 정도다. 국민노후보장패널의 최저 노후생활비 124만원과 비교하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편차는 향후 국회와 정부, 시민 등 다양한 주체들이 연금개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의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최저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목표값과 관련한 견해차를 줄이고, 그 구체적 근거와 기준 등에서 ‘합의의 묘수’나 근거를 찾는다면, 연금개혁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시사하는 대목이다.
포럼 어떻게 열었나
<한겨레>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에 참여한 전문가 16명은 지난해 8월24일 1차 토론을 시작으로 10월 말까지 모두 4차례 설전을 벌였다. 연금개혁 첫 단추인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발표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핵심 의제를 추출해 전문가들 사이에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높여보자는 취지다.
포럼 목표는 팩트체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을 근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해 온 전문가들이 최소한의 합의를 하자는 데 두었다. 보다 다양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한겨레>는 토론 내용을 곧바로 전하지 않고, 토론을 마친 뒤인 지난해 10~12월까지 전문가별 설문조사를 진행해 이를 종합 정리해 보도하기로 했다.
포럼 주 토론자는 재정안정·소득보장·보편성 강화 등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입장 차이를 고려해 선정했다. 재정안정을 강조하는 김용하(순천향대)·석재은(한림대) 교수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소득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김연명(중앙대)·주은선(경기대) 교수와 정해식 한국자활복지개발원장(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국민연금 사각지대 완화를 주장하는 김원섭(고려대) 교수 등 7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더해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 이용하 전 국민연금연구원장, 김상호 전 보건사회연구원장, 구인회(서울대)·양재진(연세대)·남찬섭(동아대)·김진석(서울여대) 교수 등 전문가 7명이 패널로 추가 합류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최옥금 선임연구위원, 김혜진 부연구위원을 비롯한 연구자 2명도 포럼 진행을 원활히 하는 데 힘을 보탰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성혜영 연구위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류재린∙이다미 부연구위원, 이병재 전문연구원 등 4명이 실무 작업에 참여했다. 연금 분야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릴레이 토론을 벌인 것, 그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라고 참여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를 낼 정도로 전례 없는 매머드급 참여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사실(Facts)에 기반해 상대 쪽의 주장을 함께 검증하는 팩트체크 과정이 최소한의 합의 도출에 큰 밑바탕이 됐다. 이는 또한 주요 쟁점에 대한 상대 쪽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한겨레> 등이 마련한 이번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이 국회와 정부에서 이뤄지는 연금개혁 논의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회 연금개혁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에 참가한 전문가 16명 가운데 절반인 8명이,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에서도 15명의 위원(정부위원 두 명 포함) 가운데 7명이 이번 포럼에 참여했다. 이 전문가포럼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나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의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사전 논의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 토론자와 패널 등 참가자들의 태도도 논의를 원활히 끌어내는 요소였다. 신문 지상이나 여타 토론회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격돌했던 전문가들은 이번 포럼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상대를 존중하고 이견을 인내 있게 경청하는 열린 태도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보였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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