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구리·유가' 경기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은?

2023. 1.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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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달러' 힘빠지니 금값 올라…구리와 유가는 안정세 예상
러시아 유전에서 작동하는 원유 펌프잭. 연합뉴스



‘위기 방파제’, ‘닥터 코퍼’, ‘인플레이션 고삐’. 순서대로 금, 구리, 유가에 따라붙는 별명이다. 원자재에 이 같은 꼬리표가 따라붙는 이유는 금과 구리와 원유가 경기 선행 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금값을 보면 달러의 움직임이 보이고 구리 가격을 보면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등 소비 지표부터 건설·제조업·항만 등 인프라 투자 규모를 예측할 수 있다. ‘구리 박사님’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구릿값으로 경기 회복이나 침체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도 마찬가지로 경기 풍향계다. 경기가 살아날 조짐이 보이면 원유 가격이 오른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기업들의 생산자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곧 몇 달 뒤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유가의 고삐가 잡히면 물가 상승률도 한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023년의 시작, 경기 나침반인 원자재 시장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달러 약해지자 빛나는 금 


우선 ‘위기 방파제’ 금이 다시 빛나고 있다. 음의 상관관계에 놓인 달러의 힘이 약해지자 금의 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1월 10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2월물)은 1875.5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장중 금 선물은 온스당 1880선을 넘으면서 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찍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금은 전통적으로 위기에 강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주식 시장이 불안해지면 위험 회피와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 돈이 금으로 향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금=안전 자산’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리를 인상해도 물가가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 상황이었지만 금은 인플레이션 완충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달러의 위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긴축으로 달러 가치가 20년 만에 최고로 치솟으며 초강세를 보였고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금 말고도 매력적인 안전 자산이 생겼다. 달러가 오르자 금의 실질 가격이 오른 점도 한몫했다. 

금 선물은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미국 외 투자자들은 금을 비싸게 사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달러와 금값은 반대로 움직인다. 1971년 미국 정부가 금 본위제(금태환)를 폐지한 이후 기축 통화인 달러의 가치가 오르면 금의 가치가 떨어졌고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위험을 회피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금값이 올랐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금의 위상은 높았다. 2022년 3월 초 국제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서는 경기 침체 우려와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로 금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타격은 예상보다 강했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도 시장의 예상을 웃돌았다.

Fed가 지난해 금리 인상을 단행할 때마다 금값은 주저앉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금값이 1600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3월 초 2000달러를 돌파했던 금값이 연중 최저점까지 내려오자 각국 중앙은행들은 공격적인 저가 매수에 나섰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각국 중앙은행은 400톤의 금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55년 만에 최대치였다. 강달러의 질주로 주요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으로 위기 방파제를 쌓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은 투자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4분기부터 금값이 다시 올랐다. 경기 침체 우려로 미 장기 국채 수익률도 하락하는 데다 달러 가치도 하향 안정세에 들어선 영향이다. 금값이 다시 뛰기 시작한 배경엔 국내외 경제가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예상이 깔려 있다. 

증권가에선 올해 물가·금리·달러가 다시 하향 안정화되는 이른바 ‘골디락스(goldilocks)’ 시기가 도래했다고 분석한다. 골디락스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모두 적절한 이상적인 경제 상황을 말한다. 위기론이 대세지만 이에 대한 반론으로 골디락스가 등장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여전히 긴축 경계심이 큰 만큼 금은 1950달러 부근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면서도 “골디락스가 강력해진다면 안전 자산인 금과 경기 동향에 민감한 위험 자산인 구리 가격이 동반 상승할 수 있고 안전 자산과 산업용 금속의 특성을 모두 보유한 은에 집중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금·은·구리 모두 상승 여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은 온스당 1650~1950달러로 예상했던 기존 금값의 장기 목표치를 2100달러(사상 최고치)로 올려 잡았다.

금값이 뛰자 국제 금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가격도 상승세다. ‘ACE 골드선물 레버리지(합성 H)’ ETF는 최근 3개월 동안 15.54% 올랐다. ‘KODEX 골드선물(H)’ ETF와 ‘TIGER 골드선물(H)’ ETF의 3개월 수익률은 각각 8.28%, 8.12%다. 

약달러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기 회복 역시 금값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들어서도 금값 상승이 계속되는 것은 Fed의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기대감과 이에 따른 달러 추가 약세 기대감 때문”이라며 “중국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중국 경기 회복에 따른 산업용 수요 증가 기대감이 금값 랠리를 더욱 지지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닥터 코퍼의 예측, 늘 명중은 아니야 

경제학 박사 못지않게 경기 예측을 잘한다는 구릿값 역시 올해는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올해 1월 10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선물은 8766.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통상 제련업계에서는 구리 선물 가격 8000~9000달러를 안정선으로 본다. 구리 선물 가격이 7000달러 선까지 떨어지면 구리 가공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1만 달러를 넘어서면 구리 수요가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리 가격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2022년 3월 초 1만 달러를 웃돌던 구릿값은 7월 중순 720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당시 구릿값이 급격하게 하락하자 언론에서는 “닥터 코퍼가 경기 침체 시그널을 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리 가격 변동 추이를 통해 경기가 살아날지, 유지될지, 침체될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리는 도로·항만·토목 등 대규모 개발 계획이나 전자·통신·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필수로 들어가는 원자재다.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거나 정보기술(IT) 기기, 자동차 등 전방 수요가 늘어날 기미가 생기면 구릿값이 먼저 뛰는 구조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닥터 코퍼’라고 불린다.

최근 구릿값이 다시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구리를 두고 예측하는 경기 침체 경고음이 줄었다. 하지만 구릿값 상승이 반드시 경기 회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최근 구리를 둘러싼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구리의 50%를 소비하는 중국의 움직임에 따라 구리의 수요와 공급이 결정된다. 구리의 최대 수요국이던 중국은 지난 몇 년간 원자재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제련소를 잇달아 건설했다. 제련 업체 간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구리의 원료인 동광석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경기와 상관없이 구릿값이 뛰기도 한다.

한국 유일 전기동제련 금속 기업인 LSMnM의 관계자는 “닥터 코퍼 속설은 맞을 때도,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며 "최근에는 중국이 신규제련소 설립을 통해 100% 자체생산을 목표로 구리 자급률을 높이고 있어 제련소 간 가격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경기 흐름과 무관하게 구리 자체의 수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 역시 구릿값의 변수 요인이다.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장기간 침체 상태에 놓였던 만큼 리오프닝과 경기 부양책이 시작된다면 구리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하락 시나리오에 무게 실려

러시아 유전에서 작동하는 원유 펌프잭. 연합뉴스


올해 유가 역시 지난해보다 안정적일 것으로 예측됐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올해 연평균 국제 원유 가격(두바이유 기준)이 작년(배럴당 96.32달러)보다 하락한 배럴당 85.46달러일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유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120달러까지 치솟으며 한국 기업들의 생산 비용을 올리는 데 한몫했다. 올해 1월 들어 국제 유가가 80달러를 밑돌면서 상반기 국제 유가는 하락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분기별 전망치는 1분기 83.02달러, 2분기 82.59달러, 3분기 86.52달러, 4분기 89.73달러였다. 상반기엔 낮은 수준을 유지하지만 하반기 이후 강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가격 상한제를 시행 중이다. 러시아가 석유를 판매해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에 대는 것을 막고 전쟁 이후 급격히 오른 원유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였다. 가격 상한제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제한하고 이를 지키지 않고 거래한 기업은 보험·금융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조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만약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가 이 조치에 반발해 석유·가스 공급을 중단하거나 하반기에 OPEC+(석유수출국기구+기타 산유국)가 고강도 감산을 결정한다면 올해 평균 유가도 지난해와 비슷한 92.85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요 측면에서도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완화 조치로 중국 석유 수요가 늘면 국제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반대로 유가 하락 시나리오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거나 급속한 세계 경기 침체가 찾아온다면 올해 연평균 국제 유가가 77.73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봤다. 이란 핵합의(JCPOA :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 복원에 따른 이란 원유 수출 재개도 국제 유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요인으로 꼽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Fed가 금리 인상 기조도 유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Fed가 하반기 이후 완화 기조로 돌아선다면 유가 상승 압력이 되겠지만 만약 현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한다면 달러화 강세에 따라 유가가 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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