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N유통]③ “이젠 아트테이너 육성 시대”... 스타성 기댄 반짝 인기몰이 지양해야

연지연 기자 2023. 1. 16.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2022년 미술시장 3대 키워드 아트페어·레드칩·아트테이너
”앞다퉈 스타성 높은 레드칩 화가 발굴 집중”
반짝 인기몰이는 건실한 아트시장에 오히려 ‘독’
핑거 페인팅 기법을 선보이고 있는 권지안(솔비) 작가/엠에이피크루 제공

#1. 2021년 6월.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경매전에서 작가 권지안(가수 솔비)의 작품 ‘Flower from Heaven(플라워 프롬 헤븐)’이 2010만원에 낙찰됐다. 71회 경합. 추정가 400만원보다 5배 넘는 낙찰가액이었다.

#2. 2022년 3월 웹툰 작가겸 방송인 기안84의 제1호 개인전. 당시 전시됐던 기안84의 그림은 전부 판매됐다. 그림 가격은 2000만~2500만원선이었다.

권지안(솔비), 기안84, 송민호, 이혜영, 더 올라가면 조영남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미술(아트)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점, 아트시장에서 활동하는 작가일 뿐 아니라 대중문화 시장에서도 인기 좋은 연예인이라는 점이다. 10년 전만해도 이들을 바라보는 아트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예술을 모르는 대중문화인의 장난질 정도로 바라봤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들을 아트시장의 구성원으로 당연스레 바라보는 데다가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작가군 중에서도 스타성이 있는 이들을 눈여겨 보는 갤러리도 늘었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과거엔 작가 육성 기준에 꼽히지도 않았던 스타성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면서 “작품과 대중과의 접점을 잘 찾는 것도 예술가의 덕목으로 쳐주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트시장 규모가 커지고 예전보다 함께 호흡하는 대중 저변이 넓어지면서 아트시장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트 시장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2022년 9월 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개막했다. 전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조선DB

◇ 아트시장, 허들 낮아지고 산업 만났다

지난해 아트 시장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술시장이 역대 최고 규모로 성장했고 그 주역으로 아트페어(Art fair)와 레드칩 작가, 그리고 아트테이너가 기여한 것으로 꼽혔다. 아트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집계한 ‘2022년 미술시장 규모 추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시장 매출액은 1조377억원(추산)으로 전년(7563억원)에 비해 약 3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중에서도 아트페어(여러 갤러리가 연합하여 미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행사)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아트페어 매출액은 3020억원으로 2021년 매출액(1889억원) 대비 60% 증가했다. 아트페어 방문객 수도 2021년 77만4000명에서 지난해 87만5000명으로 13% 늘었다.

주연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아트페어를 즐기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뜻”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아트를 이해하고 향유하려는 사람이 늘었고 그만큼 아트시장이 대중화 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레드칩 작가도 지난해 미술시장 활황의 중요 키워드였다. 레드칩 작가란 아트시장에서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젊은 작가(MZ세대) 중 폭발적 가격 상승을 겪은 작가다. 미술시장에 새로 유입된 MZ세대가 아직은 젊고 유망한 예술작가들의 작품을 사모으는 모험을 감행하자 나온 현상이라는 뜻이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주식시장으로 따지면 비상장사 주식에 선(先)투자하는 트렌드가 레드칩 광풍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아트테이너(아트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의 몸값도 높아졌다.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아트테이너가 탄생했고 이들에게 아트페어 주최자가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인지도를 발판으로 아트페어 행사를 홍보하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큐레이터는 “자리잡은 작가(거장)의 명성에 기댈 수 없다면 스타성을 빌리자는 전략”이라면서 “미술시장이 대중과 만나 커지면서 나오는 다양한 현상”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열린 서울옥션 창립 20주년 150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전시 모습./뉴스1

◇ 판 커진 미술시장 “한류스타 시스템, 아트에도 적용”

국내 미술품 시장의 양대 경매회사인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은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우선 케이옥션은 자회사 아르떼케이를 중심으로 아티스트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아르떼케이가 현재 관리하는 작가만 1000여명 수준. 대부분이 레드칩 작가들로 성장 가능성이 유망한 이들이다.

아르떼케이는 작가와 작품, 작품관에 대해 인스타그램·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에 알리고 소통하는 자리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작가의 성장을 이끌기 위한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케이옥션은 아르떼케이를 통해 소속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수량 이상을 미술품 경매에 출품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아르떼케이는 앞으로 두각을 나타낼 이들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아이돌 한류 스타 육성 시스템에 비유하고 있다. 아이돌 한류 스타들이 소속사의 지원을 일찌감치 받으면서 안무와 노래 등 음악적으로 성숙해 데뷔를 하는 시스템이 아트시장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큐레이터는 “물론 과거에도 유명 갤러리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스타 작가가 탄생됐지만 이젠 더 체계적으로 육성 시스템을 갖춘 것”이라고 했다.

서울옥션은 프린트베이커리를 앞세워 아트 대중화 시대에 발맞춰 변신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 펙투스컴퍼니는 전략적투자자(SI)와 함께 프린트베이커리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약 100억원을 투자했다. 신규 투자액은 작가 발굴과 육성, 매니지먼트 역량을 강화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프린트베이커리는 국내 최초 미술품 경매 업체인 서울옥션의 사업부에서 2017년 6월 분사해 설립된 아트 플랫폼으로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70%를 소유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프린트베이커리는 MZ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형태의 미술 제품을 판매하며 성장해온 회사”라면서 “MZ세대의 아트테크에 가장 민첩하게 움직인 회사라서 자금 혹한기에도 투자에 관심갖는 곳들이 많았다”고 했다. 프린트베이커리는 더현대서울, 갤러리아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

일러스트=이은현

◇ 유명 작가 작품값 시간 지나 떨어지기도... “반짝 인기몰이 지양해야”

이런 분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레드칩 화가들이나 아트테이너가 이끄는 미술시장이 단번에 꺾일 수도 있다는 전망에서다.

2014년 레드칩 작가로 분류되며 각광받던 일부 작가들의 인기는 과거보다 떨어졌다. 2007년 당시 최고가로 팔렸던 작품이 이제 반의 반 값에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자리잡은 화가군을 뜻하는 블루칩 화가의 작품값도 늘 오르지만은 않는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 ‘톱10 작가’의 낙찰평균액 증감율을 조사해보니 톱10 작가라고 할지라도 낙찰 평균액이 떨어진 경우가 있었다. 박수근(-23.3%), 이중섭(-16.8%), 김환기(-14.8%), 이대원(-10%)이 대표적이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예술품이 투자의 일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작가의 예술 혼 감상이 우선시되고 작가의 세계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미술품 시장에 제대로 된 볕이 든다”면서 “최근 콜렉터들은 미술품은 사서 시간을 보내면 무조건 오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단군 이래 최대 미술시장 호황기로 불렸던 2007년을 되돌아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갑작스레 작품값이 뛰면서 유명세를 탄 화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불안감과 공포감을 호소하면서 오히려 붓을 꺾은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관계자는 “갑작스레 작품 값이 뛰어 거래됐을 때 그 대가가 모두 창작가에게만 돌아가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작가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몇몇 스타 작가들은 이런 분위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며 공포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 끝은 유망한 작가의 상실로 이어졌다”고 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센터가 발행한 ‘2022년 1분기 미술시장 분석보고서’에는 “현재 시장은 호황기 이후 가격 거품이 빠지는 시점을 대비해야 할 시기”라면서 “지난 2005년에서 2007년의 호황기 이후 겪었던 미술시장 냉각기를 선례로, 투자 대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분석을 통해 시장의 파도를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