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월 40만원으로” 다수…수급자 축소·확대는 갈려
국내 최고 연금개혁 권위자 16명
기초연금 운용 방식 백가쟁명
공적연금 개혁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쟁점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낮아짐에 따라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기초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다. 기초연금은 만 65살 이상의 한국 국적을 지닌 국내 거주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세금으로 다달이 일정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올해는 최대 월 32만3180원(1인 가구)이 지급되고 있다. 이를 40만원으로 높이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다. 더불어민주당도 같은 입장이나 지급 대상자 등에서 다르다.
<한겨레>가 지난해 8~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와 함께 주최한 4차례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과 같은해 10~12월 설문조사에서는, 기초연금 인상을 둘러싼 △지급 대상자 범위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확보 방안 △중장기 구조개혁 방향 등 세 갈래 주제에 대한 토론과 질의응답이 있었다. 더불어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을 노후소득으로 제구실을 하게 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머리를 모았다.
① 수급자 50%로 줄여 빈곤층 집중 vs 노인 100%에 차등 지급
기초연금을 월 40만원까지 높이는 방안에 대해 16명 전문가 중 13명이 동의했다. 하지만 김연명·주은선·남찬섭 교수는 가입자들이 납부한 보험료가 재원인 국민연금과 형평성을 고려할 때 현행 월 30만원 수준이 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들은 기초연금을 월 40만원까지 올린다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급자 범위에 대해선 50%로 축소해 저소득·빈곤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모든 노인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 등으로 엇갈렸다. 김연명 교수는 현행대로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는 게 적절하다고 보았다. 반면, 정해식 한국자활복지개발원장과 주은선 교수는 월 40만원 이상으로 인상한다면, 저소득·빈곤층 지원에 더 집중하도록 수급자를 현행보다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원섭·최영준 교수는 기초연금 수급자를 모든 노인으로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노인 100%에게 기초연금을 주되,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는 의견도 냈다. 구인회 교수는 두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국민연금 미가입자나 연금액이 20만원 아래인 노인에겐 월 50만원의 기초연금 지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구 교수 역시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소득 상위 노인에겐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용하·석재은 교수와 오건호 정책위원장 등은 단기적으로는 “소득 하위 70%에게 월 40만원을 지급”하되, 10년 이내엔 저소득 노인에게 일정 수준의 최저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꿀 것을 주문했다. 정해식 원장과 주은선 교수도 저소득 노인 대상으로 기초연금에 더해 연금을 보충해주는 보충연금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② 기초연금>국민연금 우려…연계감액 폐지 의견
세금으로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올릴 경우, 가입자 보험료가 재원인 국민연금과 형평성 문제가 대두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기초연금이 1인 가구 기준 월 40만원까지 인상되면, 부부 노인의 경우 매달 64만원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를 10년 이상 낸 노령연금 수급자 월평균 연금액은 55만7천원가량이다. 기초연금이 국민연금보다 웃도는 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액을 줄이는 ‘연계감액’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원섭 교수와 김혜진 부연구위원은 국민연금 연계감액에 대해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국민연금 가입을 끌어내기 위해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으로 인해 기초연금이 깎인 수급자는 35만7천명으로, 감액 금액은 1인당 평균 7만원이었다.
③ 16명 중 13명 “국민연금 일부 퇴직금 전환”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선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21년 말 기준 퇴직연금 가입자는 900만명으로 연간 보험료 35조원에 적립금만도 295조6천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가입자 대부분이 일시금으로 수령해, 은퇴 뒤 다달이 연금으로 받는 비율은 4.3%에 그친다.
이에 전문가 16명 가운데 김연명·김용하 교수 등 13명은 퇴직연금 적립금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전환하는 조처를 주문했다. 특히 김용하 교수는 회사가 퇴직금으로 다달이 적립하는 월급의 12분의 1, 즉 8.33% 가운데 일부(제도 폐지 이전엔 3%)를 떼어 국민연금 보험료로 전환하는 퇴직금 전환제의 부활을 주장했다. 1993~1999년 시행된 적이 있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로 높인 효과가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반면,주은선 교수와 김혜진 부연구위원은 퇴직연금 기능 강화엔 동의하면서도 “이번 (개혁)에는 논의가 불필요하거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권문일 원장은 “퇴직연금 중도 인출을 최소화해, 수익률을 높이고 일시금 대신 연금을 선택하도록 하는 연금 과세 개편 등 조처는 필요하나, 보험료 일부를 국민연금으로 돌리는 방안은 노동계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노동계는 퇴직금 전환제 부활에 부정적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비자발적인 조기 퇴직 등으로 대부분 일시금으로 수령하는데다, 퇴직금(퇴직연금)을 ‘후불 임금’으로 보기 때문이다.
포럼 어떻게 열었나
<한겨레>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에 참여한 전문가 16명은 지난해 8월24일 1차 토론을 시작으로 10월 말까지 모두 4차례 설전을 벌였다. 연금개혁 첫 단추인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발표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핵심 의제를 추출해 전문가들 사이에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높여보자는 취지다.
포럼 목표는 팩트체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을 근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해 온 전문가들이 최소한의 합의를 하자는 데 두었다. 보다 다양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한겨레>는 토론 내용을 곧바로 전하지 않고, 토론을 마친 뒤인 지난해 10~12월까지 전문가별 설문조사를 진행해 이를 종합 정리해 보도하기로 했다.
포럼 주 토론자는 재정안정·소득보장·보편성 강화 등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입장 차이를 고려해 선정했다. 재정안정을 강조하는 김용하(순천향대)·석재은(한림대) 교수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소득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김연명(중앙대)·주은선(경기대) 교수와 정해식 한국자활복지개발원장(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국민연금 사각지대 완화를 주장하는 김원섭(고려대) 교수 등 7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더해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 이용하 전 국민연금연구원장, 김상호 전 보건사회연구원장, 구인회(서울대)·양재진(연세대)·남찬섭(동아대)·김진석(서울여대) 교수 등 전문가 7명이 패널로 추가 합류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최옥금 선임연구위원, 김혜진 부연구위원을 비롯한 연구자 2명도 포럼 진행을 원활히 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밖에 국민연금연구원의 성혜영 연구위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류재린∙이다미 부연구위원, 이병재 전문연구원 등 4명은 실무 작업에 참여했다. 연금 분야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릴레이 토론을 벌인 것, 그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라고 참여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를 낼 정도로 전례 없는 매머드급 참여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사실(Facts)에 기반해 상대 쪽의 주장을 함께 검증하는 팩트체크 과정이 최소한의 합의 도출에 큰 밑바탕이 됐다. 이는 또한 주요 쟁점에 대한 상대 쪽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한겨레> 등이 마련한 이번 “‘국민연금 개혁 전문가포럼’이 국회와 정부에서 이뤄지는 연금개혁 논의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회 연금개혁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에 참가한 전문가 16명 가운데 절반인 8명이,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에서도 15명의 위원(정부위원 두 명 포함) 가운데 7명이 이번 포럼에 참여했다. 이 전문가포럼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나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의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사전 논의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 토론자와 패널 등 참가자들의 태도도 논의를 원활히 끌어내는 요소였다. 신문 지상이나 여타 토론회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격돌했던 전문가들은 이번 포럼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상대를 존중하고 이견을 인내 있게 경청하는 열린 태도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보였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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