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저한세율’에 발목잡힌 尹정부 반도체 세제지원案…“올해 25% 세액공제 사실상 불가능”
“투자 증가분에 10% 추가 세액공제…최대 25%”
문제는 최소 세금 의무 규정한 ‘최저한세’와 충돌
정부, 10년 이월공제 가능해 문제될 게 없다지만
전문가들 “늘어난 세금 부담에 투자 위축 불가피”
“최저한세율 조정까지 병행해야 유의미한 성과”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투자 증가분 세액공제까지 고려할 경우 최대 25%로 확대됩니다. 여기에 현행 R&D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 30~50%까지 감안하면 우리나라 세제 지원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됩니다.”
1월 3일 '반도체 등 세제 지원 강화 방안' 브리핑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가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반도체·이차전지·백신 등 국가전략기술에 투자하면 받는 세액공제율을 8%에서 15%로 두 배가량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 10%까지 합치면 반도체 시설투자 세제 혜택은 최대 25%에 이를 것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대기업은 올해 25% 세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예외조항을 이번 개정안에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저한세는 기업이 각종 세제 혜택을 받더라도 소득의 일정 수준 이상을 반드시 법인세로 납부하도록 정해 놓은 제도다. 가령 과세표준 1000억원 이상인 SK하이닉스는 올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막대한 시설투자 자금을 쏟아붓더라도 최저한세율 17% 범위에서만 법인세 공제를 받게 된다. 이 경우 최대 25% 공제가 가능하다는 정부 약속은 지켜지기 힘들다.
정부가 반도체 투자에 대한 비과세·감면을 아무리 확대해도 최저한세 제도가 존재하는 한 기업은 세제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정부는 최저한세에 막혀 공제받지 못한 부분을 10년간 이월해 공제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당장 올해 기업 세 부담이 늘면 그만큼 투자 여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 120兆 투자하는 SK하이닉스도 최저한세율 17% 벽에 막혀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달 10~12일 조특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회 제출 절차에 돌입했다. 기재부는 국가전략기술에 관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중견기업은 8→15%, 중소기업은 16→25%로 강화하고 올해 1년 한시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개정안에 담았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투자 업종이나 목적과 상관없이 기업 투자에 일정 수준의 추가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세제 혜택 강화가 최저한세 제도와 충돌할 경우 어떻게 조치할지는 이번 개정안에 전혀 담지 않았다. 최저한세는 세액공제나 감면을 적용하더라도 반드시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 수준을 말한다. 현행 법인세 최저한세(대기업 기준)는 과세표준 100억원 이하 기업에 10%, 100억원 초과~1000억원 이하 기업에 12%, 1000억원 초과 기업에 17%의 최저한세율을 각각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규모 시설투자가 가능한 반도체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은 대부분 17%다. 정부가 이들 대기업에 각종 감면 혜택을 주더라도 유효세율이 최저한세율인 17% 밑으로 내려가면 정부는 최저한세율을 기준으로 법인세를 부과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는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중견·대기업은 해당 사항이 없다.
한국경제학회가 2020년 발표한 ‘법인세 최저한세제가 수평적 형평성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매출액 5000억원 이상인 기업 530곳 중 최저한세율로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은 전체의 27.5%인 146곳에 달했다. 매출액 3000억~5000억원에 속하는 기업 324곳 중에서도 22.2%인 72개사가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대기업 4곳 중 1곳은 최저한세율로 법인세를 내고 있는 셈이다.
주요국 정부는 파격적인 세액공제의 효과를 기업이 실질적으로 느끼게 하고자 최저한세 제도를 없애가는 추세다. 미국이 2017년 최저한세 제도를 전격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저한세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을 포함해 6개국에 불과하다. 법인세 과세표준에 일정 세율로 최저한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 정부 “이월공제로 혜택받을 수 있어” vs 전문가 “최저한세율 조정해야”
기재부도 국가전략기술 세제 혜택 확대 조치가 최저한세율과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월공제 제도가 있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저한세 적용으로 공제받지 못하는 부분은 다음 연도로 이월해 공제받도록 하고 있다”며 “이월공제 허용 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기업이 받아야 할 혜택을 못 받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듬해로 넘어간 세액이 해당 연도의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월되는 만큼 미래의 세액공제액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한세에 막혀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기업으로선 그만큼 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월공제 기간 10년도 선진국과 비교해 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이월공제 가능 기간은 한국의 두 배인 20년이다. 영국·독일 등은 이월공제를 무제한으로 허용한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기업 투자 촉진 정책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보고 싶다면 최저한세율 조정과 같은 제조 개선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제시한 10% 임시투자세액공제가 한시적 세제 지원이라는 점도 문제다. 정부 구상대로 세제 지원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2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올해에 국한된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일몰이 연장되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10% 추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설투자가 5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임시투자세액공제로 경쟁국 수준의 세제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 구상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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