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돈 버는 ‘타짜’…워런 버핏 어떻게 돈 벌었나[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에 따른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15년이 지났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투자 손실액이 약 1경원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재앙’이다. 특히 정보 취득이나 투자 심리를 다스리는 면에서 상대적으로 어려운 개인 투자자들은 커다란 손실을 봐 극단적인 선택 등 사회적인 병리 현상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손실을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전 세계는 또 한 번 놀랐다. 코로나19 사태 때는 더하다.
위기 직후 돈 버는 ‘체리 피킹’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과 같은 부자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코로나19 사태처럼 각종 위기가 발생한 직후 큰돈을 벌기 위해 즐겨 쓰는 방법은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다. 본래 마케팅 용어지만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권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경제 여건이나 기업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떨어진 국가에 속한 주식이나 업종에 속한 주식만 골라 투자하는 행위다.
각종 위기 때 버핏 회장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월가에서는 이렇게 비유한다. 체리(과도하게 떨어진 주식)나무로 가득한 과수원(증시)에 빈 봉투(포트폴리오)를 갖고 간다. 가까운 체리 나무에서 탐스럽게 잘 익은 체리를 딴다. 그다음 옆의 나무로 이동해 또 좋아 보이는 체리를 따 담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빈 주머니에는 가장 좋은 체리만 가득 채울 수 있게 되고 체리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큰돈을 벌 수 있다.
체리 피킹은 특성상 버핏 회장이나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활용할수록 효과가 크다. 버핏 회장이 체리 피킹으로 주식을 산다면 그 주식의 저평가된 가치가 부각된다. 매스컴을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버핏 회장이 사들인 주식에 대한 확정 편향까지 생겨 그때까지 생각지 않았던 투자자(FOMO)들의 주식 매입을 부추기면서 주가 상승세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주가 하락률을 토대로 체리 피킹의 가장 적합한 국가는 중국·한국·동유럽·중남미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모기지 부실의 직접적인 피해 업종인 금융주와 건설주의 주가 하락 폭이 컸다. 한국은 특정 증권사가 보유한 업종의 주가가 많이 떨어진 점이 특이했다. 버핏 회장을 비롯한 세계적인 부자들은 이런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큰돈을 벌어 재산 규모가 한 단계 더 뛰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버핏 회장이 체리 피킹을 하더라도 주식을 사들일 때는 철저하게 ‘피라미딩(pyramiding)’ 원칙을 지킨다는 점이다. 피라미딩은 주식을 살 때마다 투자 금액을 동일하게 유지해 주가가 올라갈수록 피라미드처럼 매입 주식 수를 적게 가져가는 방법을 말한다. 무한정 사들인 종목을 계속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회계 원리상 선입선출법에 따라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면 과감하게 차익 실현에 나서는 기법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체리 피킹을 통해 금융 불안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주가가 회복되면 더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국가와 업종의 편입 비율이 높은 글로벌 적립식 펀드에 매월 일정액을 넣어 두는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부자들이 진정한 의미의 부자라고 여기는 버핏 회장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버핏 회장은 돈을 벌기에 앞서 앞으로 다가올 트렌드를 읽는 데 중점을 둔다. 세계 경기가 어떻게 될지, 어떤 산업이 떠오를지, 각국의 인구 구성이 어떻게 변할지 등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재산이 한 단계 늘어나는 것에 따른 만족도(한계 효용)가 증가하더라도 인프라에 더 투자한다.
투자 실행 단계에서는 ‘파레토 전략’ 필요
트렌드를 파악하고 난 후 투자 실행 단계에서는 ‘파레토 전략’과 ‘루비콘 기질’을 발휘한다. 우량 대상만 골라 투자하는 파레토 전략처럼 돈을 벌 수 있는 확실한 투자 수단을 선택하되 일단 선택하면 루비콘강을 건너면 되돌아올 수 없듯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초지일관 밀어붙인다. 이때 참조하는 것이 ‘S’자형 이론이다.
청소년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듯이 이때 재산이 늘어나면 한계 효용이 체증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로 버핏 회장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한눈팔지 않고 돈을 버는 그 자체를 즐긴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언론이나 시장에 드러나는 것을 피한다.
재산 증식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투자에서 돈 이외의 다른 목적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노후도 대비하고 현재의 삶에도 보탬이 되는 색다른 투자 방법을 중시한다.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한다는 명분으로 시골 전원을 자주 찾거나 성장 잠재력이 있는 예술가의 작품에 투자하기 위해 예술적 심미안을 가져보거나 장기 투자 목적으로 해변 휴양지에 저택을 사들여 지금 당장 삶도 즐기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때는 재산 증식에 따른 한계 효용이 늘어나지 않아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시기다. 생애 재테크 상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돈을 쓰기 시작하면 최근처럼 세계적인 부자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한계 효용이 떨어진 돈을 대신해 지금은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현재와 노후의 삶에 보탬이 되고 나중에 재산 가치가 올라가는 투자 대상을 선택하면서 세계적인 부자로 성장할 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재산이 많은 것이 신변 위협 등으로 부담이 되는 때는 재산 증식에 따른 한계 효용과 절대 효용이 떨어지는 단계다. 이 시기에 버핏 회장은 지금까지 벌어 온 재산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쪽으로 중점을 둔다. 나눔과 기부를 통해 명성을 얻고 이 명성을 통해 또다시 재산을 늘려 가기 때문에 실제로 재산 규모는 줄어들지 않는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타고 두텁게 형성되는 ‘긍정적 편향’ 때문이다.
버핏 회장이 지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부자가 된 것은 이 시기에 처신을 잘했기 때문이다. 졸부들은 재산을 움켜쥐어 죽어서도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지만 진정한 의미의 부자들은 재산 이외 사회적인 책임을 다함으로써 죽은 후에도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존경받는 부자로 남는다. 영원한 부자가 되는 셈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투자 방법이 바뀌는 시기와 돈에 대해 느끼는 효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버핏 회장이 되라는 것은 아니고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매년 발표되는 ‘세계 부(富)의 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생애 주기에서 단계별로 요구되는 ‘젊음과 모험→중용과 지혜→겸손과 배려’가 재산 증식 과정에서 그대로 수용해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일수록 세계적인 슈퍼 리치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을 벌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재산이 많고 적음에 가치가 매겨지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우리 부자들은 세계적인 부자들에 비해 돈에 갇히고 돈을 이기심에서 움켜쥐는 소위 ‘졸부형’ 부자들이 많다.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진정한 의미의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에 열리고 남을 배려하는 가운데 돈을 버는 부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부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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